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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희
- 비올라 연주자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3단짜리 조립식 책장

송정희2017.02.08 10:43조회 수 89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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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단짜리 조립식 책장

 

미국와서 산지 10년이 후딱지나고도 3년이 더 흘렀다'.

한국에서처럼 좋은 가구의 개념이 없어진지 오래. 아이들이 여럿이다 보니 조립식 책상과 책장만 집에 가득했었다.

아이들이 독립을 한건지 내가 독립을 한건지 어쨋든 그 많던 책상과 책장이 필요없게되었다.

이 작은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사용하던 물건들을 집앞에 내어 놓으니 필요한 사람들이 하나둘 가져갔다. 내가 필요한 책장 몇개만 새집으로 가져왔다.

몇년전 한인회관에 소지했던 책들을 모두 기증후 난 그후 킨들 전자책으로 독서를 한다.책대신 자잘한 물건들을 올려놓는 용도로 쓰이는 책장들. 그중 3단짜리 까만 작은 책장을 실내 벽난로를 막는 용도로 가로 놓아 빼곡하게 물건들을 올려 놓았다.

폴리라는 새끼고양이를 키우게 된 후의 일이다.

겨우 젖을 뗀 새끼고양이를 첫눈에 반해 키우게 되면서 점점 자라며 녀석의 엉뚱하고 속터지게 하는 행동에 난 거의 매일 녀석에 대응하는 방법을 찾아야했다.

실내벽난로로 통하는 굴뚝에 날씨가 추워지거나 비가 오려고 하면 새들이 날아드는 소리가 나곤했다. 폴리는 급기야 벽난로 속에 들어가 재주도 용하게 제 키보다 2배 이상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점프를 한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부스럭대던 소리가 잠잠해진다.

난 이사를 온 후 벽난로를 사용한적이 없는데 먼저 살던 사람이 그것을 사용했던 흔적이 있다.

짙은 회색인 폴리는 그곳에서 난리를 피우고 나오면 온통 검댕이와 먼지를 뒤집어 쓰고있다.

그리고는 온 집을 뛰어다니며 마루와 카펫에 그 먼지와 검댕이를 다 떨어낸다.

결국 3단 조립식 책장으로 그곳을 막아벼렸다.

그곳에 들어가는 재미를 뺏긴 후 폴리는 내가 애지중지 키우는 화분의 화초를 밤새 뽑아 놓기 시작했다.아침에 그걸 본 순간 난 거의 정신이 가출할 뻔 했다.화분속의 질척한 흙을 밟아 온통 흙자국을 내놓고, 꽃잎과 잎사귀들을 뜯어놓고.

식탁에 있는 물건들을 모두 바닥에 떨어뜨려 자다가도 그 소리에 놀라 깨기가 일쑤.

결국 녀석을 다른집으로 보내기로 결정하고 교회교우에게 입양을 보냈다. 녀석과 1년만의 동거가 끝이났다. 에보니라는 다른 고양이는 나와 5년을 살아도 탈이없는데...

낡은 캣타워를 오늘 치우고 그 자리에 3단짜리 책장을 똑바로 세워놓았다.

맨밑칸에는 키가 작고 무거운 화분의 화초를 놓고, 가운데 칸에는 막 뿌리를 물속에서 내리는 호야를 놓고, 맨윗칸에는 빨갛고 작은 꽃들을 한창 피우고있는 칼렌초와 어미 호야를 올려 놓았다.

나머지 화분들도 햇볕이 잘드는 창쪽에 놓았다.

이제 3단 조립식 책장은 더이상 책장이 아니라 화분진열장이 되었다. 화초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날 쳐자보며 말을 건네는듯하다. 새집을만들어 줘서 고맙다고.

이제 비로소 책장뒤에 가려져 있던 실내벽난로가 다시 보인다.올겨울엔 벽난로에 향좋은 나무를 태워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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