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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일
- Hogansville Korean Church, Senior Pastor.
- Rose of Sharon Mission, President.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Rose of Sharon의 사람들

조성일2022.04.07 20:29조회 수 58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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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갈이한 화분의 잎사귀 하나가 날아와 내 의자에 앉았다. 나무는 앞으로도 생명을 이어 가겠지만 잎사귀는 그 여정을 마친 것이다. 의자에 앉은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편해졌다. 로즈 오브 새론 사역으로 함께하던 이들이 천국으로 이사했다. 이제 그분들을 위해 내가 할 일은 기억하는 일이라 싶어 글로 남긴다.

임택순의 손 율동
 1935년생인 임택순은 Barged라는 남편을 만나 미국에 왔다. 달걀형의 예쁜 얼굴로 텍사스의 가난한 동네에서 살다가 이웃 남자에게 강간을 당했다. 남편은 그를  총으로 쏘아 죽여 보복하고 무기징역을 살다가죽어서도 나오지 못하는 감옥에서 죽었다. 장례식에 같이 가준 지인들이 들려주었다. 그 후로 한국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권경자가 사는 앨라배마 볼드윈 카운티에 이사 와 건너편 트레일러 하우스에서 남편의 백인 아들을 키우며 살았다. 우리는 1시간 반가량의 거리를 왕래하며 외로이 떨어져 사는 그들을 음식과 말씀으로 도왔다. 집 잔디밭에는 흰색 나무 십자가를 세워서 믿음을 북돋웠다. 꾸준히 요한복음 3장 16절로 설교를 하며 손가락 율동과  함께 천국을 준비했다. 단순하지만 어눌한 우리의 율동을 서로 마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천국을 소망하는 영혼에 좋은 준비가 되었다. 임택순은 동요  '나비야 ~'를 기억을 짜내어 부르기도 했다. 다른 동요는 몰랐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힘을 다해 어눌한 손 율동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를 되새기다가 하나님 품에 안겼다. 마지막까지 병으로 고통 중에도 얼굴에는 어린아이 같은 미소가 피어났고 힘을 다해 손가락을 오물거렸다. 늘 같이 동행하며 기도해주던 동역자 이정자 집사는 그때가 참 좋았고 아픈 이를 위해 기도하다가 어느새 자신의 병도 낳았다고 고백했다.

꽃처럼 피어나던 권경자의 얼굴
 임택순의 맞은편 벽돌집에 살던 권경자는 1940년생이다.  Moro 라는 남편을 따라 미국에 와서 살았는데 남편은 밥 대신에 술을  먹는 사람이었고  술로 인해 죽었다. 권경자와의 사이에는 자식도 없었다. 임택순과는 한국에서부터 아는 사이였지만 임택순의 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로  다리를 좀 다친 후 소송까지 해서 돈을 받아냈다고 했다. 권경자는 자주 임택순에 대해 불평과 원망을 쏟아냈지만 나는 임택순으로부터는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 임택순의 집에 내가 방문을 했을 때 권경자가 찾아왔는데 차를 빼다가 내차 운전석 문 쪽을 꽤 찌그러트렸다. 그 차는 범퍼 모퉁이에 칠이 약간 벗겨진 정도였다. 남의 실수에는 소송까지했다던데 자신의 실수에는 스스로 관대했다. 내가 괜찮다고 했더니 보험처리도 없이 그냥 그렇게 지나갔다. 돈에 대해서 무척 인색해서 애틀랜타에 간다고 하면 음식 주문을 하고서도 돈을 낼 때면 뒤로 몸을 뺐다. 말년에 혈육이라고 찾아간 타주의 조카 집에서 얼마간 살지도 못하고 그곳에서 죽었다. 소식에 따르면 그 조카가 고인의 평소 소원대로 분골을 가지고 와서 살던 집 잔디밭에 뿌렸다는데  그녀를 아끼던 사람들에게 안부조차 없이 남편의 백인 딸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그 집을 서둘러 팔고 돌아갔다. 차라리 그 집에 그대로 살았더라면 좀 더 살고 마지막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껴 모아둔 은행 잔고도 자신을 위해서는 별로 쓰지 못하고 조카의 몫이 되었고 빈손으로 하나님 나라에 갔다. 조카의 연락처가 내게 있지만 나도 연락을 안했다.
 그래도  고마운 기억은 어느 날 권경자를 방문했을 때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 날 사랑하심 성경에써있네' 라는 찬송을 부르다가 나도 모르게 질문을 던졌다. '누가 누구를 사랑한다는 거죠?' 답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거죠' 내가 다시 말했다. '아네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거예요. 예수님이 권경자를 사랑하신다는 거예요' “그래요?'라고 말하는 그 얼굴이 마치 언젠가 티비로 한 식물이 자라나고 꽃이 피는 과정을 빠르게 돌려서 보여주듯이 그 짜증스럽던 얼굴이 꽃잎이 한 잎씩 피어나듯 환해졌다. 그 후로 이 찬송은 그녀의 찬송이 되었다. 갈 때마다 그 찬송을 불러주었는데 멀리서 천국을 향해 가는 순간에는 그 찬송을 마음에 품고 밝은 얼굴로  갔으리라.

김성분과  "You go back!" 
 1940년에 태어나서 마지막에는 그 지역 경찰서장 출신의 Jerry 라는 남편을 만나 앨라배마 Forley 라는 동네에서 오래 살았다. 그녀는 한국어 보다 영어가 더 편했고 유머 감각이 있었는데 다른 이들은 그가 깡이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일찌기 혈액암으로 거의 세상을 떠날 뻔 했는데 꿈에  천국 문 앞에서 영어로 'You go back!' 하는 큰 음성을 듣고 깨어나  깡마른 몸으로 10여년을 더 살았다. 믿음직스레 살펴주던 건강해 보였던 남편이 먼저 갑작스런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순자라는 한국이름으로 사는 큰 딸의 도움을 받으며 몇해를 더 살다가 지난 3월 중순이 지난 토요일 밤에 하나님 품에 안겼다. 나는 그 마지막 저녁에 방문해서 호흡이 거칠어진 몸에 손을 얹고 기도했다. 순자는 말이 적은 편이었지만 그녀의 세딸은 무척이나 상냥하고 친절했다. 할머니를 찾아온 우리셋을 차례로 달려와 미소 가득한 얼굴로 꼭 안아주었다. 할머니께도 아주 곰살맞고 애교스럽게 굴었다고 한다.

설은석
 올해로 70세 가량 된 그는 해군 특수부대 출신이라고 했는데 어떤 부대인지에 대해서는 무슨 사연인지 말을 아꼈다. 나도 해군 출신이라 좀 더 마음이 쓰여서 음식도 대접했다. 작은 체구의 그는 미국에 와서 다람쥐처럼 날랜 몸짓으로 집 고치는 일을 했다. 그렇게 일을 했지만 벌은 돈은 노름에 탕진하고 집도 차도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며 살았다.
어느 날 역시 같은 해군 출신의 임종신으로부터 그가 미시시피 빌락시에서 도로를 건너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에게는 미국에서는 가족이라 할만한 사람이 없었다. 나는 그로부터  누나에 관해 들었고 매형이 쓴 책을 읽은 적이 있기에   인터넷을 검색해서 알만한 분을 통해  소식을 알렸다. 목사의 아내로 90살에 가까운 그의 누이라고 생각되는 이는 자신은 미국에 동생이 없다고 했단다. 답답한 마음에 연결해준 분에게 그분이 설 씨는 맞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임종신이 어렵게 그의 오래된 시카고 아이디를 찾아서 애틀랜타 영사관에 연락했다.  독일에 산다는 한 아들과 연결이 되었지만 찾아오지는 않을 모양이다. 룸메이트로 한동안 지냈던 집의 한 여성은 그의 장례를 위한 부좃돈을 모금하고 다닌다고 했다. 교통사고 보상금을 받을 가족도 없고 장례와 묘지는 카운티에서 다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아는 이들을 찾아다니며 누구를 위한것인지 모를 모금을 하고 있다. 설은석은 곤고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한국 군대에서 사람 잡는 모진 훈련을 받았고  미국에 와서는 자신의 패기를 믿고 살다가 감옥을 수도 없이 드나들었다. 그의 허망한 죽음에 우리는 날을 정해 몇 사람이 모여 그를 추모하는 예배를 갖기로 했다.

* Rose of Sharon은 미국에 이민 와서 외로이 살아가는 동포들을 찾아가는 내 사역의 이름이다. 구약 아가서에 나오며 한국어로는 무궁화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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