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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배경
-1961년 전남 여수 출생
- 2019년 미국이민
-1988년 서울대학 법학과 졸
- 1988 20회 사법고시합격
-1991 서울대학 법과대학 대학원 졸(석사)
-1999 국립 해양대학 대학원 수료(박사)
- 2003 University of Denver, School of Law, LLM 수료
-2003 뉴욕스테이트 변호사 시험 합격
- 애틀란타 문학회 회원

참선(參禪)과 멍때림에 대하여(에세이)

cosyyoon2025.06.17 12:41조회 수 53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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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선(參禪)과 멍때림에 대하여

 

 

 

어느 겨울 아침 밤새 내린 눈이 도시를 덮었다.

여느때처럼 동이 트기 전 동네 공원 쪽으로 걸었다.

서서히 어둠이 거치면서 하얀 수의를 입은 듯한 길거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얗고 순수했다.

매일 지나던 풍경이 낮설었다. 나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천천히 걸음을 뗄 때마다 푸른 운동화가 하얀 속살 같은 눈과 밀착하면서 내는 소리에 집중했다. 뽀드득. 뽀드득.

눈과 귀가 즐거움에 겨워 거대한 하얀 설국을 온통 독차지한 기분이 들었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모습에 잠시 생각이 멈추었다. 멍해지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공원 입구로 통하는 오르막길에서 큰 굉음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눈 속에 갇쳐 꼼짝 달싹을 못 하고 있는 승용차를 발견했다. 고급 외제 승용차였다.

난감해 하는 운전자를 도와줄 겸 내 힘껏 차의 뒤를 밀어 보았다.

운전자가 기어를 바꾸어 가며 수차례 가속페달을 밟았으나, 헛바퀴만 돌 뿐이었다

운전자는 결국 포기하고 차에서 내리면서 한 마디 했다. “당장 4륜 구동으로 바꿔야지 왠…”

 

 

 

과거 살던 집 근처에 오래된 불교 사찰이 있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 막 여명이 트이기 시작하는 시각, 공원 입구를 거쳐 산으로 올라가곤 했다.

해발 50미터 가량의 산 허리 근처에 위치한 절에 가서 참선(參禪)을 했다.

말이 참선이지, 요가나 복식호흡 같은 것을 깊이 배우지는 않은 상태에서 그저 배꼽 아래에 숨을 불어 넣은 뒤 잠시 숨을 참았다가 천천히 내쉬는 정도였고. 기껏 5분이나 6분 정도에 불과했다.

앙반다리 자세로 허리를 곱게 펴고 앉아야 했으므로 오래 버티기가 힘들기도 했다.

그래도 짧은 시간 동안 정신을 집중하고 나면 아침 새벽 공기마냥  한결 정신이 맑아졌다.

그 느낌이 좋아 습관처럼 거의 매일  참선을 했다.

 

 

 

가끔 한가한 날에는 사찰을 지나 해발 300미터 조금 못 미치는 정상까지 등산을 하곤 했다.

꼭대기에 올라서면 멀리 잠실대교에서 한남대교까지의 경관이 눈에 들어왔다.

정상 아래에는 헬기장이라 불리는 다소 넓직하게 정리된 평지가 있었는데 적당한 자리를 잡아 서울의 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자주 보는 경치였음에도 질리거나 지겹지 않았다.

편안한 자세로 별 생각 없이 그저 바라보았다. 말 그대로 넋이 빠졌다고나 할까.

언제부터인가 멍때리기가 유행이라는데 그때 내 모습이 멍때리기가 아니었다 싶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같은 산의 중턱에서는 참선을, 산의 정상에서는 멍때리기를 실천에 옮긴 셈이었다.

 

도심 속의 숲에서 일상처럼 반복했던 몇년 간의 습관 덕분에 참선과 멍때리기에 대한 소소한 철학이 생겼다.

참선은 심란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한 의식적인 집중이다.

눈을 감고, 머리와 허리를 곧추 세우고 배꼽 아래 단전으로 숨을 쉬면서 정신을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다.

호흡에 정신을 집중함으로써 마음을 어지럽히는 다른 생각을 잊는 것이다.

무대의 한 곳에만 조명을 비추고 다른 곳을 어둡게 함으로써 관객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 즉 스포트라이트 기법과 같은 것이다.

 

 

 

멍때리기는 이와 상반된다. 가급적 편한 자세를 취한다.

나무에 기대든, 바위에 기대든, 서든, 눕든, 앉든 아무런 제약이 없다. 호흡에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저 눈과 귀를 열어 텅빈 마음으로 그냥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는 의식적일 필요가 없다.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나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어두운 객석에 앉아  환한 무대를 보고 있는 관객과 같은 것.

 

 

 

물론 잠시나마 정신을 훔쳐갈 외부의 대상이 존재한다면 멍때림에 도달하기 휠씬 수월할 수 있을 것이다.

첫 아이가 두 돌이 막 지날 때 쯤일까? 입을 헤 벌린 채로 텔레비젼에서 방영되는 만화영화를 보고 있는 그를 목격했다.

두 눈이 텔레비전의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당장 텔레비젼 속으로 빠져들어갈 것만 같았다.

부산하게 돌아다니던 몸은 마루에 단단히 박힌 못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었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신기한 광경을 목격한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온통 자신을 잊고 있었다.

필시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나 첫 멍때림을 체험했던 것이었다.

이렇듯 아이는 자라가면서 넋이 나가는 듯 한 신기와 신비의 첫 경험을 수차례 반복하면서 사고의 힘이 커져간 것이 아닐까.

의식과 무의식이 고양된 것이 아닐까. 우리 모두 그런 식으로 어른이 된 것이 아닐까.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 집중한다. 외부의 자극을 애써 무시한다.

공부도 그렇고 업무도 그러하다. 집중을 하여야만 능률이 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집중을 하더라도 능률이 오르지 않고 일의 진척이 없을 때가 있다. 온 정신을 쏟더라도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아무리 저속 기어로 가속해도 움직이지 못 하는 진흙 속의 자동차차처럼. 이른바 난관이다.

이럴 땐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쉬는 것이 방책이다.

팬을 놓고 잠시 눈을 붙이거나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배회하는 것이다. 아예 거리를 거닐거나 공원을 산책하는 것이다.

이 참에 잘 됐다생각하고 아예 잠을 자버리기도 한다. 하던 일의 집중에서 잠시 벗어나 전혀 다른 세계에 나를 내려 놓는 것이다.

의식적인 집중의 끈을 놓는 순간 멍때림이 찾아 온다.

놀랍게도 그럴 때 생각하지도 못 했던 해결책이 떠오르기도 한다.

무의식이 작동한 통찰력이다. 사물의 본질을 꿰뚫는 직관(直觀)의 힘이다.

우리 모두 숱하게 경험했던 일이다.

 

 

 

참선이 집중(集中)이라면 멍때리기는 몰입(沒入)이다.

참선이 심재 (心齋)라면 멍때리기는 좌망(坐忘)이다. 

집중이 주위의 자극을 무시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의식적인 노력이라면, 몰입은 주위의 자극과 의식은 물론 무의식과 함께 동반하여

나아가는 행동이나 상태다.

오감의 영역 뒤에 의식이 있다면 의식의 위에는 무의식이 있다.

감정을 극복하는 의지가 있는가 하면 지식의 표면 아래에 직관이란 것이 흐른다.

우리가 신의 존재를 믿거나 적어도 물질 넘어 뭔가 불가사의한 것이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의식과 의지 이외에도 무의식과 직관의 능력도 믿을 필요가 있다.

현실의 난관과 미래의 불안으로 가득찬 세상.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가야 할 우리의 인생길은 간단 없이 폭우가 쏟아지고 푹설이 내린다.

평탄해 보이던 길이 진흙탕으로 변하고 심한 오르막이 불쑥 나타날 수도 있다.

명징한 의식과 불굴의 의지만으로도 부족하다.  2륜 구동만으로는 힘에 부치는 것이 인생길이다.

예측불가하고 거칠기 그지 없는 오프로드를 거쳐나가기 위해서는 무의식과 직관을 갖춘 4륜 구동이 필요하다.

언젠가 오상아(吾喪我)이 도달할 때까지.

조물주가 우리에게 참선과 멍때림을 선사한 이유가 아닐는지.

 

언젠가 바닷가 바람 좋은 곳에서  모닥불을 멍때리며 밤 새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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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참선과 멍때림

    때로 바쁜 일상에

    필요한 것들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은 도저히

    멍때릴 시간도..참선할 시간도 없답니다

  • cosyyoon글쓴이
    2025.7.14 18:46 댓글추천 0비추천 0

    바쁜 일이 있어서 그 일에 집중하는 것, 이것도 일종의 참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분주한 일상을 보내시는 작가님 역시 일복이 있으신 건데

    축하드릴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바쁜 중에 심심하기 짝이 없는 저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cosyyoon님께

    아..그렇군요

    아직까지 일 할 수 있는것도

    집중의 참선이라고

    생각해야겠네요

    ㅎㅎㅎ

    감사합니다

    심심하다니요

    잘 읽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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