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영길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꼬꼬댁 연가

마임2015.08.31 21:27조회 수 197댓글 6

    • 글자 크기


꼬꼬댁 연가(戀歌)

 

내가 9에이커의 숲 속에 자리 잡은 모빌 홈(mobile home)에 살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처음 계약했던 집이 해약하게 되어 1,000마일이 넘는 다른 주에서 온라인으로 이 모빌 홈을 계약하고 이사를 왔으니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보다 더 우연 같은 일은 처음 방문한 어느 교회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다섯 마리의 암탉과 한 마리의 수탉을 선물로 받은 것이었다.

 

마침, 앞마당 한쪽에는 전에 지어 놓은 닭장도 있었다. 한적한 숲 속의 너른 터는 닭을 키우기에 최적의 환경 같아 보였다. 닭장은 6피트 높이의 철망으로 둘러쳐진 울타리였다. 나는 암탉이 올라가 달걀을 낳을 수 있는 조그만 둥우리를 만들고 짚을 깔아 주었다. 닭 모이와 물을 주고 닭들을 운반해온 마분지 상자에서 꺼내어 닭장 안에 풀어 놓았다. 닭들은 물과 모이를 먹기도 하고 잔디 위에 쌓인 나뭇잎을 발로 헤치며 우리 안을 맴돌았다. 수탉은 볏을 갖고 있었다. 몸통은 흰 바탕에 날개와 꼬리는 짙은 남청색 깃털이 붉은색의 암탉과 대조되어 우아하고도 날렵해 보였다. 몸집도 암탉보다 더 우람하고 맹금류에서 볼 수 있는 날카롭고 튼튼한 발톱으로 힘있게 낙엽을 헤치며 먹이를 쪼아 먹었다. 암탉들도 분주히 울타리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닭들이 신기해 보였다. 무엇보다도 아내와 단둘이 지내던 한적한 숲 속에 울긋불긋한 깃털을 가진 여러 마리의 닭들을 보니 마음이 푸근해져 옴을 느꼈다. 조용하던 숲 속에 사람 사는 활기가 넘쳐 보였다. 나는 닭을 가져오기 잘했다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날 저녁부터 당황하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지자 닭들이 한 마리씩 집 앞의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한 번의 날갯짓에 2, 30피트는 날아 오르는듯했다. 닭들은 가지에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올라앉아 밑에선 잘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여태껏 닭이 그렇게 높이 날아오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더욱이 지붕 없는 닭장에 닭들을 가두어 기르지 못한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나야말로 닭 쫓든 나무 위 쳐다보는 격이었다.

 

먼동이 트기 전에 '꼬끼오'하는 우렁찬 닭울음 소리가 들렸다. 조용한 숲 속이라 그런지 더 정감있게 울려 퍼졌다. 나는 닭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기분 좋게 잠에서 깨어났. 그러나 한번 나무에 오르기 시작한 닭들은 그 다음 날에도 또 그 다음 날에도 닭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낮에는 집 주위의 숲 속을 다니며 풀 속을 발로 헤쳐 지렁이나 그 밖의 벌레들을 잡아먹었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다시 나무에 올라갔다. 천신만고 끝에 닭들을 지붕을 만든 닭장에 다시 집어 넣었지만, 닭 키우기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저녁 때, 일터에서 돌아와 모이를 주고 닭장을 청소하는 일도 힘들지만, 아내가 내게서 닭똥 냄새가 난다고 할 때가 더 곤혹스러웠다. 닭장을 청소한 뒤 목욕을 해도 냄새가 여전히 난다고 했다.

 

닭들을 가두어 키우기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나자 암탉 한 마리가 달걀 위에 배를 깔고 앉았다. 품은 달걀은 열서너 개쯤 되었다. 얼마후에 또 다른 두 마리의 암탉도 달걀을 품기 시작했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모이를 줄 때마다 암탉들이 달걀을 품고 있는 둥우리를 들여다보았다. 며칠이 지나도 암탉들은 꿈쩍하지 않고 달걀을 품고 있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분주히 먹이를 쪼아먹던 닭들이 식음을 전폐하고 알을 품는 모습이 신통하게 보이기도 했다. 나는 아침에 알을 품고 있는 세 암탉 사이에 물과 모이를 담은 조그만 그릇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저녁때 둥우리 안의 모이 그릇을 았지만 먹은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암탉들은 꼼짝하지 않고 달걀만 품고 있었다. 볼품없고 냄새나는 말썽꾸러기 암탉들이 오로지 알을 부화하기 위해 더위를 무릅쓰고 목마름과 굶주림을 참는 모습을 보니 슬그머니 닭들에 대한 경외감이 생겨났다.

 

나는 젊었을 때 무엇을 진듯하게 참고 견디는 성품이 아니었다. 특히 관계 속에서의 문제나 불편함을 참지 못했었다. 자신의 감정과 입장을 우선시하는 이기적인 성품이었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야 사람에게는 누구나 장단점이 다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환경이나 처지를 떠나 마음 한구석에 존중받아야 할 순수함이 자리 잡고 있다. 내가 이점을 일찍 깨달았다면 좀 더 참으며 상대편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터득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냄새나는 미물인 닭이 나보다 훨씬 나은 것 같다.

 

최근에 강대국의 비밀’이라는 고국의 교양 프로를 본 적이 있다. 한니발과 로마의 시민권에 얽힌 이야기이다. 한니발은 알프스산맥을 넘어 로마군을 대파하였다. 연속된 세 번의 대전 트레비아, 트라시메나, 칸나이 전투에서 로마군을 괴멸시키고 승리한 것이다. 한니발은 도시 연합국가인 페르시아제국이 두 번의 패전에 멸망한 것처럼 로마도 파멸할 줄 알았다. 그러나 로마세 번의 패전 후에도 강하게 결속했다. 명장 한니발을 당혹하게 한 이 사건의 비밀은 로마의 시민권이란다. 로마는 주위의 도시국가들을 무력으로 점령한 후에 그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어 왔었다. 로마는 폭넓은 관용정책을 폈다. 심지어는 삼니움족과의 오랜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그들을 처벌하지 않고 로마시민으로 받아들였다. 피정복자를 같은 시민으로 끌어안은 것이었다. 칼을 들고 맞싸우던 점령지를 품는 너그러운 정책이 도시국가 연합을 결속시키고 로마를 위대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로마보다 더 위대한 탄생을 나의 닭장에서 본다. 닭들이 알을 품기 시작한 지 3주쯤 되었을 때 알을 품고 있는 둥우리에 암탉들 사이로 병아리 한 마리가 나타난 것이다. 샛노란 병아리는 붉은 깃을 가진 어미 닭과 대조되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병아리의 모습을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여보, 병아리가 나왔어. 병아리!

 

품는다는 것은 어려운 현실을 견디고 새 역사를 창조하는 것과 같다. 어미 닭은 그것을 몸소 실천해 내게 보여 준 것이다.

 

이젠 아내가 내게 닭똥 냄새가 난다고 핀잔을 줘도 못 들은 척 해야겠다.

 

 

 




·        




















    • 글자 크기
김소운의 ‘특급품’을 읽고 운명아 팔자야

댓글 달기

댓글 6
  • 하하하하 깔깔대며


    재밌게 읽다가 나도 감탄의 탄성을  지를뻔했습니다.


    와 ! 경외하는  암닭이여 !


    김선생님은  글을 너무 재미있게 쓰셔요 그리고


    내포된 깊은 철학이 있고요  눈에 선하게 그릴수 있는 닭들의 이야기

     

    '꼬꼬댁 연가'   많은이들이 읽었스면 좋겠어요


    이아침이 경쾌해 집니다.

     

  • 왕자 김복희님께
    마임글쓴이
    2015.9.1 16:31 댓글추천 0비추천 0

    왕자님!

    왕자님의 댓글에 힘이 솟습니다.

    문장이 부드럽게 흐르지 못해

    햇병아리 티가나는데

    재미있으시다니 고래도 춤추고

    저도 춤춰요.

    I love u!

  • 김선생님 이제 시골 생활에 젖어 드신 것 같네요

  • 석정헌님께
    마임글쓴이
    2015.9.1 16:39 댓글추천 0비추천 0

    아들도 여기서

    말뚝하래요.

    직업상 우선은 무지 편해요.

  • 집에서 양계하는 것은 평범한 일은 아니죠.

    읽는 재미 와 배우는 재미를 함께 주시네요.


    아내의 핀잔으로 마무리는 신의 한수!!!즐감

  • keyjohn님께
    마임글쓴이
    2015.9.1 16:48 댓글추천 0비추천 0

    사실은 마누라가 알러지가

    심해

    사슴 아프지만

    눈물을 머금고

    병아리 21 마리를 낳은

    5 Hen 과 1 Rooster(** 쟁이) 를

    병아리와 함께

    시집 보냈습니다.



    세상에나,세상에나, 아니 세상에나...

    지난주 같은 교인네 집에 갖는데

    세상에나, 시커멍 종자 닭을 키우는데

    달걀이 하나에 $4.00 짜리라면서 

    생달걀 까주는데

    고소하기가 깨소금 저리 가라더군요.

    블랙 카퍼라는 종자라네요.

    그래서 마눌님에게

     "여보. 나 이런 닭 키우면 안되?"

     했더니 

    "흥"

    하더라구요.

    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그래서

    마누라에게 김밥 마는 심정으로 이 글을 썼지예.





    "마누라님 오째 다시

    삥아리 키우면 안 되겠습니꺼?"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8 김소운의 ‘특급품’을 읽고1 2015.09.14 298
꼬꼬댁 연가6 2015.08.31 197
6 운명아 팔자야4 2015.07.09 141
5 산다는 것3 2015.06.02 122
4 아픔이 머물러 영글은 열매2 2015.05.21 162
3 “EXECUTIVE ONLY” – 그 30년 후의 미국1 2015.04.06 104
2 분노의 재료 역학1 2015.02.16 114
1 내가 JAZZ이야기를 해도 괜찮을까?6 2015.02.16 549
첨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