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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숙
-Eden Flower 경영
-시서문학 2011년 겨울 14호 신인문학상
-현 시조문학 작가
-시인, 수필가

부모란 자리 ....

정희숙2020.08.16 08:39조회 수 43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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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인 조용한 산골 시골에서
 
3남 4녀 넷째로 태어 났다 

그시절 많은 가정들이 그러 했듯이
 
지금 처럼 그리 먹을 것들이 넉넉치 않았던 시절 이였다
 
하얀 눈내린 겨울이 오면 늦 가을에 따서 광속에 곱게 간직햇던
 
말랑 말랑한 홍시가 우리들의 간식이였고 엄마가 겁질을 곱게 벗겨 

말린 곶감들 그리고 고구마 호도 등등 ...우리들의 간식이였다
 
어찌 그리도 맛이 있었는지 지금은 그때의 맛을 생각 하면서 먹어도

입맛이 변한건지 홍시의 맛이 변한건지 그때의 맛을 느낄수가 없다.

우린 대가족이라면 대 가족인 그 속에서 욕심이 많고

위로 셋 내 아래로 세명이였던 그 가운데 낑겨서

불만 투성이로 자랐다.

부모님의 관심은 제일 먼저 큰오빠.바로 밑에 남동생.그리고 마지막
 
끝으로 탄생한 막내 여동생이였다.늘 편견하시는 것 같은 기분에 휩쌓인
 
난 밥상에서.일상에서 왜 편견 하시느냐로 폭팔하여 부모님의 

심기를 건드리곤 했었다.

이 따위로 기르실려고 날 낳으셨냐고 따질때면 

엄마는 한숨이 셨고 아버지는 나를 앉혀 놓으시고
 
전쟁때 두 가운데 손가락이 반이 잘리신 손을 펴셔서
 
이 다섯 손가락 중에 하나가 다치면 다 아프지 않겠느냐고
 
속 터지는 심령으로 나를 달래고 하셨던 기억이 나의 두뇌 속에 

필림으로 남아 있다
 
자라면서 엄마로 부터 늘 듣던말 너도 시집가서 엄마가 되어 봐라 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더 배우고 더 잘살아서 난 우리 아이들은 잘 먹이고
 
잘 길러야지 생각하며
 
그렇게 살아온 기니긴 세월 엄마가 되어 보니 삶의  구비 구비 마다
 
부모님 생각으로 가슴이 저려오곤 한다.

태평양 건너오면 파라다이스가 펼처저 있을것만 같았던 이곳.

인생의 톡톡한 광야의 훈련을 겪어야 했었고.

살아 오면서 그리 넉넉지 않았던 생활속에서
 
하나라도 더 맛있는 것으로 더 좋은 옷 입히면서 

기르고 싶었던 세월속에서 세넘을 낳아 1m85 라는 키가 큰 장정들로 자라 주었다
 
부모님 보다 더 엄격하고 무섭게 길러서 그래도 빗나가지 않고
 
잘 자라 예쁘고 착한 와이프들 까지 얻어 결혼들을 하여 아빠들이 되었다.

어렸을땐 아프지 않고 잘 자라주기를 바랬었고 열심히 공부 하여
 
훌륭한 사회인으로 자라 주길 바라면서 가슴 졸였던 세월들 .

결혼 하여 가정 들을 갖게 되면 난 나의 임무가 끝인줄 알았다.

자식에게 향한 부모의 관심은 그게 끝이 아니란걸 세삼 느낀다
 
큰아들의 결혼.너무 순해 터저서 군대좀 다녀 오라 권면하여
 
3년인가 군대 가 있는 동안.너무 외로 웠던지 같은 교회에서 중고등 부에서 함께

신앙생활 하던 여자 아이와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겠다고  우겨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나와는 거리가 먼줄 알았는데 아들을이기지 못하고 결혼을 했

몇년후 이혼을 하게 되어 내 속을 아프게 했다.
 
두 넘을 앉혀놓고 너희 들은 형 처럼 결혼 하면 안된다는
 
세뇌 교육을 시켰드니 들째 넘은 같은 교회에서 만난 

여자애랑 6 년 내지 7년을 만나드니 결혼을 했고
 
애지 중지 자기만 최고로 잘난 놈이라고 길러 놓은 막내 놈은
 
고등학교 1년 후배와 7년 데이트 후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젠 정말 엄마의 임무는 끝인줄 알았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는 어르신들의 속담 처럼 .

정말 바람 잘날 없는 날들이 반복이였다.
 
이래 걱정 저래 걱정 결국은 깨닫게 된건 부모는 자식에게 빛진 자처럼 살다가
 
더 이상 줄게 없을땐 세상을 떠나야 한는건가 보다.. 라는 생각을 해본다
 
제일 크게 바라는 건 제발 싸우지 않고 아기 자기 하게 살아 주길 바라는게 제일

큰 바램이다. 며칠전의 일이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것 같은 

막내 아들의 딸래미 만 5섯살 배기 손녀딸이 울상이 되어
 
나에게 달려와 할머니 엄마가 보따리를 챙기고 있어
 
이젠 엄마가 집을 나가고 나면 난 엄마가 없어 지는데
 
이제 할머니가 나의 엄마가 되어

줄수 있냐고 물어 오는 데 난 충격을 받게 되어 잠을 설첬다.
 
막내 가족과 함께 살다 보니 작은 잡음에도 신경이 쓰이고
 
그럴때 마다 잠을 설치곤 한다.
 
엄마의 자리.진자리 마른자리 갈아주면서 길러서
 
건강을 놓칠세라 애지 중지 하면서 길렀고
 
내 입으로 넣기전에 하나라도 더 먹이고 싶은 심정으로 길러
 
이제 각자 둥지에서 오손 도손 잘 살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슴을 졸이연서 살아가고 있다.

부모의 자리.이제 나이가 들어보니 이땅에서 살아갈 나이보다
 
이땅을 떠날날이 더 가까워 오고 있는데
 
자식들에 대한 걱정은 끝이 없다.
 
만일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가도 제발 싸우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살아 주길 바라는 마음 너무 너무 간절하여
 
이세상 떠나는 날까지 아마 나의 기도 제목이 되지 않을 까 싶다.
 
오늘도 기도한다 제발 코로나 바이러스란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 주기를  ... 

무더운 여름 기온 속에서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속에 

벌써 가을 냄새가 묻어난다 
 
오늘 따라 부모님 생각에 가슴이 아려온다 
아틀란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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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드림 삶의 현장에서 ..(.봄향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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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정희숙 선생님의 입체적인 글을 읽으며

    뭉쿨했습니다. 저도 마찮가지지만 

    역시 삶은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정답도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열심히 사시는 선생님 화이팅 !!! 

  • 강화식님께
    사람 사는 모습들이 매우 흡사하죠. 특히 요즘같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고통 속에서 살고 있죠. 그래서인지 가정문제가 더욱 심해졌다고 알고 있어요.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내야죠. 힘내세요.
  • 강화식님께
    정희숙글쓴이
    2020.8.18 07:55 댓글추천 0비추천 0

    감사합니다 늘 시간에 쫒기면서 살다보니 

    뵙기도 힘들고 회원으로서 성의를 보여 드리지 못한게 

    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

    두 분.늘 건강하시고 건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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