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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성모 창작글방


성성모
- 시인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난세는 영웅을 부른다

2019.01.29 21:48

성성모 조회 수:28

난세는 영웅을 부른다 !!

 

시간은 흐른다.  그래서 참혹했던, 잊을 없었었던 일들을 덮어버려 우리에 기억을 흐리게 하고 감정을 무디게 만든다.   세월은 강물처럼 흐르고 진실들은 묻쳐 버린 , 아픔도고통도 잊혀지고 후세에는 승자에 기록이, 가끔은 진실과는 이야기가 역사책에 실려 사실로 둔갑을 해버린다.

 

나는 전쟁이 발발한 1950 6 25일에 1 4개월 되었을 때이니 전쟁을 겪었다지만 어머니 등에서 피난을 다녔고 포탄이 터지는 평야를 건너고 B-29 폭격을 받고 고향집에서 제트기 기총소사를 받았다는데 생각나는 것은 없다.  그러나, 4-5 살무렵  애절한 트럼펫 장송곡을 뒤로하고 떠나가는 붕대로 장식된 군인 앰불란스(쓰리쿼터 자동차) 우리집 텃밭 군인 야전병원에서 자주 목도했고 어린 나이지만 숙연한 마음을 느꼈다.   학교를 다니며 널려져있는 포탄을 두드리다가 친구 하나가 목숨을 잃고 여러명이 불구가 되었고 마을 부근 임업시험장 뽕나무 밭에는 미쳐 매장을 하지못한 군인 시체가 가끔 발견되기도 했었다.  춘천은 군사요충지로 1.4후퇴를 전후로 80% 가옥이 쟷더미로 변한 곳이었으니까.

 

전쟁에 상처는 늦게 느껴졌다.   내가 국민학교를 입학하면  돈을 많이 벌어 오신다고 하신 아버지는 끝내 돌아오지 못하셨다.   어른들은 포로석방으로나 혹시 살아 오기를 기대했지만 그런 행운은 없었다.   숙부와 큰당숙도 전사를 하셨고 숙모는 가족들과 함께 월북을 하고 하나밖에 없던 이모도 아무 이유도없이 같이 있던 피난민들과 함께 월북을 했다고 했다.   조모님 조카가 부역을 했다고 해서 조모님의 친정집 가족이 죽임을 당했고 없이도 있었다는 시골벽지에 살던 5 당숙도 부역을 했다는 밀고를 받아 아들 넷을 두고 총살을 당했다.  주위에 전쟁으로 친척을 잃지 안은 사람이 없었고 살길이 막막한 사람들이 천지였다.   여기저기 모진 상처를 안고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을 하며 흐르는 눈물을 딱을 여유도 없이 세월은 흘렀다.

 

6.25동란으로 국군 전사자14 7, 부상 70 9, 실종 13 , 도합 98 7천명에 피해가 났다.  북한군은 52 사망, 40 6 부상으로 집계되었으며, 중공군 전사 18 4, 부상 71, 실종 2, 유엔군 전사 3 5, 부상 11 5천이었다.   민간인 사망이 24만이었고 , 행방불명, 의용군차출 등으로 피해 총합계는 남한만 140만으로 비전투원에 인적손실이 전투원보다 많은 전쟁사에서 유례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민간인 피해가 많았던 것은 사상을 달리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중에는 개인감정으로 애국이란 미명 아래 서로 죽이고 죽이는 개만도 못한 일들이 남북한을 통털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피난길에 전쟁터에서 죽은 민간인들도 있었지만 거짓 밀고로 죽은 영혼이 많았고 의용군, 의용 노무자로 끌려가 총알받이로 죽었다.   북한은 남한에 정치인, 검사, 판사, 공무원들을 납치해 철사줄에 매여 끌고 자기들에 사상에 동조하지 안는 자들은 모두 총살을 했고, 남한에 이승만 정권은 보도연맹이란 이름으로 좌익사상을 가진 인재들을 잠시 유치시키고 있었는데 전쟁이 발발하자 무조건 6000명이나 되는 고급인력을 사살하여 구천을 헤매게 만들었다.  남북한 합쳐서 민간인 520 손실이라는 통계가 나와 있으며 29만이 월북, 45-65만명이 월남, 이에 따른 이산가족이 1000만명이 되었다.  따라서 전체 인구에 1/3 직접적으로 식구를 잃어버린 비참한 전쟁이었다.

 

20만이 넘는 과부들 중에는 몸을 파는 신세가 되기도 하여 춘천역 옆으로 군인부대 주위에 길게 기지촌이 들어섰다.   고아원으로 가지 못한 고아들은 구두딱기, 소매치기로 사회 뒷골목을 돌았고 하루에도 여러 거지 동냥을 보게 되었으며  마음까지 상한 상이군인들에 행패도 대단했었다.   볼꼴, 못볼꼴, 보아서는 안될 꼴들을 보면서 나도 대학진학을 하며 정든 고향을 떠나게 되고 은퇴를 하여 이제 백발이 성성해진 나이에 우리 동족이 겪은 육이오 동란이,어떻게 일어났는가를 알아보았다.

 

 

32 미대통령 루즈벨트는 쏘련이 독일 나치정권에 잃은 손실이 것을 알고 스타린에 동정적이었다고 한다.  얄타협정 전에 루즈벨트는 쏘련이 조선에 일본군 무장해제를 목적으로 한국에 쏘련 병력주둔분할 선을 위도 40, 39도선 또는 38도선으로 할까를  참모들과 의논을 하다가 동부전선에서 전공을 세우지도 않은 쏘련에 우호적인 쪽으로 38도선으로 30분만에 결정했다고 한다.  루즈벨트는 당시 살인마 스타린을 몰라도 너무 몰랐고 공산주의  쏘련의 목표는 세계공산화라는 점을 간과하지 못했다.   쏘련 군은 북한 주둔이후 김일성 꼭두각시로 하여금 위성국가를 세우게 했으며 스타린 계획표에 조선에 적화는 시간문제였었다.

 

김일성은 세계적화주의 무드를 타고 북한에 공산당정권을 세우자 마자 그에 상관인 스타린에 마음을 읽고 남한 침략을 획책하였다.  남침계획을 쏘련의 스탈린은 때가 되지않았다는 이유로 여러번 반대 했으나 1949 미국 국무장관 에치슨이 공표한 미국의 극동 방위선(에치슨 라인) 한국이 포함되지 않자 한국에 전쟁이 나도 미국에 직접 개입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남침을 허락하고 군수물자 지원을 시작했다.   스탈린은 모택동이 중국을 통일하고 남은 군력에 비상한 관심과 위협을 느꼈으며  모택동은 한국전쟁 개입을 반대 했지만 스탈린은 처음부터 중공군을 한국 전쟁에 투입해서 중공에 힘을 계획을 하고 있었다.  

 

김일성은 6 25 새벽 남침을 하였고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열고 6 29 즉각 북한을 도발자로 규정하고 연합군을 구성해 전쟁에 참여한다.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쏘련이 반대를 하면 있을 수도없는 UN연합군이  구성되었다면 그것은 무슨 의미였을까?  스탈린은 앞을 읽으며 UN연합군에  북진을 예측하고 있었으며 중공군 개입을 기다렸다.   

 

낙동강까지 밀렸던 국군은 맥아더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인민군을 후퇴시키고 3.8선을 지나 압록강까지 진격을 하여 북진통일이 보이는 듯했다.  쏘련과 전쟁을 치루게 가능성을 투르만은 38도선에서 유엔군에 북진을 반대했으나 이승만대통령과 맥아더는 북진을 하여 인민군을 궤멸시키길 원했다.   맥아더는 유럽에서 승전고를 울린 그의 참모였던 아이젠하워 장군보다 멋진 승전을 만들어 차기 대통령 후보가 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11 25일이전까지   첩보에 걸리지않고 투입된 20 중공군은 미해병대 4000여명이 전사하는 장진호 중공군 포위작전으로 한국전을 송두리채 바꾸어 놓았다.   중공군은 전투에서 우위에 있었지만 미군의 강한 화력에 밀려 중공군 5만이 전사했으며  우리는 엄동설한에 1.4후퇴를 하게 되어 극한에 다시 한번 피난길에 오른다.   2주일동안 5만명, 조선족이 주축을 이룬 팔로군이 소총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인해전술이란 잉여인간 죽여버리기 작전에 희생이 되고 만것이다.  5만명은 당시 춘천 도시 인구에 반에 해당되는 숫자였다.  맥아더가 주장하던대로 만주 보급로 폭격을 했다면 이런 손실은 없었을 것이고 1.4후퇴도 없었을것이고 동족상쟁이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았을것이다.   미국 안정을 첫번 순위로 치고 전쟁확대를 반대하는 정치세력에 밀려 맥아더가 주장한 만주 공급루트 공습은 끝까지 이루어지지 안았다.   포병 소령으로 2차대전을 치른 소심한 투루만 대통령은 맥아더를 결국 해임했으며  한국 전쟁은 제한 전쟁으로 성격이 바뀌고 남과 북은 한치라도 땅을 차지하려는 협소한 욕망에 1년여간이나 최전선 특히 철원평야 철의 삼각지가 젊은피로 붉게 물들게 만들었다.  1953 3 5 스탈린에 사망으로 전쟁을 이르킨 장본인이 없어졌으니 8 29 휴전협정이 만들어져 전쟁은 끝났다.

 

1917 시작된 볼세비키 혁명으로 공산주의가 쏘련에서부터  봇물터지 밀려오는데 무방비로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 진영이 만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기에  쏘련의 세계 적화라는 굿잔치에 몸도 주고 마음도 주고 집도주고 펴주고 만신창이가 되어 겨우 살아난 격이되었다.    하늘은 무심하지 안아서 남한은 한강에  기적을 이루며 단군이래 가장 사는 시대를 만들었으나 북한은 한국인 특유에 정서 충성, , 연대감 그리고  사이비 종교단체 같은 김일성체제에 억매여 주축세력을 제외한 북한사람들은 아직도 감옥 생활을 하고  있다.

 

역사는 되풀이 되는 수가 많다.  그래서 역사에서 배워 미래를 준비한다.   윌슨 대통령에  민족자결주의만 믿고 3.1 운동으로 사라진 애국선렬에 넋을 위로 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열강이 우리를 이유없이 도와주지 안는다는 점을 확실하게 알아야한다.    6.25 전쟁에서 본대로 우리가 고통받는 것보다 그들의 안전, 이익, 야망이 우선라는 것도 똑똑히 기억해야한다.  

 

미국은 필리핀을 속국으로 통치하면서 일본이 조선을 속국으로 차지하는 것을 묵인한 나라이며 이후 그들 나름에 외교 유대가 있는, 일본 다음 한국 순서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일본은 1870년대에 벌써 정한론을 주장하기 시작했던 사악한 나라이며, 우리 민족을 36년동안 짓밟은 우방이 못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중국은 아직도 우리나라를 자기들에 속국인양 거드름을 부리며 역사를 변개시켜 가면서 한족 우월론을 펴고있다.  동북공정이 무었인가?   북한정권이 붕궤되는대로 북한을 흡수하겠다는 술수이다.

따라서 강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신속한 정보, 최강에 화력과 정신력을 갖춘 군사력 그리고 단합된 청치로 우리는 어려운 난관을 헤쳐나가야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두뇌, 최고의 IT 산업을 보유하고 있는 조국은 강한 정신력과  앞을 내다보는 정략으로 새계에 우뚝 서리라 믿는다.

 

위대한 지도자는 난세에 나타난다고 한다.   , 모두를 아우르며 자신에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앞을 내다보는 영웅이 나타나기를 바란다.   우리는 6.25 잊지 말고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죽는다는 구호를 우리 다시 한번 외쳐 모두 단결을 하고, 지혜를 뫃아, 우리 힘으로  민족통일을 완수하자.     거름 나가 국민 모두가 정신적으로 무장을 정일본론을 만들고 실천하여 언젠가 일본을 한국앞에 굴복을 시켜 순국선렬들을 위로하고 올바른 역사책을 만들어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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