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복희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연극영화과 졸업
- CBS 제1기 성우, TBC 제1기 성우
- 1996년 수필공원 초회추천
- 대한민국 연극제 여우주연상, 동아일보 연극상 여우주연상, 백상예술상 여우주연상 수상
- 연극, TV, 영화 연기자 협회 회원,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첫경험/김복희

왕자2018.10.15 18:51조회 수 54댓글 0

    • 글자 크기

 첫경험/김복희


조사; “작년 여름에 이사 온 낯선 분이 계셔 내가 먼저 다가갔습니다. 홀로 사시며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건강이 안 좋아 보였습니다. 명문 부산여고 졸업도 알게 됐습니다. 부산으로 피난 갔던 얘기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나보다 몇 년 아래지만 ‘워커’를 사용하고 있어 친구로 도움을 주며 지내고 싶었습니다.

고인은 일직이 남편을 잃으시고 외아들을 남편처럼 의지하고 있었습니다. 매일 따로 사는 아드님의 동선을 꽤 고 있었어요. 그 아들 역시 이 시대에 볼 수 없는 대단한 효자였습니다. 이웃이 모두 그런 아들을 부러워했습니다. 때로 건강문제로 비관을 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사님은 성품이 명량하여 낭 낭한 목소리로 농담도 잘하고 또 나를 무척 좋아하여 아들이 사온 빵과 과자를 손수건에 싸서 ‘워커’를 밀며 나를 찾아오곤 했습니다. 고인은 깨끗하고, 부지런하고, 음식도 잘 하며 아들에게 먹이고 싶은 마음이 대단해서 당신이 환자라는 것을 망각하고 무리하게 부엌에 서 있기도 했습니다. 매일 매일 아들을 그리워하는 “아들 바라기” 어머니셨지요 TV가 잘 안 나와 ‘러시아 월드컵’ 축구 중계를 보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여사님은 어느 날 아침 응급실로 실려 간 후 다시 호스피스로 옮긴 날 “권사님 여기가 어딘지 몰라요” 라는 전화를 하셨어요 내일 점심때 방문하겠다고 약속 했것만 그 순간부터 나를 기다렸다는 직원의 얘기를 들으니 당장 가지 못한 일이 두고두고 후회가 됩니다. 다음날 찾아 갔을 때는 깊은 잠속에 빠져 눈도 뜨지 못하고 사경을 헤매는 듯 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가 멀리서 따님이 왔을 때 무의식이지만 잠 시 눈을 떴었다고 들었어요 세상을 하직하면서 사랑하는 따님들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어버이날에 큰따님이 옷을 사 보냈다고 기뻐하며 자랑하더니 두 따님들 모아놓고 꽃길 따라 천국으로 가셨군요 부지런히 시어머니를 찾아뵈던 착한 외며느리와 손자손녀들의 슬퍼하는 모습을 지금 하늘나라에서 보고 계시겠지요 이젠 침대에서 떨어질 염려도 없고 ‘워커’를 힘들게 밀고 다닐 염려도 없고 참 편안하고 좋으시겠어요........... “

끝까지 별일 없는 듯 조사를 무사히 끝내고 단위에서 내려왔다. 구급차 가 와서 대기하고 있다. 30분 전 나는 너무나도 엄청난 대형 사고를 친 것이었다. 내 오른팔은 부러져 위아래가 따로 흔들거리고 통증은 참기 어렵다. 구급차 요원들은 신음하는 나에게 대통령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웃으며 트런프.문재인 이라고 큰소리로 대답했다. 머리는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 차로 이동하는데 검은 정장을 한 하객들이 놀라 나를 위로하며 걱정한다. 아는 얼굴들이 눈앞을 스친다. 오른쪽 어깨부터 팔이 산 떠미 처럼 부어올랐다.

‘아, 내가 엠브런스를 타는 구나’ 생의 첫 경험이다,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어쩌다 나가떨어졌는지 팔의 감각이 없어 혼자일어나지를 못했다. 어느 고마운 남자분이 당신 상의를 벗어 벌건 두 다리를 감싸 주셨다.

병원으로 가기 전 집례하시는 최목사님께 초면이지만 안수를 받았고 마음은 평온하였다

응급실 도착 후 아깝게도 내 상의를 가위로 자른다. 부러진 팔의 엑스레이 사진은 장작을 패 놓은 듯 쩍 갈라졌고 얼마나 무섭던지 이런 끔직한 일을 내가 당하다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동안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80년간 쓰지 않던 왼손잡이가 되었다. 밥도 먹을 수 있고 글도 쓴다. 우측뇌가 발달하니 아이큐가 높아졌겠다고 후배가 놀리기도 한다. 신경수술은 잘되어 내년 봄 쯤 엔 회복이 된다고 한다. 수술 한 달 후 그 의사에게서(Dr,Snehal dalal) 땡큐 카드를 받았다. 나를 수술하게 되어 감사하다고 한다. 나는 마음이 약해져서인지 깊은 감동으로 눈물을 흘렸다. 의례적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카드 한 장으로 제일 훌륭한 의사로 존경하게 되었다. 카드는 잘 간직하고 있다. 이제

난 살아났고 다른 아픈 사람들에게 눈을 돌려 봉사하며 살 것이다. 그동안 나를 위해 기도해주신 목사님들과 이웃과 사랑하는 지인들께 깊이 머리 숙어 감사드린다. 특히 한 몸이 되어 나를 돌보아준 ‘은’이에게 죽을 때 까지 깊은 감사를 잊지 않는다.

    • 글자 크기
철이 들었어요/김복희 조 사 /김복희

댓글 달기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79 연두 빛 공원에서 / 김복희8 2021.04.22 90
78 연극 연출가 이원경교수님을 추모하며 / 김복희1 2020.09.12 61
77 안타까움 / 김복희4 2020.08.16 77
76 안타까움 김복희 2020.08.16 34
75 6,25그후 70년 /김복희 2020.06.25 46
74 부활절에5 2020.04.03 58
73 두 할머니/김복희1 2019.10.01 51
72 시니어합창단/김복희 2019.08.23 37
71 진돗개 '복구'/김복희2 2019.08.05 60
70 작년 오늘저녁/김복희3 2019.07.23 45
69 망각/김복희 2019.07.21 45
68 다뉴브 강 유람선에서2 2019.07.04 41
67 오패라 "그 소녀의 이야기"2 2019.06.29 42
66 동문 야유회/김복희 3/26/19 2019.03.26 41
65 철이 들었어요/김복희2 2018.11.03 74
첫경험/김복희 2018.10.15 54
63 조 사 /김복희4 2018.07.23 50
62 아들아 /김복희4 2018.07.16 236
61 매일 편지를 쓰고 싶다/김복희 2018.07.08 43
60 아직도 다섯 달이나?/김복희 2018.05.10 39
첨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