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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배경
-1961년 전남 여수 출생
- 2019년 미국이민
-1988년 서울대학 법학과 졸
- 1988 20회 사법고시합격
-1991 서울대학 법과대학 대학원 졸(석사)
-1999 국립 해양대학 대학원 수료(박사)
- 2003 University of Denver, School of Law, LLM 수료
-2003 뉴욕스테이트 변호사 시험 합격
- 애틀란타 문학회 회원

주사바늘 공포증 극복하기(에세이)

cosyyoon2025.03.31 06:23조회 수 154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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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바늘공포증 극복하기

 

 

 

나는 니들 포비아 (needle phobia)’를 앓고 있다.

우리 말로는 첨단공포증(尖端恐怖症) 또는 선단공포증(先端恐怖症)이라고 부르는데

바늘, , 주사기, 칼날, 화살과 창의 끝과 같이 뾰쪽한 물체를 보면 공포를 느끼는 증상이다.

이런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10%를 차지할 정도로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같은 증상을 느낀다 하더라도 사람마다 느끼는 공포의 강도와 반응이 다 다를 것이다.

나는 극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중간 정도 이상의 공포를 느끼는 축에 속한다고 믿고 있다. 

 

특히 나는 끝이 날카로운 모든 물체에 공포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주사바늘이나 침이라는 특정한 의료 도구에서 공포감을 느낀다. 이것을 주사바늘공포증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청소년 시절 학교에서 독감, 뇌염 예방주사를 맞아야 할 때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가끔 감기 기운이 있다는 식으로 예방주사를 피하기도 했다.

일시적인 공포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거짓말을 했다는 자책감과 내가 왜 이러나 하는

자괴감에 시달리곤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정기건강검진을 받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바로 피검사 때문이었다.

10여 전 전의 일이다. 채혈을 하기 위하여 간호사에게 손과 팔을 내밀고

주사기를 꽂을 혈관을 검사하는 단계가 있었다.

그때 담당 간호사가 혈관이 도드라지도록 노란 색 두터운 고무줄을

나의 팔뚝 위에 감고는 손등을 툭툭 내리쳤다.

그 순간 손등에서 시작하여 극도의 공포심이 물려 왔다. 식은 땀이 온 몸에 솟았다.

무의식 중으로 소리쳤다. “저 피검사 안 받을래요!”

나의 갑작스런 반항에 간호사는 내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채혈은 중지되었지만 한심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표정은 바뀌지 않았다.

나는 주사바늘이 무서워서요!”라고 실토했지만 이미 겁쟁이 철부지에 지나지 않았다.

 

 

 

8년 전 전신 암검사를 위해서 MRI 검사를 받아야 했다.

조형제를 투여해야 했으므로 혈관 주사가 필요했다.

당시 신체 일부에 암으로 의심되는 소견이 있어서 다른 곳에 전이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검사였으므로 매우 중요한 절차였다.

죽도록 싫었다.

다행히 아내가 곁에 있었다.

조형제 주입 과정에서 아내가 혈관 주사를 맞을 다른 쪽에 있는 나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아내가 부들부들 떠는 내 손을 잡아 주었기에 그 공포를 버틸 수 있었다.

그때 나의 아내가 내 곁에 없었다면채혈 검사때와 유사한 사태가 벌어질 것이 뻔했다.

 

 

 

동일한 일이 반복될 때 마다 나는 스스로를 돌이켜 보곤 한다.

주사바늘에 대한 공포감의 근원을 찾아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명백히 알고 있다. 

다만 그 때를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뿐이다.

기억을 한다는 것은 아픈 상처를 건드리듯 그 때 겪은 고통과 공포감을 다시 들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회피반응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마 5월쯤이었을 것이다.

학교 전체가 봄 소풍을 갔었는데 무사히 마치고 귀가하는 길이었다.

차가 오고 가던 대로변이 있었다.

당시에는 전자 신호등이란 것이 없었고 경찰관이 수신호를 하던 시절이었다.

출퇴근 때가 아니면 수신호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보행자가 각자 알아서 대로변을 건너던 시절이었다.

함께 가던 친구가 먼저 길을 건너 건너갔다.

그를 따라가야 한다는 조급함에 나도 대로변을 뛰어들어갔다.

순간 우측에서 파랗고 거대한 물체가 나를 덮쳤다.

갑자기 아득함이 물려왔다. 자꾸 잠이 왔다.

한 아저씨가 길에 쓰러진 나를 안아 올렸다.

그는 택시를 잡아서 병원으로, 병원으로 갑시다!”라고 다급하게 외쳤다.

나는 택시 안에서 잠시 정신이 들었다.

나의 왼쪽 다리가 이상하게 보였다. 정강이 부분이 푸른 토마토가 터진 듯했고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이 꿈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잠이 들었다.

나를 안고 병원으로 이송한 사람은 갑자기 도로로 뛰어든, 주의력 산만한 어린 남자 아이를 친 트럭 운전사였다.

난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었다.

부모님은 학교 소풍을 간 둘째 아들이 저녁이 되어도 소식이 없자

백방으로 나의 소재를 찾다가 밤 늦게 부산의 한 종합병원 응급실에 누워있는 나를 발견했다.

내가 다시 깨어났을 때 흑빛으로 변한 얼굴로 나를 멍하게 바라보던 엄마가 있었다.

 

 

 

지옥 문이 열렸다.

나는 종일 울었다.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깨어 있는 내내 울었다.

흰 붕대를 퉁퉁 동여맨 왼쪽 다리가 그렇게 아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통은 멈출 줄 몰랐다. 나는 깨어나다 까물어치거나 지쳐서 잠시 선잠을 자다가 다시 깨어나 울었다.

아니 울부짖었다.

링겔 주사를 맞았고 정맥 주사를 맞았다.

병원은 아마 지속적으로 진통제와 항생제를 투여했던 것 같다.

지금처럼 주사키트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한번의 링겔 주사가 끝나면

다시 핏줄을 찾아 내 몸에 주사바늘을 꽃았다.

무뚝뚝한 간호사가 주사기와 링겔을 들고 올 때마다 핏줄을 쑤시는 고통을 기억하고 있던

나는 공포에 소스라쳤다.

고문이 따로 없었다.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책에서 읽은 단말마적 고통이 무엇인지를 체험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 어린 시절에.

 

 

그런 고통을 얼마 동안 겪었는지 나는 기억에 없다. 1주일인지 10일인지, 아니면 한달이었을까.

 

 

 

아버지는 나의 상태를 보고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느끼신 것 같다.

아버지는 수소문 끝에 당시 부산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정형외과 전문의가 원장으로 있는 병원으로 나를 이원(移院)시키셨다.

새 병원의 이름은 원장의 존함을 딴 세일정형외과였다.

원장 선생님은 월남전에서 군의관으로 일하셔서 엄청난 임상경력을 쌓으신 분이었다.

후에 들은 이야기로 그 병원은 내가 그토록 밤낮으로 고통에 시달린 이유를 곧장 밝혀냈다.

왼쪽 무릎이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병원에서 이를 방치하고 있었다.

무릎이 썩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원장님은 처음에는 이미 늦었으니 왼쪽 다리를 무릎 위에서 절단해야 한다고 했다.

나의 아버지가 펄쩍펄쩍 아니, 길길이 뛰셨다고 했다. 반드시 당신 아들의 다리를 붙여 놓아야 한다고.

 

 

원장님은 최선을 다하신 것 같다. 그 즉시 수술에 들어갔다.

이 수술 이후에 놀랍게도 단말마 같은 고통은 사라졌다.

하지만,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기적으로 맞아야 하는 주사의 공포는 여전했다.

다만 이전의 종합병원에서 보다는 정도가 덜 했다. 상황이 많이 변해 있었다.

우선 전처럼 야전병원 같이 넒은 병실에 여러 환자들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단독 병실에 누워 있었다.

전문 간병인이란 개념이 없었을 당시 간병인은 가족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병실 하나를 환자를 위한 가족들이 함께 쓸 수 있도록 했다.

환자들의 가족들이 환자와 숙식을 같이 하여야 했기 때문에 공동으로 사용할 취사실이 있었고 최신식의 공동 화장실(그 병원에서 처음으로 수세식 변기라는 것을 보았다)이 병원 내에 있었다.

 

때문에 나는 주사를 맞아야 할 때마다 엄마가 내 곁에 앉아 계셨다.

한손으로 나의 눈을 가리고 한 손으로 나의 손을 꼭 잡아주던 엄마의 손이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권 간호원’ (간호사를 당시에는 간호원이라 불렀다)이라 부르던

수간호사의 배려도 격려가 되었다.

그녀는 곱고 상냥한 말씨로 나를 어르고 달래곤 하였는데 주사바늘이 몸에 파고들 때의 일시적인 고통과 그 공포감을 덜어주었다.

나는 그녀가 천사 같다고 느꼈다. 진부하고 유치한 표현이지만 어린 마음에 우러나오는 최고의 표현이었다.

 

 

 

나는 거의 1년 반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곳에서 약 7번의 수술을 받았다.

퇴원 이후에도 보조기를 차고 재활훈련을 받았다. 내가 마음대로 걷고 뛰어다닐 수 있었던 것은 퇴원 후 2년쯤이 지난 뒤였다.

 

 

 

돌이켜 보면 힘든 인생의 한 길목이었다.

내가 정상적이진 않지만 평생 두발로 걸을 수 있게 된 것을 보고 다들 기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기적은 아니었다. 훌륭한 실력을 가진 의사와 그 직원들이 노력, 그리고 부모님과 가족들의 헌신이 있었고

한참 성장할 어린 아이의 신체적 탄력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리고 온 몸과 마음으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공포를 고스란히 이겨낸 나, 나 자신이 그곳에 있었다.

그것이 있었기에 완치가 가능했다.

따라서 그것은 기적은 아니었고 기적과 같은 결실과 댓가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유증은 평생 남았다.

주사바늘에 대한 공포감이 그 중 하나다.

이 공포감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커지고 있다.

몸이 늙어가면 여기저기 아파올 것이다. 면역력이 떨어지므로 예방 주사도 자주 맞아야 한다.

언젠가 병원 신세를 져야할 터이다. 다시 나의 몸을 주사 바늘에 맡겨야 할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런 미래에 대한 공포감도 커져만 간다. 모든 공포가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유튜브에 올라온 쇼트폼을 보다가 우연히 산울림의 보컬인 김창완 씨의 인터뷰를 접했다.

그가 말했다.

고통, 슬픔, 분노 이런 부정적 감정을 회피하려 하지 말라고. 회피할수록 하루 하루가 힘들어 진다고.

대신 마음 속에 그것들을 담아 둘 방 한칸을 마련해 두라고,

방 한칸이 아니면 서랍이든,

봉투 하나를 마련해 두라고.

그곳에 이런 것들을 담아두라고. 그러면 언젠가 그곳에서 향기가 날 것이라고.

 

 

 

그의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평생 고민하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얻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고통의 기억을, 느끼고 있거나 느끼게 될 공포심을 이제는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내 마음 속에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현재와 미래의 공포심을 담아 둘

예쁜 봉투 하나를 마련해 두기로 했다.

그리고 이것들이 나타날 때마다 차곡차곡 봉투에 담아두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이 마음의 봉투에서 짙은 향기가 나리라 믿는다.

필시 나의 손을 잡아주던 엄마와 아내의 손길같은, 권 간호사의 위로와 격려와 같은 향기일 것이다.  

이것이 나의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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