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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배경
-1961년 전남 여수 출생
- 2019년 미국이민
-1988년 서울대학 법학과 졸
- 1988 20회 사법고시합격
-1991 서울대학 법과대학 대학원 졸(석사)
-1999 국립 해양대학 대학원 수료(박사)
- 2003 University of Denver, School of Law, LLM 수료
-2003 뉴욕스테이트 변호사 시험 합격
- 애틀란타 문학회 회원

분수(噴水)를 보면서 기도함(에세이)

cosyyoon2025.05.24 14:09조회 수 13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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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噴水)를 보면서 기도함

 

 

 

언제쯤이었을까. 어린 시절 샘물을 본 적이 있었다. 혼자 동네 근처 민둥산에 올라갔을 때였으리라.

여름 방학 곤충채집 숙제를 위해였을 것이다.

고추잠자리, 왕 잠자리가 날아다니는 갈대 숲을 지나자 큼직한 바위가 있었다.

바위 아래에 내 손바닥 만한 크기의 흙구멍에서 맑디 맑은 물이 솓아 오르고 있었다.

꾸덕꾸덕 올라온 물은 낮은 지면을 따라 조그만 길을 만들어 졸졸 소리를 내면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샘물 옆에 주저 앉아 솓구치는 물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바위 밑 땅 속에 어떤 조화가 숨어 있길래 물이 하염 없이 머리를 내밀며 나오는 것인가, 신비로왔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언젠가부터 줄곧 분수를 직관할 수 있는 위치에서 살았다.

처음에는 의도한 바 아니었다.

선친이 살아계실 때부터 온 식구가 살았던 시형아파트가 재건축이 되었다.

17평이  32평으로 업그레이드가 되어 추첨으로 배정된 곳이었다.

입주를 해 보니 아파트 단지의 한 가운데 광장을 접한 23층 호실이었다.

베란다에서 광장이 한 눈에 들어 왔다.

광장의 중앙에 분수시설이 있어서 여름을 즈음하여 일정한 시간 분수가 작동되었다.

관리실의 조작에 의하여 불규칙하게 여기저기에서 분수가 뿜어져 오르게 되어 있었다.

한 여름, 특히 여름 방학 때에는 아파트 단지의 아이들이 광장으로 몰려나왔다.

떨어지는 분수 물에 온 몸을 맡기고 옷이 응건히 젖는지도 모르고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란.

깔깔거리는 웃음소리, 놀라움과 즐거움에 터져나오는 비명소리, 친구와 가족을 부르는 고함 소리로 광장이 시끌벅적했다.

그 소란함이 너무 듣기 좋았다.

삭막한 대도시의 아파트 단지 속, 이웃이 누군지도 모르는 파편화된 관계 속에서 오랜 만에 사람 냄새를 맡는 순간이었다. 행복 자체였다.

간단없이 솓아오르는 분수와 떨어지는 물 줄기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기 일수였다.

어린 시절 민둥산에서 솓아 오르는 샘물을 멍하게 처다보는 것처럼.

 

 

그 이후 다른 아파트로 이사할 때 아예 분수대가 설치된 광장을 접하는 동과 방향을 골라 적당한 높이의 층수로 입주계약을 했다.

지금도 나는 매년 여름이 다가오는 6월초부터 계절의 열기가 식어가는 8월말까지 가동되는 광장의 분수를 눈으로, 귀로 느끼고 있다. 

 

 

 

두 가지 점에서 우리는 분수에 매혹된다.

하나는 상승이고 다른 하나는 낙하다.

 

분수를 볼 때마다 물이 허공을 향하여 솓구치는 모습에서 경이와 쾌감을 느낀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진리가 깨어진다. 중력을 거스리는 반전에 놀란다.

물론, 기계적, 전기적 장치로 억지로 물을 공중으로 솓아 오르게 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이면이 아닌 현상에 취약한 우리에겐 상식의 거부에서 오는 경이와 쾌감에 영향을 주진 않는다.

오히려 중력을 거스려 보겠다는 인간의 간절한 집요함을 느낀다.

수천년의 집요함으로 결국 인간은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만들고, 우주선으로 대기권 밖으로 튀어나가지 않는가.

 

 

 

사람들은 이런 경이와 쾌감에 도취되어 마천루를 세우듯 분수의 높이도 경쟁적으로 높인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높이가 200미터가 넘는 분수가 있다고 한다.

바벨탑을 세웠던 인간의 집요함을 닮았다고나 할까.

장대한 물줄기가 70층 건물 높이까지 치솟는 모습은 가히 장관에 가까우리라. 상상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밤이 되면 분수마다 형형색색 조명을 달아 매혹적으로 보이게 한다. 밤하늘을 수놓는 폭죽과 다를 바 없다.

간혹 음악에 맞추어 마치 춤을 추는 분수를 연출하기도 한다.

눈과 귀를 동시에 즐겁게 하는 한편의 종합예술이 펼쳐지는 것이다. 분수에 관한 한 인간의 아이디어와 집착은 놀라울 정도다.

 

 

 

이제 분수의 낙하에 대해 생각할 차례다.

분수의 존재는 하늘 높이 솟구치는 물줄기에 그치지 않는다.

물줄기가 정상에 닿은 뒤 더 이상 올라갈 힘이 부칠 때 그것은 다시 자유 낙하를 시작한다. 그렇다.

그 물줄기는 다시 이 땅에 내재된 진리대로 다시 아래로 떨어진다.

아무리 물을 높이 솓구치게 한들 어차피 그것은 아래로 떨어져야 하고 낮은 곳으로 흘러가야 할 운명인 것이다.

낙하하는 물이 있기에 또 다른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떨어지는 물을 전신으로 느끼는 것이다.

 

 

 

 

나에겐 소중한 사진이 하나 있다.

큰 아들이 여섯 살쯤 되었을 것이다. 무더운 여름 휴가차 가족이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을 때 어느 놀이공원에 놀러 갔다.

쓰릴이 넘치는 놀이시설에는 인기를 반영하듯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참을성 없는 남자 아이를 데리고 뙤약볕을 맞으며 몇 십분 씩 서 있는다는 것이 고역이었다.

아들은 더위에 지쳐 상기된 얼굴로 짜증을 내고 있었다. 그의 손을 잡고 있는 내가 불안할 지경이었다.

 

 

 

그 순간 저 멀리 알룩달룩한 시설에서 분수가 뿜어 나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기다리던 줄에서 빠져나와 그곳으로 달려갔다. 아들은 분수대 사이로 뛰어들어갔다.

전세계 관광객들과 그 아이들이 함께 뛰어들었다.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아이들이 어울려 분수 물줄기 사이로 뛰어 놀았다.

입고 있는 옷이 젖든 말든 모두들 상관하지 않았다.

아들은 머리 위로 떨어지는 물을 피하기 위해 또는 일부로 맞아 보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때 아들의 단독 사진을 찍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그 사진을 현상하였는데 말 그대로 최고의 인생사진이었다.

흠뻑 젖어 있는 상의와 하의, 온통 물기에 젖어 이마에 바짝 붙은 머리카락, 그리고 알룩달룩한 분수대 아래 미소 가득한 얼굴이 나타났다.

기념사진이나 증명사진을 찍을 때 볼 수 없는, 억지춘향으로는 지어낼 수 없는 행복에 겨운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 그대로였다.

분수라는 문명의 이기를 오감으로, 온몸으로, 체감한 순간이 고스란히 포착된 사진이었다.

 

 

 

사진을 찍은 지 4반세기가 지났다.

사진의 주인공은 그 동안 숱한 굴곡을 겪었을 것이다. 학교를 다니고 대학을 졸업하고 그리고 직장을 구하고.

그 과정에서 분수의 물줄기처럼 상승과 낙하를, 비약과 추락을, 경험하였을 것이다.

내가 알지 못 하는 새에 성취감과 절감감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앞으로도 그런 일이 반복될 것임이 뻔하다.

한 세대의 짬밥을 더 먹은 내가 깨달은 삶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런고로 사진을 볼 때마다 아들을 위해 기도한다.

 

 

분수의 물줄기가 하늘로 치솓듯 자신의 열정을 다해 상승하라고.

나름 최고의 순간에 다달았다고 느낄 때 순리에 맞추어 미련 없이 낙하하라고.

그 과정에서 인생과 자연이 주는 경이와 행복을 만끽하기를.

그가 분수같은 삶을 살아갈 때 주위에 있는 수 많은 사람들 역시 놀라움과 즐거움을 온몸 가득 느끼기를.

 

나를 위해서도 기도한다.

 

삶을 분수 바라보듯 직관하고, 샘물 보듯 관조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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