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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건국 전쟁> 감상문 심사를 마치며

관리자2024.08.27 18:01조회 수 237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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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건국 전쟁>

       감상문 심사를 마치며 

                         

                            아해 김태형        

               

  지난 3월부터 이승만 건국

대통령 기념사업회 애틀랜타

지부에서는 우남 이승만 박사의

업적을 새롭게 조명한 영화,

<건국 전쟁> 상연을 추진해왔다.

한편 영화 감상문 모집을

미국 동남부 6개 주에 흩어져

있는 한인교회, 한글학교 등

여러 한인 단체들에 수차례

신문광고와 함께 E-mail을

발송했다, 그 결과 영화관은

예상외의 많은 관객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었지만,

감상문 응모엔 대부분

소극적이었다. 

 

 지난 몇 년간 김구 재단의

후원으로 김구에 관한

전기물과 홍보 책자들이

전국 한글학교에 무상

배포됐고 한글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하나가 되어

백범 김구 선생 학습에

총력을 기울였다.

김구 선생에 대한 글짓기

대회도 전국적으로 성황을

이룬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에 대해선

별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한민국 애틀랜타

총영사관에게도 감상문

모집 취지를 설명하고

시상식에 협조를 의뢰했지만,

반응은 미지근했다.

오늘날 젊은 한글학교

선생님들이야 학창시절

좌 편향된 교사들에게서

역사를 배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나라를 대표해 외교활동을

펼치는 총영사관에서조차

자국의 건국 대통령에게

관심을 두지 않으니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응모한 감상문

하나하나에서 작성자들의

지극한 애국정신이 묻어나와

심사위원들은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심사위원 구성은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을 주축으로

하였고 이승만 기념사업회

애틀랜타지부 회원 두 명이

합류했다.

그중 한 분은 이승만

대통령의 숨겨진 업적을

샅샅이 찾아내느라

컴퓨터에 매달려 수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심사를

해주신 목사님은 미국

애국청년연합회를 이끌며

젊은이들을 영적으로

지도하고 계셨다.

애국청년연합회회원 중 몇

명은 멋진 감상문으로

보답했으니, 아름다운

인연이란 이런 게

아니겠는가?

10대부터 80대에 이르는

연령층에서 응모작품을

보내왔고 그중 10명이

대상, 최우수상 등의 영예를

얻었다. 최종 심사대상에

오른 김상문 작성자 모두는

그동안 장막에 가려졌던

이승만 대통령의 숭고한

경천(敬天), 애국(愛國),

애족(愛族), 애민(愛民)의

사실에 놀라워했고, 또한

이를 심사하는 심사위원

전원도 이승만 대통령이

평생 지켜냈던 경천 애민의

정신에 감탄했다. 

   

 특히 대통령의 깊은 신앙심에

감동한 대상 수상자의 글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22세 때

아펜젤러 선교사로부터

세례를 받은 후 일생 수많은

정치적 난관을 굳은

신앙심으로 극복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민주주의는 결코 없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도

때론 정치와 신앙 사이에서

고민도 하셨다지만 끝내

하나님에 의지해 우리나라를

공산주의로부터 굳건히

지켜내셨다. 

  

 당당히 수상의 영예를 안은

올해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만 11세 소년은 미국의

건국 대통령인 George

Washington은 기념관과

동상이 3000개나 된다면서

한국의 건국 대통령은

완성된 기념관 하나

없음에 놀랐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에 살면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한국에 들를 때마다

사람들이 잘사는 것을 보고

한국 사람은 원래부터

그렇게 잘살았다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이번에 건국전쟁

영화를 보고 나서야

그게 다 이승만 대통령과

많은 선조가 흘린 피와

땀의 결과라는 것을

알았다고 고백한다.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글을 열심히 배워 자기는

한국말도 잘하고 감상문도

잘 쓸 수 있다고 했다,

훗날 한국과 미국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이 소년의 포부가 사랑스럽다.

이렇게 영화 한편으로

초등학교 학생들도 진실의

눈을 뜨게 되니, 건국 전쟁

같은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영화가 더 많이

제작되기를 바란다. 

 

21세 청년의 감상문은

한국의 학생 교육에 관한

불편한 현실을 파헤쳐 주어

심사위원 전원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번 영화를 보고 나서야

이제까지 자신이 너무

무지했다고 후회하면서

그는 ‘독재자 이승만,‘

’38선의 주범 이승만,‘

’남한 단독선거의 주범

이승만,‘ ’영웅 김구',  '남한의

북침.‘ ; “이것이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역사책에서 가장 심도 있게

내가 배운 내용이다.”라고

고백한다.

또한, 자유민주주의 토대를

만든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역사에서 지워 버리고

독재자이자 도피자로

전락시키려는 문재인 정권과

그의 추종자들의 의도를

알아차렸다고 외친다.

신문, 방송, 출판 등 모든

언론매체를 장악하고

전교조의 교사들을 이용하여

역사를 왜곡, 부정해 온

좌파정권의 실책을 비난한다.

그러면서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라고

설파한 윈스턴 쳐칠의 명언을

곁들여 감상문을 마무리한다.

 

 한미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승만 대통령의

석사, 박사 학습 과정에서

보여준 천재성과 뛰어난

외교 능력을 높게 평가한 글,

그리고 미국 정계의

주요인물들과 당당히

교류하면서 한미상호협정

등을 끌어내

”Pen은 칼보다 무섭다는

말을 몸소 증명해 낸 분이다“

라고 그를 칭송한 글도 있었다.

1954년에 이승만 대통령의

미국방문에서 일어난 일들을

소개한 글에선 “우리는 절대

잊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계곡과 산에서 미국과 한국

군인들의 영혼이 함께

하나님께 올라갔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기억을 소중히

여기듯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소중히

여기시기를.”이라고

1954년 상하의원 양원 합동

연설을 인용하며 미국의

어머니들께 진심 어린 감사를

드린 이승만 대통령을

칭송한다.

그런 애국자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좌 편향 사람들에게

이승만 박사의 치적을 바로

알리고 역사적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사실 단재 신채호도 “펜은

칼보다 무섭다”라고 처칠과

똑같은 말을 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민족주의

관점에서 민족의 자긍심을

알리려 부단히 노력한

분이다. 나는 이념과 이념이

서로 헐뜯는 현 상황에서

역사를 똑바로 알기처럼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 <건국 전쟁>은

온 국민이 한 번, 두 번

또는 여러 번까지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쳐칠은

1874년생이고 신채호는

1880년생이다.

두 사람은 같은 연령대의

사람이고 서로 만나지

않았으니 누가 먼저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라는 명언을

남겼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역사학자이고 대쪽같은

선비인 신채호가 남이 한

말을 그냥 따라 했을 것

같지는 않다.

   

 감상문을 읽는 내내

노신(魯迅)의 ”먹으로 쓴

거짓말은 피로 쓴 진실을

지을 수 없다.”라는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건국 전쟁> 같은 영화로

인해 이승만 대통령에

관한 역사적 진실은 꼭

밝혀지리라 생각한다.

이들 감상문에서 진실해명은

벌써 시작되고 있음을

감지한다.

우리나라는 오래도록 좌와

우의 정치적 대립이 심해

왔다.

좌와 우로 갈라선 국민

상호 간의 신뢰도가 낮아

소통의 부재가  심각하다.

하지만 이제라도 우리가

함께 힘을 모아 바른 역사를

알리는 데 앞장서야겠다.

그리고 ’Hell 조선’을

외치는 젊은이들에게도

“모국을 사랑하는 자는

인류를 미워할 수 없다”라는

윈스턴 쳐칠의 말을 꼭

일러주고 싶다. 사실 나는

<건국 전쟁> 영화 감상문을

차례로 읽으면서 모국을

사랑하는 이들이 우리

주위에 아직도 많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울컥했다. 

 

워터게이트 추문으로

대통령직을 사직한 Nixon

대통령은 자신의 처지를

후회한 듯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삶의 어두운 면도

알아야 한다”는 유언 비슷한

말을 남겼다.

이승만 대통령에게 정치적

잘못은 있었어도 그의 긴

통치 기간 (1947년~1960년)

에서 한 줌이라도 어두운

인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절대 권력자인 로마의 황제,

조선의 왕들, 러시아의 차르,

오스만제국의 술탄, 러시아의

공산주의자들 중에는 피해

망상증으로 정적들을 무참하게

살해한 군주가 많이 있다.

암울했던 해방정국에선 여운형,

김구, 송진우, 장덕수 등

정치지도자들이 의문의

살해를 당했고, 특히 김구,

여운홍 등의 암살 배후로

이승만 대통령을 지목하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이 정적들을 제거했다는

결정적 증거는 전무 하다. 

 

이승만 박사는 고국이 아닌

하와이의 한 요양병원에서

고국산천을 그리며

파란만장했던 인생을

마감하셨다. 그가 울먹이며

마지막 기도를 드릴 때 평생

동고동락하던 프란체스카

여사가 지켜보고 있었다.

임종시에도 조국을 위하여

갈라디아서 5장 1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라는 구절을

언급한다. 그가 한성감옥에서

처음으로 성경을 읽을 때

한글로 된 성경이 없어서

영어 성경으로 시작했으니

그의 마지막 기도도 영어로

하셨을 듯하다.

“It is for freedom that

Christ has set us free.

Stand firm, then, and

do not let yourselves

be burdened again

by a yoke of slavery.

그가 1948년 대통령

취임식에서 한 맹세,

”나는 하나님과 국민 앞에서

나의 의무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를 끝까지 지키며

평생 그의 신조였던

경천애인의 화신으로

살다 가셨다.

 

나는 한결같이 고국과

민족을 위해 심신을 희생하신

순결하고 강건한 영혼을

가지신 대통령을 백척간두에

선 대한민국에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이 글을 마친다. 

   

       2024년 8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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