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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안
- 애틀랜타 문학회 회장

동행

아이얼굴2015.04.13 17:10조회 수 90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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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전,  6개월의 기간동안 함께 하셨지만 모든 이민자들의 삶이 그렇듯이 시간에 쫒기며 살다 보니  짧지 않았던 시간의 매일들을 자식들 기다리다 저녁 늦게 얼굴 잠깐 보고  아침이면 출근한 자식들 빈자리 지키게만 했었다.

 한국에 돌아 가신후 너무나 많은 아쉬움이 남아 다음에 오시면 꼭 후회하지 않도록 함께 할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주말이 되어 아이들과 함께 미국식 레스토랑에서 외식이라도 할 때면 두 분이 계실 때 이런 곳에도 한 번 모시고 오지 못했던 아쉬움이 많았었는데, 무엇보다 두 분에게 죄송스러웠던 것은 어머니의 가슴에 없던 몽우리가 잡힌다는 말씀에 혹시나 유방암은 아닌가 걱정을 하면서도 병원에 가 볼 엄두도 못내고 그냥 한국으로 보내드렸는데, 한국에 가셔서 병원에서 검진결과가 유방암2기 판정이 나와 속앓이를 많이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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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   마

                     조동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눈감아 고향의 향기를 맞을 때

가장 먼저 다가서는 엄마의 젖가슴

세상에 맞닿던 그 때 처음

내 일술에 닿았던 하얀 젖가슴

비릿한 젖내음에 어우러져

심장의 박동으로 두드리던 엄마의 자장가 따라

포근한 가슴에 잠들었던 그 때의 그리움

반백을 넘어 머리가 벗겨진 지금까지도

내 입에 붙어 살갑게 불려지는 엄마의 품

 

당신의 고통을 가슴에 덮어 두고

이역만리 떠나 보낸 아들을 향한 근심으로

눈물이 되고 눈물이 되어

바람 빠진 풍선 보다 더 처절하게

찌그러진 엄마의 가슴

다시 한번 그 가슴에 뭍히어 꿈을 꾸고 싶었는데

아들의 허물로 만들어 버린 암덩어리

내게 가느다란 눈물로 다가서고 있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엄마

 

 

 

 동생들과 연락해 가며 어머니의 유방암 수술과 치료 과정을 들었다. 수술후 힘들고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를 견뎌 내시고, 마침 년말에 결혼을 하게 된 사촌 동생의 결혼식에도 참석할 겸 미국으로 오시라고 했었다.

 혹시, 병이 재발하면 위험하므로 의사에게 가서 해외 장기체류가 가능한지 검사를 하셨는데,  다행스럽게 좋은 결과를 얻어 이번에 미국에 오실 수 있게 되어 너무 반갑고 어머니의 건강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주님! 감사합니다. 제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의 품에서  "예수 사랑하심은 거룩하신 말일세"를 듣고 자랐습니다. 어머니를 통해서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세상에 많은 것들을 쫓아 주님을 외면하고 방황할 때 어머니의 새벽기도에 잠깨어 주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던 저를 주님은 아시죠.  직장에서 퇴근해서 돌아 오면 할머니의 품에 안겨 잠든 내 아들에게 똑같이 들려 주셨던 어머니의 찬송을 더 들을 수 있게 해 주신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아멘 

 

2574ED38552BE69A2C363B 설레는 마음으로 아내와 함께 공항으로 갔다. 아침 시간이라 TRAFFIC이 심할 것 같아 새벽 일찍부터 서둘러 출발했더니, 생각보다 막히질 않아 일찍 도착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근처의 FAST FOOD에서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가려 했지만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하고  시간이 되어 공항으로 들어갔다.    아직 남은 시간을 터미날을 돌아 다니며, 가지고 있는 셀폰 카메라로 습관처럼 여기저기를 찍고 다녔다.

 

 기다리던 시간이 되고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을 했다. 언제쯤 나오시려나  두 분을 기다렸지만 좀처럼 나오시지를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두 분은 나오시지 않고 이젠  출구에서도 입국자들의 모습들이 뜸해질즈음에 급히 나오는 사람이 있어 부모님 인상을 말씀드리며 혹시 안에 이런 분들을 보셨냐고 물어 보았다.    아마도 통관 검사로 시간을 많이 지체 했던 이 사람도 정신이 없어 누구를 돌아 볼 경황이 없었는지 모르겠다고 하며 자기가 마지막으로 나온 것 같다고 말하고는 급하게 자기 길을 가 버렸다.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왜 아직도 안나오시는지, 혹시 비행기를 못타셨던 것은 아닌지, 통관에 문제가 있어서 말도 안통하다 보니 안절부절하며 계신것은 아닌지 별의별 생각을 다하는중에, 한국의 동생으로부터 부모님 잘 도착하셨냐는 전화를 받았다.

 하는 수 없이 지금 상황을 설명 해 주고 나중에 연락 주겠다고 한 후에

공항에 안내에 가서 지금 상황을 설명하고, 기다리던중 두 분이 힘겹게 나오셨다.

 

 가방이 많아 그 중에 하나를 다 풀어헤치며 검사하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고 하셨다.  그래도 아들이 좋아하는 젖갈이랑 된장을 뺏기지 않고 나와서 너무 좋다며 순진하게 웃으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 보며 어떻게든 좋은 것 주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에 핑도는 눈물을 감추고,  잠시 잊었던 반가운 포옹의 시간을 가지며 그렇게 그리웠했던 어머니의 냄새를 다시 맡았다.

 

SAN FRANCISCO와 SACRAMENTO

  외사촌 동생의 결혼식과 오랜만에 한국에 나갈 수 없어 만나지 못했던 이모님들과 같은 미국내이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미국에 온지 10년이 다 되도록 만나지 못하고 전화 안부만 해 왔던 외삼촌과 동생들을 이번에 가면 만날 수 있어 1주일의 휴가를 얻었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하였다. 2013년7월 아시아나항공 추락사고가 있었던 그 곳인데, 언제그랬는지 까맣게 잊은체, 긴 비행 시간의 피로와 함께 어서 빨리 새크라멘토로 갈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에어 트레인을 이용해 렌트카를 픽업하러 가는 중에 지하도에 전시되어 있는 조형물들이 눈에 들어와 몇 컷 찍어 보았다. 


 

 외사촌 여동생의 결혼식은 많은 식구들과 친지들의 축하 속에 축복받은 결혼식을 가졌다.

 

 결혼식 후에 우리는 이모들과 함께 외삼촌이 추천한 곳으로 여행을 하기로 하고 첫 날은 외삼촌과 함께 SCRAMENTO 시내 구경을 하고 둘째 날은 17mile Drive Course를 돌아 보고 오면서 SAN FRANCISCO GOLDEN BRIDGE까지 보고 오고, 셋째 날은 우리 가족과 이모들과 함께 LAKE TAHOE를 돌아 보기로 했다.

눈 앞에 펼쳐진 탁 트인 바다와 함께 귀를 즐겁게 하는 파도와 어울린 새들의 울음소리들이  내 눈으로 내 귀로 흡입되며  오래 된 가슴 속에 숨어 있었던 삶의 앙금들이 모두 사라지는 순간 마음이 열리고 가슴이 펴지는 순간이었다. 

Ghost Tree에서 긴 세월의 그림자를 안고 있는 고목들로 세월의 덧없음을 뒤로 하고 지금 함께하는 기쁨의 순간들을 즐겼다


 

                         노부부의 사랑                           

                                                                         

                                                                           조동안

 

                                         삶이 시작될 때에

                                         기뻐하며 맞는 이가 했어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삶이 힘들때에

                                         함께 하는 이가 있어

                                         버틸 수가 있었습니다.

 

                                         삶에 지쳤을 때에

                                         손 잡아 주는 이가 있어

                                         설 수가 있었습니다.

 

                                         삶이 외로와지려할 때에

                                         등 뒤에서 포근히 안아 주는 이가 있어

                                         웃을 수가 있었습니다.

                             

                                         삶을 마감할 때에

                                         아쉬워도 웃으며 보내줄 이가 있다면

                                         후회 없이 돌아갈 수 있겠습니다.



                                         사랑하는 이여

                                         그대가 먼저 간다면

                                         웃으며 천국잔치 해 드리리다.

                                        

                                         혹여 내 먼저 가더라도

                                         기꺼이 손 놓아 주시구려

                                        

                                         다시 만날 그날 위해

                                         안개꽃 하나 가득

                                         길가에 메워 놓고

                                         그대 위해 기도하리니


                                         오실제 잊지말고

                                         꽃길 따라 오시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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