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억 의 군 밤
(시 부문 최 우수상작)
지 혜 로
어릴적 살았던 동네어귀
추운 겨울 연탄불 화덕에
코를 자극하는 구수한 군밤
동네 꼬마들 군침흘리고
뜨거운 불에 탕탕튀면
군밤장수 장갑낀손 바빴지
불빛에 반짝거리며
갈색 밤껍질에 십자가 새긴
꿀맛 군밤의 진한 향기가
지금 내 코끝에 맴도네
꽃밭의 행복
(시 부문 우수상 작)
임 성 소
살며시 꽃밭에 들어 서니
어서 오세요 하고 수선화가
향기를 날리며 반겨 줍니다
조용히 내미는 손길로
은은한 사랑을 느끼게 하는
목련꽃도 향기가 좋습니다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과
사랑의 눈빛으로 맞아주는
작약꽃도 아름답습니다
각자 자태를 뽐내며
다양한 모습으로 반겨주는
나의 꽃밭이 사랑스럽고
내게 행복을 데려다 줍니다
시부문 장려상
누구보다
더 잘 나고 싶고
누구보다
더 아름답고 싶고
누구보다
더 잘 살고 싶고
누구보다
더 행복하고 싶은 마음
나 혼자서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저 나 자신만을 가지고
충분히 평화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이 없어도
누구보다 잘 나지 않아도
내 마음의 평화에는
아무런 문제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이 내것입니다
2024년 신인문학상 수필 부문 최우수상
굳세어라 영수 영희!
맞아도 죽어도 함께하는 울 부부는 천생연분!!
-허 영희-
오래전 우리가 운영하던 빈민촌 그로 서리 어느 오후 시간이었다.
문이 ‘딸랑’ 하며 7살 정도 돼 보이는 꼬마 소녀가 들어왔다.
우리 부부는 둘 다 방탄벽이 있는 카운터 안쪽에 서 있었다.
그런데 이 꼬마가 너무나 어이없게 캔디바를 손에 쥐고는
당연한 듯 돈도 내지 않고 멀쩡하게 걸어 나간다.
순간 신랑은 얼른 쫓아나가 그 꼬마를 세웠다.
그리고는 꽉 쥔 손을 펴 보라고 신랑이 시킨다.
그랬더니 그 꼬마는 그 캔디바를 집어 던지고는
화가 난 듯 문을 박차고 나갔다.
15분 이 지났을까?
갑자기 어떤 키크고 덩치 큰 여자가 식식거리면서
잔뜩 화가 나서 또 다시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이것저것 물어 보고 어찌할 사이도 없이
그 여자는 카운터 안으로 들어오는
방탄벽 밑에 쪽 문을 단번에 열고는
우리가 서 있는 안으로 들어왔다.
손님이 들어와서는 안 될 금지구역이다.
내 쪽으로 다가 오길래 너무 황당한 나머지
무슨 일이냐고 묻기가 무섭게 왕 주먹이
얼굴로 ‘퍽!’ 별이 다섯개가 번쩍 하는 것이
3m 뒤로 나는 나동그라쳐지고 말았다.
이젠 신랑에게도 달려든다.
날아드는 커다란 두 주먹을 양손으로 잡아 어찌하든 제압 해 보려고
버팅기는 순간에 온 집안 식구들이 신랑에게 모두 벌때같이 달려 들어
무조건 마구 때리고 발로 차고 잡아 뜯고 하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그여자의 여동생같이 보이는
성인 여자와 그 남편 같이 보이는 남자도 있었고
중학생 사내아이 하나 여자 애들 두 셋 이렇게 예닐곱 명이 달려 들은 것이다.
나는 그들의 안쪽에서 그 광경을 보면서 어찌할 바 모르고 벌벌 떨고 있었다.
그렇게 한꺼번에 몰매를 맞고 있는데도 넘어지거나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신랑이 너무 안쓰러웠고
도울수 있는 방법이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저 사람들한태 쓰러지면 안 되는데 넘어지면 끝장이다!
그 순간 밟히고 차이고 나까지 둘 다 중상 입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그러고 있던 찰나의 어느 순간 신랑이 매를 맞고 있으면서도 자꾸 뒷걸음질 쳐서
네 다섯 발짝 내 쪽으로 가까이 왔다.
난 힘이 없어 밀리는 줄 알았지.
그런데 왠 일인가! 역시 지혜롭고 믿을만한 내 서방님!
용케 팔을 뻗어 감춰 놨던 비상용 총을 집어 들고 공포탄을 천정으로 쐈다!!
그 순간에 놀랐던 그 사람들은 다 뒷걸음질 치고 쪽문 밖으로 도망 나갔다.
그 남자도 여동생도 이미 밖으로 도망쳤다.
그런데 우리를 처음에 주먹질하던 그 꼬마의 엄마는 술이취했던 끝이라
동작이 느려서 미쳐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버티고 서 있던 것이다.
신랑이 제빨리 쪽문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문을 잠궜다.
왜? 잠시후 경찰이 들어왔고 그 여자는 그 자리에서 현장체포 됐다.
내 입술은 터져서 피가 흐르고 있었고 신랑 얼굴은 온통 멍투성이이었다.
우리가 뭘 잘못했지?
그 꼬마아이를 전혀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그냥 돈이 없다고 먹고 싶다고 이쁘게 말하면 줄 수도 있었는데,
종종 귀엽게 구는 아이들은 우리가 캔디도 선물로 주곤 한다.
그날 신랑이 숭고해 보일 만큼 너무 고맙고 감사했다.
나를 보호하고자 필사적으로 그 사람들을 온몸으로 방어 한 것이다.
그리고 그 극한 상황에서도 어떻게 그렇게 침착하게 총을 꺼내
공포탄을 쏠 생각을 했는지, 평상시엔 그리 sharp한 사람이라는 걸 잘 모르는데
위기 상황에 처하면 희한하게 정말 머리가 비상해지고 상남자가 된다.
그날 오후에는 그 뒤로 바로 문을 닫고 집에 일찍 왔다.
그리고는 둘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별로 말하지 않았다.
그냥 따뜻하게 안고 서로를 위로 할 뿐...
며칠 후 우리는 법원에 가서 그 여자를 용서하고
평생 가게 근처에는 발도 못 들이게 100m 접근금지령을 내렸다.
알고 보니 동네에서 가장 못됐고 악독하기로 소문난 가족이라고 한다.
난 주먹 한 대에도 그냥 맥없이 knock down 됐는데
그날 만큼 신랑의 굵고 짧은 다리가 고마운 적이 없었다.
가끔은 농담으로 숏다리, 돌고래다리 찾아가며 골리기도 했었는데
그땐 얼마나 감사 하던지 그 뒤로 다시는 골리지 않고
그런 신랑의 다리가 너무 너무 자랑스럽고 고맙다.
ㅎㅎ. 거기에다 마라톤으로 단련된 단단한 허벅지 또 멧집이 있는 체구,
이런 모든 것들이 다행이도 남편이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또한 보통 사람 같으면 위기 모면하는 것이 급했을텐데
그 와중에도 앞문을 잠궈서 그 여자가 도망 가지 못하게 만들어놓고
경찰을 불러서 현장에서 바로 체포 당할 수 있도록
민첩하고도 침착하게 행동 한 것이다.
그 일이 있은이 후 우리는 마치 전우가 전쟁터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동지애를 서로 쌓듯 두 사람은 더욱 두터운 동지애도 생겼다.
서방님 고마워요 짝짝짝!
우리 부부 맞아도 같이 맞고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용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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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수필부문 장려상 작
그라치오소 ; 음악과 인생
안드레아 박 (Andrea Park)
윈드미어 파크웨이(Windermere Parkway).
가로수 파릇 파릇한 잎사귀 사이로 따스한 봄 햇살이 눈부시다.
추억 가득한 이 길을 달릴 때면 마음 속에 떠오르는 음악이 있다.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현을 위한 디베르티멘토 라장조 K.136>.
바이올린을 배우던 어린 딸이 스프링 리사이틀에서 연주했던 곡이다.
푸른 잔디 위에 자리한 하얗고 아담한 미국 교회는 유난히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아이는 한없이 해맑고 명랑하게,
곡의 색깔을 잘 살려 연주하였다.
이 곡의 작곡 당시 모차르트는 16세였는데,
천재 소년의 참신함과 생동감이 고스란히 전해 온다.
봄날처럼 싱그러운 열 살의 딸에게 선물처럼 설렘으로 다가왔던 곡.
소나기 휘몰아치는 여름밤에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7번 “템페스트”>를 듣는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여름이면 플로리다로 로드 트립을 떠나곤 했다.
마이애미를 향해 가던 어느 날,
대낮인데 갑자기 사방이 캄캄해 지더니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어서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굵은 빗줄기가 퍼붓고,
번개가 번쩍이며 내리쳤다.
스콜 라인이었다.
이 때 마침 흐르던 음악이 베토벤의 “템페스트”.
낯선 곳에서 엄습하는 공포 속에 베토벤 특유의 강렬한 선율은 귀를 사로잡기 충분했다.
순간 주위의 모든 것은 정지하고,
오직 음악과 나만 존재하는 것 같은, 영원과 맞닿은 듯한 초월을 경험했다.
지금도 창밖에 장대비 쏟아지는 밤이면 이 곡을 찾아 듣게 되는데,
눈을 감고 있으면 인생 파노라마가 필름처럼 스쳐 간다.
가을이 오면 브람스의 <교향곡 2번 라장조 Op.73>에
몸을 맡기고 고독과 우수에 빠져 본다.
초가을의 높고 청명한 하늘 아래서 이 곡을 들으면,
내게 주어진 인생이 과분하게 느껴진다.
아, 이래서 인간은 신을 찾게 되는구나.
거대한 감동을 마주하면 말문이 막힌다.
이런 완전무결한 결정체라니.
천재 작곡가의 영감과 신의 경지에 이른
연주자의 경륜이 종교적 경건함으로 승화되는 순간...
인생의 무게가 견딜 수 없이 무거울 때,
나는 이 음악 앞으로 다가간다.
어느새 나는 사라지고,
세상은 푸른 가을 선율로 물들어 있다.
늦가을의 정취가 짙어가던 11월의 마지막 토요일,
나는 에모리대 캠퍼스에 있었다.
첼로를 배우는 아들은 곧 여기 슈바르츠 연주홀에서 공연할 예정이었다.
흐리고 스산한 날씨는 코트의 옷깃을 여미게 하고,
만추의 캠퍼스에는 낙엽 흐드러진 벤치만 쓸쓸히 놓여 있었다.
콘서트가 시작되자, 어린 연주자들은 상상 이상의 기량을 보여주었다.
특히 멘델스존의 <피아노 트리오 1번 라단조 Op.49>에 이르러서는
곡 자체가 주는 장중함과 연주자들의 진정성이
듣는 이들의 영혼 깊은 곳을 울리며 심오한 몰입감을 안겨 주었다.
인생의 가을에 선 나에게 삶의 깊이와 무게를 느끼게 해 준 잊지 못할 공연이었다.
12월 31일 아이들과 새해 일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겨울 감성이 진하게 묻어나는 슈베르트의 곡들로 플레이리스트를 꾸렸다.
<미완성 교향곡>, <겨울 나그네>,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세레나데> 등은
짙은 애수를 자아냈다.
시골길을 달리면서 저녁 어스름에 해 지는 풍경을 보니,
마치 인상주의 화가 밀레의 <만종> 작품 속에 들어 온 것 같았다.
플로리다 데스틴에 도착한 시간은 밤 9시. 짐을 풀고 정리한 후,
각자 새해 다짐을 쓰고 자정을 기다렸다.
우리는 테이블 아래에 앉아 포도알 12알 먹기를 했다.
이는 남미의 새해맞이 풍습으로, 한 알에 하나씩 소원을 빈다.
마음속 깊이 방치된 소원들을 직면하니
묵은 것이 정화되는 듯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아침에는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바닷가에 나가 일출을 보았다.
새해 자정에 빌었던 꿈과 소원이 힘차게 떠오르고 있었다.
드디어 봄이 돌아왔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루틴이 생겼다.
한 달에 한 번, 토요일 밤이면 다운타운에 있는 애틀랜타 심포니홀로 향한다.
화려한 정장을 갖춰 입고 샹들리에 눈부신 오디토리엄 입구에 들어선다.
봄밤에 즐기는 클래식의 향연. 음악을 한가득 안고 나오는 길에서
큰 딸은 내 팔짱을 끼며 말한다.
"Mommy, under the stars and cherry blossoms, this is the best night ever!”
가로등 아래로 하얀 벚꽃잎이 흩날리고 있었다.
음악은 머리와 가슴에 있고, 남이 빼앗을 수도 건드릴 수도 없는 것.
음악이 그렇듯이, 내 마음에 품고 있는 아름답고 소중한 꿈과 사랑,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하는 행복은
그 누구도 빼앗거나 훔쳐갈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살아 숨쉬는 이유이자
쓰러져도 일어설 수 있는 힘이다.
어느 봄날 이른 새벽, 딸 아이 학교 데려다 주고 오다가,
새벽 어스름 속의 고요한 정적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문득 꿈 속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인생은 한 바탕 꿈이라고 했다.
광대한 우주와 영겁의 시간 앞에 순간적인 찰나를 살다가는…
.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후회없이 사랑하며 살았다고 온 세상에 나지막히 말하고 싶다.
그렇게 나비처럼 꽃잎 위에 살짝 앉았다 작은 흔적 남기고,
새벽 안개처럼 사라 지고 싶다.
2024년 10월 10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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