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손
중년의 인생 고개를 넘기면서 습기가 사라진 육체의 피부는 가려움을 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 부지불식 여기저기 몸을 긁어대는 버릇이 생겼다.
문제는 유연성이 떨어진 손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내 몸이지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공간이 생긴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가장 만만한 아내에게 나의 등판을 들이대며 의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항상 아내가 내 곁에 붙어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결국 효자손을 구입했다.
경기도의 어느 관광지의 기념품 가게에서 산 것이었는데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과연 효자손은 나의 손이 다다르지 못 한 곳까지 긁어주었다.
그때의 쾌감은 이루 말로 다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지인들에게 말하곤 했다. “효자손이야말로 가성비가 뛰어난 제품이야. 우리 조상 최고의 발명품인 것 같다. 세계유산에 등재되어도 손색이 없지 않을까?”
대부분의 동년배는 남녀를 불문하고 이 말에 공감했다.
대나무로 만든 효자손은 미국으로 이민을 온 주인을 따라 현재 미국 애틀란타에 자리잡고 있다.
미국 물을 먹은 이 대한민국 경기도산(大韓民國 京畿道 産) 효자손은 여전히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요즘 그 주인이 조금 변심하여 다른 종류의 효자손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면 섭섭해 할까?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등을 긁어드린 기억이 선명하다.
국민학교 시절 긴 겨울 방학 을 맞아 여수 항에서 여객선 1 시간 거리의 섬에 있는 ‘큰 집’을 방문하곤 했다.
그 곳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셨다.
할아버지는 농사 일을 마치시면 안방 아랫목에 앉아 계시거나 누우셔서 라디오를 들으시는 것을 좋아하셨다.
남쪽으로 난 한지가 덕지덕지 붙여진 방문의 왼쪽 벽에 작은 거울이 달려 있었고 그 밑의 방바닥에는 짧고 작은 베게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베게 옆에는 대나무로 만든 효자손이 있었다.
효자손 자루에는 인두로 지져 새긴 한자가 몇자 적혀 있었다.
오랜 세월 탓에 효자손의 자루도 그 글자만큼 검었던 듯 싶다. 할아버지는 평소 등이 가려우시면 이 효자손으로 등을 긁곤 하셨다.
그런데 내가 큰 집을 방문할 때면 효자손이 있음에도 나에게 당신의 등을 긁어 달다곤 하셨다.
“우리 손주야 할아버지 등 좀 긁어다오.” 그러시면서 몸을 돌려 나에게 등을 내미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속옷 속으로 손을 넣었다.
할아버지의 거칠은 속살이 전하는 다소 차가운 체온이 나의 손 바닥에 느껴졌다.
“할아버지 어느 쪽 긁어드려요?”
그러면 할아버지는 “오른 쪽 아래, 조금만 더 위로, 아니 아니 조금 더 아래”하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나는 “여기요? 여기요?” 하면서 할아버지의 말씀에 어림잡아 가면서 등을 긁어드렸다.
이렇게 나의 손이 할아버지의 등판을 왔다 갔다 하면서 긁어드리면 “아이구 시원하다. 우리 손주 최고다” 하시곤 하셨다.
당시 나는 할아버지가 효자손이 있으면서도 나에게 등을 굵어달라고 하시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 할아버지는 이미 수십년 전에 돌아가셨고 이제 내가 할아버지가 잡수시던 연세의 나이가 되었다.
그 나이가 되자 비로소 나는 왜 할아버지가 손주의 손에 등을 맡기셨는지 깨닫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손주의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의 감촉을, 그 체온을 느끼고 싶으셨던 것이었다.
나에게 결혼 적령기에 다다른 아니면 그 시기를 놓친 아들이 있다.
친구처럼 사귀는 여자는 많으나 여자친구는 없어 보인다.
부모는 이 놈이 언제 신부감을 데려오나 눈이 빠지는데 막상 본인은 천하태평이다.
주위의 지인들로부터 청첩장이 날라올 때마다 부럽고, 한편으로 초조하다.
이 와중에 손주를 보았다고 카톡에 손주 사진을 올리는 몇몇 친구의 모습을 보면 ‘야, 할아버지 된 것을 축하합니다’라고 비야냥 거리지만, 속은 좀 쓰리다.
언젠가 볕이 따뜻한 날, 내 등판에 내 손주를 엎고 뒤마당을 걷고 싶은 것이 나의 간절한 소망이다.
그리고 그 손주가 조금 더 커서 고사리 같은 손으로 가려운 나의 등판을 긁어주었으면 좋겠다.
온기를 잃은 노인의 등판에 한참 피어나는 어린 손주의 따뜻한 체온이 전해주기를 원한다.
내가 “오른 쪽 아래, 조금만 더 위로, 아니 아니 조금 더 아래”라고 말하면 손주는 “할아버지, 여기요? 여기요?”물으면서 나의 메마르고 거치른 등판을 긁어주기를 바란다.
말로 소통하고 몸과 손이 접촉하는, 세대를 뛰어넘는 피붙이들 사이의 교감.
손주의 효자손을 애타게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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