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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성모
- 시인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외상없는 인생열차

2019.11.07 22:46

Jenny 조회 수:8

외상없는 인생열차 / 성성모

고등학교 3학년때, 대학입시 준비로 숨통 튈 시간이 별로 없었지만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부르며 즐기던 유행가가 있다. 그 유행가에
“외상없는 인생열차에 몸을 싣고 가야할 나그네에 길” 이란 가사는
50년이 지났어도 뚜렷이 생각이 난다. 방운아가 부른 한많은 청춘
이란 영화 주제곡이다.
그 노래 가사에 처럼 인생은 외상없는 인생열차다. 잘못한 일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하녀 한번 인생열차를 선택하면 갈아타기는 쉽지가 않다.
줄을 잘못서서 탄 열차로 인생을 망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박정희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를 보좌하다 사형을 받은 육군대령 두명이 그 극한적인 일례이다.
선택에 책임을 져야한다.
그것뿐인가? 누구는 금수저를 가지고 태어 나는데 누구는 흙수저를
가지고 태어나고 싶어서 그렇게 태어나나? 그러나 일단 태어나는
환경 선택에도 절대적으로 책임을 지고 살아야한다.
인생열차에서 연습은 허용되지 안는다. 시행착오를 통해 여러번 연습을
해보고 선택을 하면 좋으련만 연습은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생은
연극과 같을 수가없다. 모든 선택에 책임을 져야하고 연습은 허용되지
안는다.
하나가 또있다. 인생열차에는 복병들이 코너마다 있는데 그중에 사랑이라는
열병은 지독해서 잘못 병이 들면 인생을 망치기가 일수여서 우리 인생을
울리고 웃긴다. 그러니까 만남이 인생열차를 즐거운 삶으로 인도하기도 하고
괴로운 삶으로 이끌기도 한다. 인생열차에서 만남은 선택 다음으로 중요하다.
때는 백제 초기, 그러니까 서양에서는 네로황제가 로마 대화재를 보며 시를
읆펏다는 2 세기경이다. 백제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 작품으로 기록되어 있는
“백수광부” 가 전해온다. 자세한 내력은 쓰여있지가 않아 모르지만 머리가 희여진
남자가 인생이 너무 괴로워 죽을 결심으로 물로 뛰어들고 있고, 말리다 놓치고
만 여자는”나를 두고 가지마오” 하고 울면서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 그려져있다.
목화가 고려때나 전래가 되었다니 명주야 있었지만 서민들은 명주 비단은
꿈도 못뀔만큼 비싼 옷감이었을터이고 성긴 삼베 정도를 입었을 성싶다.
청동기시대를 벗어난 때이지만 철재 농기구도 없이 농사를 지었고 음식이라고는
보리, 귀리 그리고 콩이 다 있을 것이다. 밥상다운 밥상도 없었고 투박한 질그릇이
다였겠지. 로마 시민들은 돌집을 짓고 목욕탕을 사용했다는데 이 백수광부는
어떤 가옥에서 살았을까? 생활수준은 비교가 안되게 많이 달랐겠지만 인생에 애환은
로마사람들이나 지금 우리가 사는 현대나 거의 같은 수준이지않았나 생각된다.
무엇이 그렇게 고통스러워 사랑하는 여자를 두고 자살을 선택해야 했을까?

“나는 독배를 마시고 가지만 여기 있는 너희들이 더 행복할지 내가 더 행복할지는
신만이 알것이다” 라고 거창한 마지막 말을 남긴 쏘크라테스나 그 백수광부나 이
세상을 하직한 건 마찬가지이고 지지고 볶고 살지만 가는 곳은 정해져있다.
1963년 눈이 내리기 시작한 12월 초, 나는 영어 그룹 개인지도를 받고 걸어서
밤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춘천시를 관통하며 흐르는 소양강 건너에 집이 있어서
소양강 다리를 건너 다니는데 그해 여름에 목제 다리가 홍수에 떠내려가는 바람에
일제시대때부터 있는 시메트다리를 일방통행으로 만들어 헌병들이 통제하고 있었다.
눈이 쌓인 길, 헌병초소를 지나 다리 입구로 들어서니 사방이 깜깜했다. 북쪽에서
차 행렬이 다 지나가고 남쪽에 행렬이 다리로 들어오는 순간, 헤드라이트 불빛에
소복을 입은 젊은 여성이 난간위에 앉아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뛰어가면 잡을 수
있을 것같은 10 메터 거리 앞에. 말려야지 하고 책가방을 내려놓는 순간 그녀는 없어졌다.
뛰어내리고 만것이다. 차들이 멈추고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나는 막지못했다는 죄책감도
있었지만 차들이 다 지나고나니 그 찬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지르던 고함소리가 계속 들라는
것같고 깜깜한 밤에 마지막 남은 다리위를 걷는데 내 뒤에서 누가 잡아당길 것같아 식은 땀을
흘리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물로 뛰어들어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든 인생열차를
타고 있었길래 극단적 선택을 해야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선택에 책임을 져야하고 만남에 책임을 져야하는 인생은 똑같다. 이제 젊은
시절을 다 보내고 보니 원효대사의 까닭음 “일체유심조” 를 일찍부터 알고 생활에 적용을 했다면
내 인생열차도 훨씬 더 즐가운 여행이 되었을텐데 하고 후회가 된다.
파스칼에 말을 빌리면 인생 모두를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심을 믿고 항상 기뻐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최상에 방법이라고 한다. 파스칼 자신도 신을 찿으려 부단한 노력을 했지만 신이 자기 가까이
임제하심을
나중에야 느끼고 평안을 찾은 사람이다. 그렇다. 인생은 책임을 지고 살아야 하지만 우리를
세상에 내보낸 절대자를 믿고 의지하면 인생 짐 보따리를 내려놓을 수 있다. 이 진실을 일찍부터
깨달았더라면 내 인생열차도 들꼬였을텐데 하고 늦은 후회를 한다. 그래서 인생에 반은 후회요
반은 잘못있었다고 고백을 하는 걸까? 아! 내 인생열차는 일백구비를 돌아 황혼에 길을 달린다.
산전수전을 다겪은 기관사는 언제나 쉬게될지, 언제나 더 나은곳으로 갈지, 종착역과 종착시간을
모른체 우리 인생열차는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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