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면서
자전거를 탈 때마다 온 몸의 감각이 고양된다.
휘몰아치며 다가오는 공기의 흐름과 냄새, 정직하게 전달되는 대기의 온도, 귓가에 속삭이는 바람 소리,
붙박이 같이 고정되어 있던 물체들이 좌우로 휙휙 지나치는 모습, 어깨와 등, 허벅지와 종아리의 팽팽한 긴장감,
중심과 균형 감각을 일깨우는 본능적 감각.
자전거를 타면 평소에 잊고 있던 풍요로운 감각들이 한 여름의 폭우처럼 쏟아진다. 내가 생생히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것을 실존의 감각이라고 하나.
나는 자전거를 늦게 배웠다. 초등학교 시절 배울 기회가 있었으나 중심을 잡지 못 해 포기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입학 전 황금기 같은 짧은 공백기가 있었다.
그때 가족이 살던 아파트 단지 후면도로는 차량의 왕래가 뜸했다. 사람들이 산책이나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후면도로와 아파트 단지가 연결되는 입구에 자전거를 빌려탈 수 있는 가계가 있었다. 그 가계에서 30분 짜리 자전거를 빌렸다.
자전거 타기를 사사해 준 분은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어떤 연유로 내가 뒤늦게 자전거 타기를 배우기로 했는지 기억에 없다.
내가 자전거를 타겠다고 아버지께 도움을 청했는지, 아니면 당신께서 나에게 자건거 타기를 권유하셨는지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넘어지지 않도록 자전거 뒤를 잡아주시던 아버지 모습 뿐이다.
자전거는 달려야만 넘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으나 막상 자전거 안장에 앉아 보니 공포감이 엄습했다.
자전거는 달려야만 넘어지지 않는다는 진리와 넘어지지 않고 자전거를 달리게 하여야 한다는 당위의 이율배반.
이 사이에서 이성적 판단이 제대로 서질 않았고, 본능적 두려움이 가슴을 짖눌렀다.
금방이라도 넘어질 것 같았고 달리다 넘어지면 크게 다칠 것이란 불안에 움추렸다.
안장에서 앉아 페달에 두발을 올리는 것 마저도 어려웠다. 하물며 두발로 페달을 밟는 일이란.
그 때 아버지는 날 살살 달래셨던 것 같다. 당신께서 뒤에서 잡아줄테니 넘어지는 것 걱정하지 말고 패달을 밟아 보라고.
그 말씀에 용기를 내어 패달을 밟았으나 몇 걸음 가지 않아서 자전거는 우왕좌왕했다. 중심을 잃은 몸도 좌우로 흔들렸다.
50 대 중반의 아버지가 20대 초반의 아들이 탄, 뒤뚱거리는 자전거를 잡으며 뒤따라 가는 모습은 가관이었으리라.
나는 기울어지는 반대방향으로 핸들을 틀려고 노력했다. 자연히 시선은 자전거 앞바퀴와 핸들에만 고정되어 떨어지지 않았다.
여러차례 실패를 거듭하자 당신께서 말씀하셨다. 시선을 자전거 앞바퀴나 핸들이 아닌 자전거의 먼 앞쪽을 보고 페달을 밟으라고.
그 말씀대로 눈을 열 걸음 정도 앞을 보고 페달을 밟았다. 놀랍게도 균형이 잡혔다.
속도가 붙은 자전거는 이제 안전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도록 뒤에서 잡아주시던 아버지의 걸음이 더 이상 따라오지 못 했다. 아버지의 도움받이가 필요 없게 된 것이었다.
자전거는 수면을 달리는 돛단배처럼 지면을 미끄러지듯 달렸다. 갑자기 신세계가 펼쳐졌다.
겨울 냉기가 가시지 않은 바람이 얼굴을 때렸고 귓가를 스치면서 윙윙 소리를 냈다.
두렵기만 했던 속도감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발바닥으로 느끼던 땅의 중력에서 해방되는 느낌이 신비롭고 황홀했다.
이제 보니 세상살이가 꼭 쉬지 못 하고 자전거를 달리는 느낌이다.
챗바퀴처럼 돌아가는 삶 속에서 조금이라도 발길질을 하지 않으면 챗바퀴는 멈춘다.
챗바퀴가 멈추면 갑자기 모든 것이 균형을 잃는다. 중심이 땅에 떨어지듯 내 자신과 주변이 바닥으로 추락한다.
버거운 삶을 지탱하기 위해 항상 페달을 밟아야 한다.
가파른 언덕을 넘어가려면 기어의 단수를 줄이면서 허벅지와 종아리에 온 힘을 쏟아 페달을 밟아야 한다.
중간에 멈춰서면 넘어져버리거나 적어도 자전거에서 내려서 나의 몸 무게 같이 무거운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야 한다.
안장에서 내려오는 것은 인생 낙오다. 낙오라는 수모와 좌절 고통을 알기에 오르막에서는 숨이 끓어져라 페달을 밟아야 한다.
평탄한 평지를 달릴 때도 편하지 않다.
주위의 가로수나 먼 산, 그리고 강변의 모습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페달을 밟은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극심한 경쟁의 사슬에서 뒤쳐지면 도태되기 때문이다.
내리막 길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하강의 쾌락에 정신줄을 놓으면 가야할 길에서 일탈하고 만다.
이러다 보면 처음 자전거를 배웠들 때의 신비감과 황홀감 그리고 실존의 감각을 잊어버리고 만다.
이는 분명 우리에게 인생이란 자전거를 내려주신 조물주의 뜻과 멀어지는 것이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
자전거의 가장 큰 특징은 후진기어가 없다는 점이다. 후진하려 해도 뒤로 갈 수 없다.
뒤로 페달을 밟으면 헛바퀴만 돈다. 힘과 시간의 낭비다. 핸
들로 방향을 틀어 돌아갈 망정 후진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인생은 뒤를 돌아보되 후진은 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친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저질러진 일은 물릴 수없다는 이치와 다름이 아니다.
문득 자전거 핸들과 앞바퀴가 아니라 자전거의 먼 앞을 보도록 가르켜주신 아버지의 말씀이 새겨진다.
바로 눈 앞의 것에 집착하지 말고 주변과 먼 앞날을 주시하라고, 당장의 이익이 아닌 긴 안목을 가지라고,
조급하지 말고 느긋하라는 가르침을 주신 것 같다.
마지막으로 강하게 잡아주는 분의 존재를 믿고 두려움을 극복하라고, 용기를 주셨던 것 같다.
그래야 두발 인생 자전거를 행복하게 달릴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느낀다.
고인이 된 아버님이 여전히 내 인생 자전거를 꼭 잡아주고 계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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