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추어탕
석정헌
기다림도 매만지면
눈앞에 놓인다는데
시골 어느 조그만 맛집
얼갈이 배추가 뚝배기 가득한 추어탕
입안이 얼얼하도록 뿌린 지피가루
게 눈 감추듯 그릇을 비우고 기댄 등받이
시차 때문인지 포만감 때문인지
아님 몇잔 마신 막걸리 때문일까
스르르 눈이 감긴다
할머니가 들고오신 봉지에 담겨
꿈틀거리는 미꾸라지
그 꿈틀거림이 징거러운 아내 외면하지만
할머니의 재촉에
큰 그릇에 쏟아 붓고 굵은 소금을 뿌린다
한로를 막 지나 허리 굵어 통통해진 미꾸라지
미친듯 날뛰다가 점점 힘을 잃고 조용해진다
붉은 고무장갑 낀 손으로 고개 돌리며
쳐다보지도 않고 팔만 뼏쳐 점액을 씻어낸다
장작불 지펴 뜨거워진 무쇠 가마솥
기름 발라 반짝이는 솥뚜껑 열고
씻어놓은 미꾸라지 삶아
곱게 갈아 얼김이채에 받쳐낸 국물
얼갈이 배추 듬뿍 넣은 추어탕의
구수한 냄새 침을 삼킨다
한로를 지나 아침 저녁은 제법 쌀쌀하지만
장작불 활활 타는
아궁이 앞은 아직도 뜨겁고
장독대 옆 감나무
몇 잎 남지않은 붉은잎 잔바람에도
하나둘 떨어지고
꼭대기 가지 끝에 달린 까치밥 빨간 홍시
저녁 노을 받아 애리도록 아름답다
부뚜막에는 할머니
작은 절구에 지피를 빻고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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