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석정헌
마지막 긴 해
존재의 가치를 뽐내려는지
이 사나흘 하늘이 심술을 부린다
태양은 검은 구름 위에 올라타
어두워진 하늘에
칼날 같은 빛을 휘두르며
고함 지르고 난리를 치더니
종내는 비를 퍼부어 숲을 적신다
오늘 아침은 얌전하다
지붕 끝의 새는 휘파람을 불고
먹이 찾는 다람쥐 껍질뿐인 열매 던져버리고
얕은 바람에 흔들리는 숲은 서걱이고
늙은 상수리 나무 사이로 비집은 태양
내려 쬐는 빛은 황홀하다
이제 막 시작한 더위
하늘에는 여전히 어떤 결점도 보이지 않는데
갇힌 나는 점점 긴 어둠으로 몰린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