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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배경
-1961년 전남 여수 출생
- 2019년 미국이민
-1988년 서울대학 법학과 졸
- 1988 20회 사법고시합격
-1991 서울대학 법과대학 대학원 졸(석사)
-1999 국립 해양대학 대학원 수료(박사)
- 2003 University of Denver, School of Law, LLM 수료
-2003 뉴욕스테이트 변호사 시험 합격
- 애틀란타 문학회 회원

첫사랑

cosyyoon2025.02.10 22:12조회 수 168추천 수 1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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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1

 

 

 

1964년 여수 남쪽의 한 섬마을에 네살 박이 사내 아이가 있었다.

 

 

 

                                          2

 

막 갓눈 뜬 새끼강아지 같아서, 아이에겐 온 세상이 너무 밝고 환했다.

 

아침 햇살이 너무 눈이 부셔 일어나기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세상이 너무 크고, 높고, 길었으며, 깊었다.

 

군데 군데 한지가 구멍난 방문을 열면 마루가 있었다.

 

마루에 서면 돌을 차곡 차곡 샇아 올린 돌담이 버티고 서서

 

먼 산을 반쯤 가리고 먼 산은 다시 푸르디 푸른 하늘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마당으로 가려면 마루를 내려가야 했으나 마루와 기단 사이가 너무 멀었다. 아이의 발이 닿지 않았다.

 

그럴 때면 가족들이 그를 안아 마당으로 내려 주곤 했다. 가족들은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몸이 깡마른 작은 아버지, 눈이 큰 작은 어머니, 세째 삼촌, 네째 삼촌, 예쁜 막내 고모, 국민학교 5학년의 막내 삼촌이 있었다.

 

아이가 발을 디딘 마당은 하늘만큼 넓었고 마당의 서편에는,그의 팔이나 다리만한 붕어가 사는 바다 만큼이나 깊은 웅덩이가 있었다. 마당의 남쪽 끝에는 대문이 나 있었다. 아이의 힘으로 밀 수도 없는 무거운 나무 대문이었다. 집을 나서면 대문 왼쪽에 야트막한 산을 개간해 만든 밭이 있었고 밭이 집과 마주하는 가장자리에는 콘크리트로 만든 마당이 있었다. 가족들은 이곳을 돌가루 마당이라 불렀다. 돌가루 마당에는 수확한 농산물이나 수산물 예컨대 깨나 보리, 미역, 김 등을 볕에 말리는 용도로 쓰였으나 그럴 일이 없을 때에는 온 가족이 모여 그곳에서 아침 식사를 하곤 했다.

 

작은 엄마와 할머니가 돌마당으로 상과 밥과 반찬을 옮겨놓으면 예쁜 고모가 아이에게 말했다. “아저씨 불러야지, 진지드시라고아저씨는 아이가 사는 집의 가족이 아닌 유일한 사람으로 그 집안에서 일을 거들던 사람이었다. 

 

그러면 아이는 돌가루 마당에서 서서아기리!” 라고 온 힘을 다해 외쳤다. ‘아기리하고 부르는 소리는 아침 공기를 타고 맞은 편 마을까지 들렸다. 혀가 돌아가지 않으면서도 악을 쓰는 모습이 귀여워  가족 모두 까드르 웃었다. 아이를 특히 귀여워했던 분은 증조 할머니였다. 아침을 마치면 학교를 가는 막내 삼촌 외에 모든 식구들이 농사 일을 돕거나 바닷가에 나가서 일을 했다. 그러면 큰 집안에는 증조할머니와 아이만이 남았다. 이미 기력이 다해 농사 일에서 물러난 그녀는 이 증손주를 보는 것으로 낙으로 삼았다. 마당은 아이의 작은 세계였다. 노란 병아리들이 엄마 암탉과 우루르 몰려 다녔고 개미들이 부지런히 먹거리를 날랐다. 자기 몸집 만한 고양이가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종종 마당을 집의 대문을 넘어 또다른 세상을 탐색하곤 했다.

 

어떤 때는 집 뒷산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마을 아래까지 가서 몽돌 자갈이 가득깔린 바다가와 여객선이 닿는 선창가를 보고 오기도 했다. 마을의 중간에는 돌틈 사이로 미꾸리가 부지기 수인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이 있었다. 아이는 미꾸리를 구경하고 가재를 보고 물게를 보고 오기도 했다. 

 

 

 

아이의 일상은 이러했다.

 

 

 

3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쌀쌀한 바람이 일던 늦가을이었을가.저녁 밥을 먹기 전에 동네를 쏘다니던 아이가 집에 돌아 왔는데 평소 보던 식구말고 처음 보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30대 초반의 아주머니였다. 제대로 돌보지 않는 아이의 얼굴은 먼지 투성이였다. 코에서는 콧물이 흐르고, 손은 부르터 있었다. 그녀는 아이를 보자마자 우물 물을 떠서 세수대야에 부었다. 그녀는 아이를 세수대야 앞에 앉히고 아이의 얼굴과 손을 씼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이 아이의 얼굴에 닿는 순간 아이는 따스하고 포근한 기운이 온 몸을 짜르르 관통하는 것을 느꼈다. 아이의 얼굴과 손을 씻어주는 그녀의 손길이 그렇게 부드러울 수 없었다. 아이의 눈과 마주친 그녀의 눈빛이 그렇게 따뜻할 수 없었다.

 

저녁 밥이 나오자 아주머니는 아이를 안고 숟가락에 밥과 반찬을 얹어 떠 먹여 주었다. 아이는 밥이 이렇게 맛 있어 본 적이 없었다.

 

그날 밤 아이는 아주머니와 함께 잠을 잤다. 아이는 자기를 안아 주는 아주머니에게서 참 좋은 냄새가 난다고 느꼈다.

 

다음 날 아이가 깨어나자마자 부신 눈을 비비며 그녀를 찾았다. 마루에서 아주머니가 자기를 받아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없었다.

 

아이가 할머니에게 엄마 어디 있어?”하고 물었다.

 

어제부터 식구들이 그 아주머니의 이름을 엄마’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응 배 타고 멀리 갔단다라고 말했다.

 

 

 

아이는 눈 앞이 캄캄해졌다.

 

엄마의 갑작스런 출현과 갑작스런 부재 그리고 상실이 어떤 이유로도 이해되지 않았다. 세상은 더 이상 눈부시지 않았다.

 

아이는 훌쩍 훌쩍 시작했다.

 

엄마, 엄마, 보고 싶어

 

할머니가 아이를 달래려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여름 한날의 소나기처럼 울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이는 흙 마당에서 온 몸으로 뒹굴었다. 발을 퉁퉁 구르고 팔을 허공으로  휘저였다. 슬픔이 발작을 일으켰다. 이윽고 할어버니가 이놈 참 고약하다고 소리치고 깡 마른 작은 아버지가 회초리를 들고 와서 어린 놈이 땡깡을 부리네?” 하고 난리를 쳤으나 효과는 잠시 뿐이었다.

 

아침 밥을 먹을 시간이 되어 아저씨를 부르라는 막내 고모의 부탁에

 

아이는 마을을 향해 외쳤다. “엄마, 엄마!”라고.

 

다시 서럽게 울었다.

 

식구 중 누구도 웃지 못했다.

 

우는 아이를 달래고 아침을 먹였다.

 

그러자 어제 저녁 밥을 떠 먹여 주던 엄마가 생각났다. 그리고 울었다.

 

그렇게 아이는 식음을 전폐했다.

 

식구들이 일터로, 학교로 나간 사이 아이는 끊임 없이 엄마를 찾아 다녔다. 방에 엄마가 있을 것 같아 집안의 방문을 다 열어 보고 다녔다.

 

우물가에 엄마가 있을까 우물로 가보고, 마당의 웅덩이도 가 보았다.

 

대문을 돌면 대문 옆에 엄마가 있을 것 같았다. 대문을 나서서 엄마를 찾았다. 뒷 산에도 가보고 멀리 선창가까지 가 보았다. 세상은 온통 엄마로 가득차 있었지만 정작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돌아오는 길에 개울가를 지나갔다. 마을 아줌마들이 빨래를 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있을 것 같아 뛰어 갔다. 하지만 엄마가 없었다.

 

아이는 개울에 빠져 온 몸이 통채로 젖어버렸다.“엄마, 엄마를 부르며, 아이가 울면서 돌아왔다.증조할머니가 아이를 보자 아무 말 없이 아이를 안방으로 데려 갔다. 아이는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그녀는 차가운 물에 젖은 아이의 옷을 벗기지도 않은 채 따스한 아랫목에 아이를 눕이고 함께 누었다. 오한에 떨던 아이가 잠이 들었다.  아이는 엄지 손가락을 빨면서 잤다.

 

다음날 오후 할머니는 아이를 선창가로 데리고 가서 여객선을 기다렸다. 할머니는 손주에게 말했다. “오늘 엄마보러 가자, ?” 배는 여수항으로 향했다.

 

 

 

4

 

아이가 생전 처음으로 뭍에 도착했다. 엄마가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한참을 걸었다. 

 

섬에서는 볼 수 없던 부릉 거리며 달리는 차며 분주히 움직이는 자전거들을 보았다. 집과 집이 다닥다닥 붙은 콘크리트로 담장으로 이루어진 골목길도 보았다.

 

골목길 어디 쯤인가 파란 철제 문이 있는 집에 들어섰다.

 

집은 3개의 방이 있는 단층가옥이었는데 가운데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아이보다 한살 많은 그의 형과 아이보다 한살 어린 그의 여동생이 있었다.

 

저녁 때쯤 얼굴이 하얗고 잘 생긴 아저씨가 아이를 보자마자 흘쩍 들어서 가슴에 안았다. 그는 아이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 아저씨의 이름은 아빠였다. 여수에서 직장을 얻은 아빠가 방을 구하려다 보니 어린 아이 셋이 딸린 가족에게 세를 주려는 집주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둘째 아이만이 섬에 맡겨진 것이었다.

 

 

 

그러나, 핏줄의 연은 질겼던지 한번 엄마를 본 아이가 엄마를 잊지 못 하고 온 몸으로 저항하는 바람에 더 이상 갈라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5

 

그후 아이의 가족은 아빠의 직장을 따라 여수에서, 울산으로, 다시 부산으로 이사했다. 아이가 국민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이사했다. 전학한 국민학교에서 아이는 큰 충격을 받았다. 서울의 말씨는 부드러웠으나 쓰는 말들은 매우 거칠었다. 거친 단어를 쓰는 같은 반 아이들도 거칠기 마찬가지였다. 그는 학교생활에서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다.

 

우울감과 불안감에 시달리던 그 때 새로 사귄 친구를 따라 불암산 밑의 야산에 있던 조그마한 구세군 교회를 가게 되었다. 초등부 예배 시간에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이 따로 따로 앉았는데 거기서 얼굴이 하얀, 단발 머리의 소녀를 보았다. 얼굴이 너무 하예서 양 볼에 실핏줄이 보일 정도였다. 하얀 얼굴 때문이 입술은 더욱 붉어 보었고, 쌍거풀이 있는 큰 눈이 참 고왔다. 그는 그녀를 본 순간 온 몸이 감전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세상이 일시 정지되는 듯 했다. 그녀를 보는 것 자체가 행복했으므로 한시도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었으므로 그녀를 항상 그리워했다. 거리의 모퉁이를 돌 때 마다 그녀가 나타날까 봐 자꾸 머리 모양에 신경을 썼다. 그 여자 아이가 자기를 갑자기 찾아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수시로 방안을 청소하고 정돈하곤 했다. 

 

이른 바 첫 사랑이었다.

 

 

 

6

 

십대의 열병이 서서히 진정될 무렵 비로소 깨달았다.

 

온 마음을 격동하던 감정의 폭풍, 세로토닌과 옥시토신, 그리고 도파민이란 호르몬이 온 몸의 세포에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던 충격을 이미 그는 십여년 전에 겪었던 사실을.

 

그의 첫 사랑은 국민학교 6학년 때가 아니었다. 아장 아장 걷기 시작하며 눈부신 세상을 막 체험하던 네살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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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첫사랑 이야기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누구나 어릴적 추억이 있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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