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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길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운명아 팔자야

마임2015.07.09 23:25조회 수 141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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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아 팔자야


 


    이민 사회에는 ‘이민자는 애국자다. ’ 라는 말이 있다. 인구 밀도가 높고 경쟁이 치열한 고국에서 떠나 먹는 입을 줄여 국가에 공헌했다는 우스겟소리다. 정말 이민자가 애국자인지는 몰라도 이민생활은 그리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민생활이 힘들어질 때 푸념하듯이 ‘내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에 와서 사는 것도 팔자고 운명이지.’ 라고 흔히 말한다.


 


팔자나 운명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이디푸스이다. 인류 가운데 운명의 심각성을 오이디푸스처럼 뼈저리게 체험한 사람도 보기 드물어 보인다.. 오이디푸스의 운명 부왕 라이오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라이오스는 오이디푸스가 아기였을 때 부하를 시켜 산에 버리게 한다. 그는 장차 자기 아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신탁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타국의 왕가에서 성장한 오이디푸스는 자기가 태어난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라이오스를 만나게 된다 . 그리고 사소한 다툼 끝에 라이오스를 죽인다. 그 후에 오이디푸스는 그 나라의 왕비였던 이오스카테와 결혼한다. 나중에 모든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이오스카테의 브로치로 자신의 눈을 찔러 실명하고 만다.


 


프로이트는 이 유명한 신화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단어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후세에 자기 이름 뒤에 붙여진 ‘콤플렉스’라는 말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인생을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오이디푸스는 효성이 지극한 사람이었다. 자기를 키워준 코린토스의 왕 포리보스와 왕비인 메로페를 친 부모로 안 그는 자기가 아버지를 죽일것이라는 신탁을 피해 왕궁을 떠난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지만 그가 부모를 사랑했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가 없다. 또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질문을 던지고 정답을 못 맞추는 사람을 잡아먹는 테바이의 괴물 ‘스핑크스’를 처치한 용사이다. 그는 살인자이지만 의도적으로 아버지를 죽인 패륜아는 아니다. 그는 어머니와 결혼했으나 성 도착자는 아니었다. 그는 단지 운명이란 실타래에 목을 맨 희생자일 뿐이었다. 나는 기구한 인생을 산 오이디푸스에게 깊은 연민을 느낀다. 그 누가 따뜻한 가슴을 가진 용기 있고 지혜로운 젊은이를 사랑하지 않으랴. 나는 그의 이름 뒤에 Innocent( 결백한, 무고한) 라는 성(last name)을 붙여주고 싶다 . ‘이노센트’는 성은 중세의 교황들이 무고한 사람의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사용했던 이름이다. 물론 지금도 미국에서 사용되는 성이다.


 “가엾은 오이디푸스여! 그대 이름 뒤에 붙어 있는 콤플렉스라는 꼬리를 떼어 주겠다. 그대 이름은 지금부터 ‘오이디푸스 이노센트’이다.


 


내 ‘운명’과의 만남을 회상해 본다. 나는 어려서 객지를 떠돌다가 어느 양복점에 취직하게 되었다. 아내는 그 주인집의 딸이었다. 거의 50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일을 돌이켜 보면 우리의 만남이 진짜 운명적이었다고 믿어진다. 나는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난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며 자랐다. 그러나 내가 어렸을 때 집에서 가출하지 않았더라면 내 ‘운명’을 영원히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목사인 내 누님의 말에 의하면 내가 아내와 결혼하게 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란다. 그만큼 내게 과분하고 좋은 아내라는 뜻일 것이다. 나는 어려운 일이 닥치면 쉽게 상처받고 좌절하는 연약한 성품이었다. 그에 비해 아내는 부모의 사랑을 담뿍 받고 자라서인지 모든 일에 긍정적이며 참을성이 많았다. 아내는 가정을 잘 꾸미며 아들 셋을 낳아 잘 키웠다. 그런 점에서 나는 행운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단지 내 편의 말일 뿐이다. 아내가 겪은 ‘운명’은 행운의 반대 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아내를 억세게 고생시킨 사람이다. 아내 쪽에서 보면 내가 ‘천생연분’일까 ‘평생 원수’일까 하는 의문도 생긴다. 언젠가 내가 아내에게  물은 적이 있다.


 


“여보, 이다음 세상에 태어나도 나랑 결혼해 줄 거야?


아내는 사자성어로 대답했다.


 


"언감생심. (焉敢生心)"


 


예로부터 많은 사람이 점을 치거나 사주팔자를 보아 왔다. 그러나 옛사람들도 사주팔자가 꼭 맞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조선 9대왕인 성종은 자신과 사주팔자가 똑같은 과부가 성안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 그 과부를 불러들여 살아온 삶을 물어보았다. 그 과부는 성종이 세자로 책봉 되던 해 어머니와 사별했고 성종이 임금이 되던 해 남편과 이별했다. 그 이야기를 다 들은 성종은 “못 믿을 건 사주팔자로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사주팔자를 봐주는 사업이 쇠락하지 않는 요인이 있다. 사람의 성품이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라는 말이 있다. 좋아 보이든 나빠 보이든 싹수가 알려 준 결론이다. 많은 사람이 이 그럴듯한 통계학에 매혹되어 운명론자가 되기도 한다.


 


불행과 고난이 상처가 되어 운명이란 단어가 탄생 되었을까? 운명은 벗어 날 수 없는 인생의 짐 때문에 무릅 꿇는 제단인지도 모른다. 운명은 창조와 변화를 원치 않는다. 운명에는 미래로 향하는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다. 운명은, 겉으로는 편하고 안정되 보이지만 내면에는 썩어가는 인생의 열매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운명이란 단어에서는 자포자기의 악취가 난다. 어찌보면 운명은 인생에 대한 위선자이며 배신자이다.


  어쨌던, 지금은 운명인지 팔자인지 하는 녀석의 엉덩이를 힘껏 걷어차야 할 때인 것 같다.


 


네가 던져준 안식은


진정한 평안이 아니라


미궁 속의 끝없는 방황


파멸이 기다리는 종착역


 


너는 내 젊음과 꿈을 훔치고


이제는 절망의 브로치로


눈을 찌르기를 기다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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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댁 연가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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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 감상 잘했어요

    두분의 만남이 극적이어서

    두분의 삶의 생기도 배가 되리라 생각해요


    글에서 내용에서

    힘과 용기를 많이 얻어갑니다

    또 뵈요

  • 마임글쓴이
    2015.7.10 16:08 댓글추천 0비추천 0

    임선생님처럼 댓글을 올려 주시면 

    아틀란타 문학회 웹사이트를 방문할 때마다 

    정겨운 사랑방에 놀러 온 것 같이 행복해 질텐대요. 

    댓글에 교제와 섬김과 일체감이 외로움을 씻어 주거든요.


    감사합니다. 

  • 죄송 합니다

    너무 무심 했습니다

    이제 정신 차리 겠습니다

  • 석정헌님께

    김영길 선생님 


    영화 한편을  본것 같에요  한숨이  휴~ 나왔어요


    대단하십니다  김선생님을  존경합니다. 놀라워요


    나는  많이 부끄럽습니다. 문학회원 모두분에게  뱁새가  황새를 ...  되뇌이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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