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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배경
-1961년 전남 여수 출생
- 2019년 미국이민
-1988년 서울대학 법학과 졸
- 1988 20회 사법고시합격
-1991 서울대학 법과대학 대학원 졸(석사)
-1999 국립 해양대학 대학원 수료(박사)
- 2003 University of Denver, School of Law, LLM 수료
-2003 뉴욕스테이트 변호사 시험 합격
- 애틀란타 문학회 회원

시차증(時差症)에 대하여(에세이)

cosyyoon2025.05.08 15:40조회 수 208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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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차증(時差症)에 대하여

 

 

바위 틈 새 물이 고인 곳에 어른 손바닥만한 물고기가 보였다.

사람의 발 소리를 듣고 그 놈은 몸을 숨기려 했으나, 얕고 좁은 웅덩이에서 우와좌왕할 뿐이었다.

깊은 바닷물 속으로 숨어들어 가고 싶었겠지만 놈이 움질일 공간은 몇 바가지의 바닷물과 공기와 맞닿은 아슬아슬한 수면(水面) 뿐이었다.

나는 그 물고기를 두 손으로 잡아 번쩍 들어 올렸다.

순간 번쩍 눈이 떠졌다. 얕은 물 바닥에서 발버둥치다가 막 얼굴을 내민 듯한 느낌이다. 어둠 속에서 푸르름하게 빛나는 전자시계의 불빛은 2 1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 숨이 저절로 나왔다. 짜증이 밀려왔다.

선잠에서 깬 상태로 말똥 말똥 동녁이 밝아오길 기다리며 무기력하게 또 하루를 시작할 참이다.

아침은 모래알을 씹듯 넘길 것이고 정오를 즈음하여 서해의 밀물처럼 쏟아지는 졸음에 병든 닭 무너지듯

2시간 내지 3 시간 낮잠을 잘 것이다.

늦은 오후에 멍한 정신으로 좀비처럼 어슬렁 거리다 밤이 되면 발정 난 들고양이 마냥 다시 초롱초롱해질 것이고.

11시에 억지로 눈을 부쳐 보지만 옆으로 누었다 바로 누었다, 다시 백지장처럼 얕은 수면(睡眠)의 물결 위를 떠돌다가

새벽에 설 익은 눈을 뜰 것임이 뻔한다. 이런 증상을 미국으로 돌아온지 1주일 째 겪고 있다.

시차증에 시달리고 있는 중이다.

누군가로부터 주워들은 이야기로 몸이 시차에 적응하는데 걸리는 기간은 시간당 하루라고 한다.

예컨대 출발지와 도착지의 시간차가 10시간이면 시차증을 해소하는데 10일 쯤 걸린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이 맞다면 난 아직 앞으로 사흘에서 닷새까지 불면의 밤과 무기력의 낮을 더 겪어야 할 판이다.

서울과 아틀랜타의 14시간의 차이는 지구의 한쪽을 가득 채운 태평양처럼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거리같다.

 

 

 

시차증은 영어로 제트 레그 신드롬(JET LAG SYNDROME)이라고 한다.

몸이 적응할 새도 없이 제트 엔진 비행기로 다른 시간대의 공간으로 넘어온 까닭에 겪는 증상이란 뜻이다.

시차증은 현대인이 겪는 특유한 신체적 증상인 셈이다.

출발지의 아침에 익숙해져 있던 몸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저녁이 된 도착지에 내팽겨진다. 

단지 아침이 저녁으로 바뀌고 낮이 밤으로 바뀌었을 뿐인데 지구 대기권에서 날려 보낸 시간 만큼 몸은 잠을 잃어버리거나 배변의 시간을 찾지 못 한다.

문명의 이기 덕분에 현대인은 손오공 축지법을 쓰듯이 시공을 초월하지만 인간의 육체는 이 변화를 따라붙지 못 한 채, 허둥거리는 것이다.

 

 

 

우리의 신체는 살과 뼈와 피로만 이루어진 단순한 살덩어리가 아니다.

그 안에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 없이 작동하는 모종의 원리가 있다.

다름 아닌 대자연에 연동된 신체 리듬이다. 리듬은 보이지 않는 탯줄처럼 태양의 주기에 맞춰져 있다.

해가 뜨는 아침에 눈을 떠서 기지개를 펴고 배변을 본 뒤 아침을 먹고 활동을 시작한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면 점심을 먹고 일을 한 다음 해가 서쪽으로 떨어질 때 저녁 식사를 한다.

해가 져서 어둠이 찾아와 밤 하늘에 달과 별이 빛날 때 잠을 취한다.

신체 리듬은 하루 24시간으로 그치지 않는다.

해의 길이가 짧은 거울을 거쳐 해가 일찍 뜨고 늦게 지는 여름으로 이어지면서 사계절에 꽉 채워진 1 12개월로 확장되어 있다.

우주 변방에 티끌같이 존재하는 창백하고 작은 행성에서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의 숙명이기도 하다.

지구 자체가 하루 동안 서에서 동으로 자전을 하고, 태양을 중심으로 일년 동안 공전을 한다.

이뿐인가. 달이라는 위성이 지구를 중심으로 돌면서 초생달, 보름달, 그믐달의 순환을 반복한다. 바다도 달의 주기에 맞추어 조금과 사리를 만들어내는 이치다. 바다도 잠을 자고 깨어남의 리듬으로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몸은 작게는 내가 발 디딛고 서 있는 땅에서의 하루에서 시작해서, 크게는 바다, 지구, , 태양, ,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대자연의 리듬에 맞춰 살아가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이다. 신체 리듬은 수억년을 거쳐 몸에 새겨진 진화의 시계바퀴다.

 

 

 

제트 비행기를 제쳐두더라도 시공을 초월하는 기술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단축키만 눌러도 지구 반대편의 가족이나 식구와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고, 클릭 한번으로 온 세상의 정보와 뉴스가 접한다.

몰라도 될 일과 알 필요도 없는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들으며 우리의 몸과 마음은 수시로 동과 서, 남과 북을 넘나들고 낮과 밤을 잊고 산다.

몸이 시차증을 앓듯 우리의 정신과 영혼도 대자연의 리듬과 얹박자를 놓고 장단을 잃은 까닭에 어지러운 시공 속에서 길을 헤매는 것 아닌가.

비록 인간이 시공간을 압축하는 문명의 이기를 만들어 몸이 편해지고 삶이 편리해졌을 망정 대자연이 영겁을 들여 조각한 리듬을 잃어버리는 만큼 우리의 육체는 대가를 치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어린 시절 사리 때 집안 식구들과 바닷가를 따라간 일들을 되새겨 본다.

꿈 속에서 본 바위 틈 얕은 등벙에 갖혀버린 물고기 한 마리의 기억이 소환되었기 때문이었다.

수면(睡眠)과 각성(覺醒)의 얕은 경계에서 몸부림치는 현재의 나 자신이 좁은 덫에 걸린 그 물고기와 다를 바 없다는데 생각이 미친다.

보름달이 뜰 즈음이면 한 낮에 해안 선의 물이 쭉 빠진 바다는 겨울의 나목처럼 감추어 둔 속살을 보여 주었다.

미끄러운 돌 틈 사이로 미쳐 썰물을 따라 피신하지 못 한 수많이 바다 생물들이 있었다.

소라, 참고동은 물론이고 커다란 전복과 고슴도치 같은 성게가 있었고, 바위틈에 크고 작은 문어들이 어슬렁거렸다. 검은 곰소도 있었다.

바위 틈 새 물이 고인 곳에서 몸부림치는 큰 물고기를 발견한 것은 그때였다.

필시 그 물고기는 바위 틈 사이 공간이 안전하다고 느꼈거나 썰물과 함께 빠져나가야 할 타이밍을 놓쳤음에 틀림없었다.

어린 마음에 크고 튼실한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는 것이 분명 행운이었지만 그때 왜 궁금해하지 못 했을까, 왜 물고기가 그 장소를 떠나지 못한 채 낙오된 것인지.

그땐 왜 몰랐을까, 그 물고기가 얼마나 무력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었는지.

 

 

 

주인의 시차증 때문에 억울하게 함께 몸살을 앓는 침대 위를 뒤척이면서, 시차증으로 인한 괴로움이 이러할진대, 지속적인 불면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고통은 어떨까, 공감하는 순간이다.

불면증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난다고 한다. 불안감, 우울감, 허무감에 시달리는 사람의 숫자도 갈수록 늘어나는 시대다.

그 숫자를 접할 때마다 바닷가 작은 웅덩이에 갇힌 물고기의 마리 수도 점점 불어나는 상상을 한다.

우리 모두가 태평양 같은 대해와 깊은 심해을 잊은 채 문명의 돌틈에 빠져 썰물을 놓치고 낙오된 물고기들 같다.

 

 

누구든 시각차(視角差)가 있겠지만, 어떤 이도 딱 부러지게 부인하기 불가능한 사유(思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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