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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수
- 시인
- 1982년 도미
- 월간 한비 문학 신인상 수상
- 애틀랜타 문학회 전 회장

어머니, 연필과 코스모스 그리고 자장면

석정헌2020.08.19 10:28조회 수 62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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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연필과 코스모스 그리고 자장면


                 석정헌


깊어가는 여름의 한자락 

가을은 아직도 저만치에서 서성이는데

아침 저녁 바람은 제법 써늘하다

펜데믹 상황의 답답함에 열어젖힌 커텐

내려다 보이는 뒷뜰 이제 시작하는 붉어진 낙엽 

하나둘 떨어져 뜰을 어지럽히고

자그만 텃밭 가장자리 잡초 사이사이

몇 안되는 연약한 코스모스 미풍에 살랑거린다


집안에서만 딩굴다 떨어진 입맛

하루 종일 아내가 만든 술빵 한조각으로 떼운 허기

코스모스를 보니 노란 미제 연필과 

자장면 생각에 출출한 배 침을 삼킨다


뒷문 활짝 열고 내려선 뜨락 상큼한 바람 

잡초에 섞인 코스모스를 흔들고 

내 가슴을 스치는 시원함을 

과욕스럽게 들이마시고

그동안 몹쓸병으로 꺼림칙하고 혼란했던 상념을

그나마 조금 씻어낸다


나는 아직도 종종 60여 년 전의 어린 시절로 

금붕어 세갈래 꼬리 흔들며 헤엄치 듯 달려간다

국민학교 2학년 코스모스를 닮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신 담임선생님 (지금 생각하니)이 오셨다


온갖 칼로 패인 낙서로 고르지 못한 표면의 책상

삐걱거리는 딱딱한 나무의자

연필이란 것이 깍을때마다 뭉텅이로 떨어지던 나무조각

거친 누런종이에 연필심은 딱딱해 글씨를 쓸때마다

공책을 찢어놓기 다반사이고 왜 그렇게 잘부러지는지

그런데 예쁜 노란 색의 미제연필

얼마나 글씨가 잘 쓰이고 잘깍여지는지

또 향기는 얼마나 좋은지

그 연필이 모두가 갇고 싶어하는 선망의 대상이었다


고모가 미국에서 다니려와서 선물로 주었다고

자랑하던 미제 연필 한자루

그것을 잃어버리고 교실이 떠나도록 울던 급우

모두 책상 위에 눈 감고 무릎 꿇고 두손 들어

벌을 세우신 선생님

아픈 팔 내려놓고 당돌하게도 가져간 사람은 

한사람인데 전부가 벌을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말을 하였다가 눈에 불이 번쩍이도록 맞은 따귀

끝내 찾지못한 노란 미제 연필

그리고 벌청소와 아픈 따귀 억울함에 식식거리다

우리반이 가꾸던 화단의 코스모스 다 꺽어버리고

약간은 풀린 화 운동장에  떨어진 낙엽 발로 차 버리고

흘린 눈물 우물에서 씻어내고 불안한 마음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해도 뉘엿뉘엿 제 갈길로 간다


꺽어버린 코스모스 엉망이된 화단

누구의 고자질인지 선생님께 심한 벌을 받고 

호출된 어머니 양손 마주잡고 고개 숙인체 

선생님 앞에 죄인처럼 서 계시던 모습

어머니와 둘이 어지럽혀 놓은 코스모스

화단 정리를 다하고

꺽어놓은 코스모스 손에 들고 돌아오는 길

눈물 범벅된 얼굴 치맛자락으로 닦아 주시며

배고프지 않으냐는 말씀에 머리 끄득이며

자장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근처의 중국식당에서 모든 것 잊어버리고

먹은 자장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지금도 자장면을 생각하면 연필과 코스모스

눈에 불이 번쩍이도록 빰을 치신 선생님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핑돈다

연연히 피는 코스모스는 아직도 아름답고

눈앞에서 볼수있는데 다시 뵐수없는 어머니와 선생님

노란 미제 연필 먹던 자장면 마져먹고 가는 길에

지금도 있는지 한번 찾아 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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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정이 부끄런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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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
  • 한편의 드라마를 본듯합니다.


    미제 노란 연필을 사드릴까요?


    '다시 뵐수 없는 어머니' 이 대목에서 눈물이 납니다. 

  • 석정헌글쓴이
    2020.8.19 12:53 댓글추천 0비추천 0

    선생님  노란 미제연필 지금도 있을까요

  • 그럼요 월마트에 있어요 

  • 석정헌글쓴이
    2020.8.19 13:53 댓글추천 0비추천 0
    정말 미제 일까요
  • 계절을 많이타고 가을 코스모스 와 들국화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저 인지라 선생님의 글을 읽어면서 잠시 동심의 셰계에 머물러 봅니다 

    날씨는 무덥지만 이곳 저곳에서 피멍이 든 색상으로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려 주는 8월의 중순이지요 ~

    늘 선생님의 글을 대하노라면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앉아  즐겨 마시던 막걸리 생각이 나곤 합니다 ㅎㅎ

  • 석정헌글쓴이
    2020.8.20 08:37 댓글추천 0비추천 0
    막걸리 한사발 대접해드려야겠네요 ㅎㅎㅎ
  • 굵은 작품이 여러개 나온 것 같아 즐거운 

    긴장을 하며 읽었습니다.ㅎㅎㅎ


    시 두편(첫 째, 두 째문단)을 독립시켜서 시로 만들어도 좋을 것 같고요

    아니면 1연과 2연을 붙혀도 시가 될 수 있어요.

    나머지는 수필로 다듬으면 선생님의 독특하고 정겨운 

    정말 좋은 수필이 될 것 같아요.

  • 노란 미제연필과 코스모스와 엄마 그리고 짜장면

    감동의 영화 한편을 본듯합니다

    마음도 생각도 갇혀버린 것 같이 멍한 요즘

    선생님의 글이 잠자던 저의 감성을 깨우며

    먼 옛날이 느릿하게 물안개로 피어오릅니다

    참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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