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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길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아픔이 머물러 영글은 열매

마임2015.05.21 13:54조회 수 162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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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이 머물러 영글은 열매


                                                                  


                                                                          마임


내 엄마의 이름이 뭐예요?”                                                                     


 


나는 아버지가 네 번의 결혼으로 낳은 오 남매 중의 셋째인데 생모를 본 적이 없다. 내가 어렸을 때 한번 어머니의 이름을 물어본 적이 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성이정씨라고만 할 뿐 끝내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 후에 아버지는 여든셋을 일기로 먼 길을 떠났다. 결국, 아버진 그 돌아올 수 없는 여행길에 어머니의 이름도 함께 가지고 간 셈이다.


 


아버지의 고향은 평북 정주이다. 할아버지가 일제 강점기에 엽총으로 뒷산에서 노루사냥을 하며 넓은 농토와 광산을 소유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보면, 아버지는 흔한 말로부잣집 도련님이었던 것 같다. 기미년생인 아버지는 그 시절 사람 같지 않게 트럼펫, 기타, 아코디언, 바이올린 등을 능숙하게 다루었다. 아버지가 이북에서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것을 짐작게 한다. 해방이 되어 공산 정부가 들어서자, 아버지는 할머니가 싸 준 은 덩어리들을 보자기에 싸서 몸에 두르고 삼팔선을 넘었다. 대부분의 이북 사람은 전쟁중에 피난을 내려왔다. 그런 사람과 비교하면 아버진 별 어려움 없이 남한에서 경제적 기반을 쌓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보기 드문 행운아였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부모를 원망하는 사람이었다. 할머니가 아버지를 어린 나이에 연상의 여인과 내키지 않는 결혼을 시켰다는 것이었다. 그것이부잣집 도련님이 부모를 탓할 만한 이유가 되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단지 가슴 아팠던 내 어린 날을 생각하면 아버지의 그 불만은 호사스러운 엄살이라고나 해야 할까 보다.


 


나의 어머니는 경북여고를 졸업했다고 하니 경상도 사람이라고 추측된다. 어머니는 육이오 전쟁통에 가족을 잃고 미군 부대의 장교 클럽에서 피아노를 치며 생계를 이어가다 군무원으로 근무하던 아버지를 만났단다. 그 어머니가 나를 낳은 지 한 달 만에 다시 집을 떠나 버렸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왜 헤어졌는지 나로서는 정확한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어머니가 떠난 후로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내가 있는 단란한 형태의 가정을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불행하게도, 나는 생모가 없는 결손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되었다. 하지만 나의 진짜 불행은 어려서 받은 상처의 영향 때문에 인생의 대부분을 우울증 속에 살아야 했던 일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몸과 마음이 약하고 병들어 있었다. 육체적인 면 보다도 정신적인 문제가 더 심각했다고 볼 수 있었다. 내가 세상에서 좋은 인연으로 만난 관계들을 바람직하게 가꾸어 갈 성품이 되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젊은 날은 파괴된 관계 덕분에 여기저기 회한으로 얼룩져 갔다. 나는 많은 잘못을 저지르며 인생의 시행착오를 겪어야만 했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안고 산다는 것이 고통이라는 것을 느낄 때쯤에서, 내가 미래에 지급하지 않으면 안 될 가슴 아픈 청구서가 과거 속에서 코앞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어느덧, 아내와 자식들에게 상처 주고 있는 나의 모습은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아버지의 형상을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내가 받았던 상처에 대한 몰이해야 말로 내 인생의 가장 큰 어리석음이며, 손실이며, 비극이었다.


상처를 치유하려는 나의 몸부림이 시작되기 이전까지의 삶이 내 인생의 낭비였다. 상처는 외부로부터 오지만 책임은 내 안에 있다. 상처는, 진실을 볼 수 없도록 눈을 가리고 사물을 넓게 포용할 수 없는 영적(Spirit) 협심증에 갇혀 살도록 자신을 스스로 편협의 어두운 철창 속에 감금한다. 상처의 깊은 곳에는 우울과 좌절의 거머리가 기생한다. 분노는 절망의 감정에서, 감정은 과거의 기억에서, 과거의 기억은 상처의 두려움에서, 그러므로 분노는 두려운 상처의 과거가 있는 감정의 뚜껑을 건드릴 때 절망과 함께 터져 나온다. 상처는, 어리석음과 교만에 정비례하고 지혜와 겸손과는 반비례한다. 강할수록, 자존심의 한쪽은 상처가 머금고 있다. 가부장 제도가 스며 있는 전통문화의 폐해는 아녀자들을 상처 준다는 점이다. 분노는 악마에게 보내는 초대장이며, 상처의 눈물은 그들의 잔을 채우는 포도주이다. 현대 의학에서 말하는 우울증이란 마음속에 상처가 둥지를 틀고 앉아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나의 끝 없는 자랑은 상처가 만들어 준 굶주림에서 비롯되었다. 모든 결혼 계약서의 첫 번째 조항에당신의 상처까지 사랑하겠습니다.’라는 단서도 써넣기를 희망한다. 상처의 회복 없이 죽음에 이르는 것이 가장 큰 저주이다 - 다시 말해서  자기 상처의 뿌리를 캐내지 못하고 생을 마치는 것은 여행의 목적을 상실한 채 내리는 종착역과 같은 인생이다. 상처 입은 마음은 과거를 분노의 통장으로 사용하고, 치유된 가슴은 과거를 미래로 가는 연료로 사용한다. 교만의 고향은 상처이다. 나는 결혼 적령기의 내 아들들이 훌륭한 신붓감을 찾기에 앞서 먼저 인격과 상처의 허물을 벗고 아름다운 영혼을 소유한 젊은이로 거듭나기를 기도한다. 결혼은 두 개의 상처를 모아 각자의 가슴에 나누는 게임이다. 관계속의 다툼은 상처가 뒤집어 쓰고 있는 가면의 다른 이름이다. 남을 비판하고 질투하거나 시기하며 미워하는가? 그렇다면 나는 아직 상처의 함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불쌍한 사람일 수도 있다. 혼수품 속에 상처가 있는 결혼은 불행의 시한폭탄을 안고 출발한 항해이다. 상처의 맹독성은 감염자가 인생의 참다운 의미를 찾지 못하도록 의지를 마비시킨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상처란, 악마의 이유식(Baby food)이다. 서로의 상처가 스며 나오며 단 한 번의 밀월 (Honey moon)이 막을 내린다. 신 만이 조건 없는 사랑을 할 수 있다 - 인간의 조건 없는 사랑에는 상처의 냄새가 물씬거린다. 19 세기 유럽의 과실은 인간의 상처와 치유가 반영하는 역사의 흐름을 알지 못해 성급히 신의 죽음을 요구한 것이다. 어려서 부모에게 받은 사랑은 이 세상을 넉넉히 살아가는 힘을 저장케하고, 부모에게 받은 상처는 정신적 불구를 형성한다 . 인간에 대한 최고의 사랑은 그의 상처를 이해하여 주는 것이다. 부모는 상처로부터 자녀를 보호하지 못할 때 가해자가 된다. 진실이 원하는 데까지 정직해지지 않는 한, 상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상처는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거짓을 사랑한다. 당연히 극복되어야 할 인격의 한계가 상처와 결합할 때 난산의 진통이 따른다. 예외가 있긴 하지만, 결혼은 상처에 대한 무지에서 시작하고 이혼은 상처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한다. 이상형을 만나 한눈에 반해 몰입하는 연애는, 행복한 결혼을 위해 그 인격 속에 어떤 모양의 상처가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치유는 상처 입었던 인생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성스러운 자유이다. 상처의 계곡을 건널 수 있는 것은 참된 사랑의 힘뿐이다.


- 상처는 분명히 원하지 않은 불이익이지만, 그 쓰라림 가운데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한다면 우리는 상처를 통해 인생의 질곡과 멍에를 벗어나는 축복을 가슴에 안을 수 있다.


 


하늘에 별들이 총총히 떠 있던 어느 날 밤. 그 별 들을 바라보던 아내가 내게 말을 걸었다.


여보! 돌아가신 아버지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신 줄 알아?”                        


? 갑자기 웬 뚱딴지같은 소리야!”                                                          


생전에 내게 말씀하셨거든!”                                                                 


언제?"                                                                                             


언젠가 나에게내가 그놈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놈은 모를 거다.’ 한 적이 있으셔.”


근데 왜 지금 얘기하는 거야?”                                                          


, 내가 당신이 그 사랑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저~어 하늘의 별에 담아 놨어.”


난 뭔 소린지 모르겠네. 얘들도 아니고 참 ---.”


그러니까 대답만 해. 저 별에 담아 놨던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거야? 안 받을 거야? 받을 거면 손 이리내!”


나는 할 수 없이 아내에게 한 손을 내밀었다. 아내의 눈에 윤기가 흘렀다. 아내는 내 손을 잡고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을 향해 뻗치더니 허공을 한 번 움켜쥔 뒤 다시 내 가슴에 갖다 대며 외쳤다.


~! 별 들에 맡겼던 아버지의 사랑이 이제 당신에게 들어갑니다. ‘이놈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아내의 손이 내 가슴에 닿자 밤하늘의 모든 별 들이 영롱한 빛을 뿜기 시작했다. 온 세상이 보석 같은 별빛으로 가득 차올랐다. 많은 세월, 상처 투성이 였던 내 옆을 지켜 준 아내가 눈부시게 다가왔다. 그녀의 가슴은 내 상처가 머물렀던 둥지이기도 했다.


 


 



 


 





                                                   에세이스트   2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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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 “EXECUTIVE ONLY” – 그 30년 후의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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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삶은 희극보다는 비극에 가깝다는 말에 한표!

    글마다 페이소스가 진해서 맘에 드네요

    보스톤에서 오래 사셔선지

    논리전개도 차갑고 냉절하시고

    그래서사모님이 사랑에 빠지셨겠죠?


    잘보고 갑니다 감사!!!



  •  내가 예뻐 해주려고 했는데

     어느 틈에 네가 가 버렸구나

     영길아!

     혹여 꿈에라도 와 줄래

     이누나 집 마루를 고치며

     너의 어린시절의 얘기?

     다 풀지도 못하고?

    가버렸으니 보고 싶구나

    영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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