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를 읽는다
박완서
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나이 드는 게 쓸쓸하고,
죽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시를 읽는다.
꽃피고 낙엽 지는 걸
되풀이해서
봐온 햇수를 생각하고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내년에 뿌릴
꽃씨를 받는 내가 측은해서
시를 읽는다.
박완서(1931 ~ 2011)
경기 개풍 출생
소설가
2025년 6월 15일 주일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