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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일
- Hogansville Korean Church, Senior Pastor.
- Rose of Sharon Mission, President.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두 개의 생일

조성일2021.03.02 09:18조회 수 5335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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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일

 

  이틀 전에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팔목에 매인 환자 정보를 보다가 " 아직 62세로구나.  아버지는 나를 65세라고 했는데 미국에 와서 살길 잘했다. 이틀 남은 62세를 즐겨야지" 라며 혼자 피식 웃었다. 워낙 셈에 약해서 몇 살 인지를 세는 것이 괴로웠는데 응급실이 말해주었다.

 

 한 교회에서 23년간 목회를 했다. 여전도회에서 매년 생일을 챙겨주는데 그럴 때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전도회장을 12월에 맡으 정신 차릴 새도 없이 목사의 생일이 코앞이다.  주일 예배 후 식사 시간에 케이크를 자르며 받는 선물이 쑥스럽다. 보다 미안한 것은 매년 음력 생일을 양력으로 바꿔야 하고 년초에 금방 닥쳐오기 때문이다. 


 주어진 생일을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어서 음력 1957년 11월 23일을 양력으로 찾았다. 이상스레 내가 태어난 해라 믿고 있던 해를 넘겨 1958년 1월 12일이다. 112라는 숫자가 범죄 신고 전화번호를 연상시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머니는 새해가 되면 오남매의 음력 생일을 양력으로 바꿔서 달력에 적었다가 때마다 알려 준다. 자랄적 12월의 어느날 어머니가 손뼉을 치셨다. "애들아 너희 생일이 다 지나가 버렸구나 어쩌면 좋으니?" 하시며 달걀 후라이 하나씩으로 때우셨다. 다른 생일들은 기억에 없다. 그 때 아이들 생일을 챙겨준 집이 얼마나 되었을까.


 19살에 시집와서 그해 말에 장손을 낳을  성탄 종소리가 어머니 귓가에 들렸단다. 적어도 성탄절 전이어야 할 날이 해를 넘겨 1월 생일이라니. 방에는 시계조차 없어 12시를 넘겼는지 넘겼는지도 모른다는데 날짜를 잘못 기억하는 것은 아닐런지. 자다가 일어나 목욕물을 큰 솥에 데웠다는 띠 동갑의 넷째 고모도 밤인지 새벽인지 모른단다.

 

 할아버지는 울타리 안 둔덕 위에 손수 지은 예배당 종을 새벽 예배 시간마다 쳤다. 장손이 태어나던 밤에는 아직 예배 시간도 아니건만 일찌감치 댕그렁  치며 기쁨을 표현했다. 시골 면 사무소에 가서 출생 신고도 했다. 면 서기는 이름의 마지막 자인 날 일 자를 한 일자로 적었다. 약탕기에 인삼을 한 뿌리씩 달여 먹을 때면 물만 마시곤 뿌리는 나에게 주었다. 그 씁스름한 맛이 아직도 기억나듯 게구름속에선 할아버지 얼굴이 피어난다. 

 

 한국 사람들은 이민을 와서도 유독 나이로 서열을 매긴다. 10대 후반의 아이가 "이러셨어요? " 극 존칭으로 통화를 하기에 누구냐고 물으니  겨우 차이의 아는 언니란다. 언니 라고 부르며 "이랬어요?정도가 좋겠다고 말해줬다. 


 이런 분위기에서 나이가 음력과 양력으로 이렇다며 설명하는 것이 억지로 한 살을 더 올리려는 구차한 수작처럼 느껴졌다. 출생율이 특별히 높았다는  "그럼 넌 58년 개띠로구나" 하는 소리도 듣기 싫다. 


 10살쯤 어린 목회자라도 나보다 어른스러워 보이면 "형님" 하고 농담스레 부르기도 한다. 위씨 성을 가진 동기는 "닭띠도 이른 닭띠가 있고 늦은 닭띠가 있다"기에 형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나이보다도 그가 형처럼 느껴지는 고마움에서다. 정체된 고속도로에서 만난 미국 청년 오스틴은 둘째 자식보다 10살이 어렸지만 마흔 살의 나이 차이를 넘어 스스럼 없이 친구가 되었다.

 

  10여 년 전 50살 무렵에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동갑내기 기자가 "50 넘어서 미국 오는것 아닙니다" 라말은 언제 마음에서 지워질런지.

 

  한국에 사는 동생이 "형! 나도 이제 진갑이 되었어" 하기에 "그럼 이젠 나보다 나이가 많겠네" 대답하니 서로 웃음을 터뜨린다. 할아버지는 국민학교 1학년 무렵에 환갑을 갓 넘기고  돌아가셨는데  두 손자가 이미 할아버지의 수명을 넘겨 살고 있다.

 

 미국에서도 애매한 생일로 다가 세월이 흐르며 주변의 권유로 할아버지가 면 사무소에 가서 신고한 날을 받아들였다. 마치 앓던 이를 뺀듯 시원하다. 어머니께도 이제부터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구순을 앞둔 부친이 기분이 좋으신지 통화중에 "이제 네가 철이 들어가나보다" 란다. 진갑을 이미 넘긴 아들에겐 좀 쑥스러운 덕담이지만 웃음섞인 음성을 오래 들었으면 싶다.

 

  오늘은 두번째의 생일인 2월 10이다. 할머니 아버지와 같이 닭띠 3대라는 연대감과 장손이라는 의식이 미국까지 따라왔다. 가족들의 축복 속에 가곡 "그대 있음에"를 듣는다. 살아 있음과 살아 남았음에 눈시울이 뜨뜻해오는 나를 살포시 안아본다.

 

*Feb.10. 21에 처음 쓰고 July 14. 24 까지 고쳐 썼다. 넉달동안 두번의 사고가 있었다. 2월에 자동차 앞부분을 받혔고, 6월에는 뒷부분 트렁크가 다 구겨지며 랩탑이 나를 대신해서 부러졌다. 이제 다시 맞을 생일들은 덤이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렘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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