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윤 배경
-1961년 전남 여수 출생
- 2019년 미국이민
-1988년 서울대학 법학과 졸
- 1988 20회 사법고시합격
-1991 서울대학 법과대학 대학원 졸(석사)
-1999 국립 해양대학 대학원 수료(박사)
- 2003 University of Denver, School of Law, LLM 수료
-2003 뉴욕스테이트 변호사 시험 합격
- 애틀란타 문학회 회원

칼 아래 도마처럼(에세이)

cosyyoon2025.07.24 07:15조회 수 42댓글 1

    • 글자 크기

 

칼 아래 도마처럼

 

조선시대 사대부를 생각한다

, , 종이, 벼루, 이른바 문방사우(文房四友)를 옆에 끼고 선비들은 책을 읽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다.

문방사우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양반의 고매한 취미를 즐길 수 없었을 것이다.

머리에 상투를 튼 양반은 부엌 근처에서 얼씬대지 않았다.

시와 그림을 논해야 할 지체 높은 사내가 부엌에서 한끼의 식사를 논하는 것은 체면 깎기는 일이었을 것이다.

 

 

세상이 바뀌었다. 이젠 살가운 남편이 되려면 설겆이 정도는 군말 없이 해야 한다.

매력있는 남자가 되려면 직접 칼을 들고 음식 하나는 장만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요즘 사내들은 부엌과 친하다.

음식을 하려면 식재료도 잘 챙겨야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주방 도구도 중요하다.

요즘 요리의 중요성이 더해갈수록, 편리함을 추구하는 욕구가 강해질 수록 주방용기는 다양해지고 있다.

, 냄비, 후라이팬, 분쇄기, 믹서기를 비롯해서 오븐, 전자레인지, 에어프라이기 등 손가락으로 헤아일 수 없을 정도다.

이중  가장 기본적인 도구라고 한다면 칼, 도마, 냄비, 후라이팬이 아닐까. 이를 주방사우(廚房四友)라고 부르고 싶다.

 

특히 칼과 도마는 냄비와 후라이팬으로 음식을 조리하기 전 음식재료를 손질하는데 필요한 도구다.

또한 조리된 요리를 상에 올리기 전에 요리를 돋보이기 위해 또는 먹기 좋게 하기 위해 음식을 다듬는데도 칼과 도마가 필요하다.

요리는 칼과 도마로 시작해서 칼과 도마로 끝난다고 단언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자고로 칼이 없는 요리는 상상이 불가능하다. 칼은 모양새부터가 범상치 않다. 강력한 금속제로 날카롭고 뾰쪽하다.

주변에서 알짱거릴 틈도 주지 않는, 살기(殺氣)가 등등하다. 손잡이에서 칼의 끝까지 외관도 화려하다.

최첨단 기술로 무장하고 장식와 디자인도 수려하다. 장인들의 손놀림에서 빚어진 명품들이 줄비하다.

이런 칼들 앞에서 어떤 음식의 재료도 세프들의 손놀림에 예술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영광도 도마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도마가 없는 칼은 무용지물이다.

아무리 행캘 쌍둥이칼을 들었다 한들, 한국제일도를 가졌다 한들, 땅바닥에서 고기를 자를 수는 없는 법.

갖가지 음식 재료를 올려놓고 날카로운 칼날을 받아주고 칼 등의 무게를 벼뎌줄 도마가 있어야 한다.

도마와 칼은 그래서 떼어놀래야 떼어놀 수가 없는 존재다.

 

 

 칼이 화려한 무대를 장식하는 아이돌이라면 도마는 언제나 부엌데기신세다.

부엌 밖의 세상과는 절연한 까닭에 부엌 밖의 화려하거나 눈부신 삶과는 담을 쌓았다. 생김새도 단순하다. 직사각형 네모면 전부다.

모양 역시 수수하다. 아무런 꾸밈도 어떠한 장식도 마다한다.

색깔의 화려함은 오히려 금기다.  손질한 재료를 식별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재질도 복잡하지 않다. 나무로 만든 것이면 족하다. 플라스틱, 실리콘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편평한 나무가 가장 무난하다.

태생이나 용도나 단순 그 자체다.

 

 

칼과 도마.

 

세계 최고의 명품과 세상 가장 단순 수수한 존재와의  만남. 서로 만나 각자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최고의 파트너.

가히 예기치 못 한 환상의 조합이 아닌가.

 

 

모든 사람은 자신이 최고가 되기를 바란다. 어디가서도 브이아이피(VIP) 대접받기를 원한다.

카리스마를 뿜어대며 모든 일을 마음대로 처내는 지위를 원한다. 그러나, 칼자루를 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 때 칼을 휘두르던 사람도 언젠가 칼 앞에서 무릎을 꿇게 되는게 세상이치다.

나머지는 평범한 사람들이요 바닥 인생들이다.

결국 우리 모두가 칼이기 보다는 도마와 같은 신세다.

하지만 도마는 위대하다. 칼의 예리함과 살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도마가 있기에 칼은 안심하고 음식물을 베고 자르고 바를 수 있다. 

음식 재료는 도마 위에서 다듬어지고 순해지고 부드러워진다. 자연이 예술로 승화한다.

 

 

복잡한 인간 사회가 무리없이 작동하고 거대한 제국이 생존하는 것은 바로 공동체가 칼과 도마와 같은 원리로 굴러가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칼과 도마의 관계를 논하자니 다른 비유가 여럿 떠오른다.

아내와 남편, 정치인과 국민, 배와 물 등등.

불현듯 신약성서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도마의 이야기.

 

 

우리 성경에서 언급하는 도마는 아람어인 토마스(Thomas)[헬라어로는 디두모(Didymus)]의 음역이다.

과거 카톨릭 성인명 표기법이 확립되기 전의 표기법이 그대로 전해진 탓이다.

뜬금 없이 성경의 도마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분의 존함이 부엌의 도마와 발음이 같기 때문만은 아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목 박혀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했다는 소문이 돈다.

그러자 예수의 제자 중 한 사람인 도마가 선언했다.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면 내 속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여드레가 지난 후 제자들이 모인 밀폐된 공간에 예수가 홀연히 나타났다.

예수께서 도마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를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고백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성경의 글귀만으로는 도마가 실제 그의 손가락으로 예수의 상처를 직접 확인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중세 서양의 그림을 보면 도마가 예수의 상처에 손을 넣는 장면이 연출되어 있다.

특히 바로크의 거장인 카라바조가 그린 의심하는 도마(Doubting Thomas)’라는 그림을 보면 그 장면이 적나라하다.

도마가 자신의 손가락으로 예수의 상처를 찔러보고 만져보고 더듬어 보고 있다.

예수는 담담하게 그런 상황을 견뎌내고 있다. 다른 제자들 몇은 그런 모습을 어깨너머로 지켜보고.

 

의심은 상대을 찌르고 대상을 벼르며 상처를 후집는다. 찌르고 바르고 자르는 것이 어디 의심뿐이겠는가.

시기, 질투, 욕망, 불안, 절망 등많은 부정적 감정들이 있다. 타인의 사려 없는 말도 우리를 찌르고, 바르고, 자른다.

이들은 날카로움은 우리의 마음과 몸을 을 갉아 먹고 몸을 좀 먹는다.

칼이 음식 재료를 다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요리해 버린다.

 

의심 많은 도마가 부엌 칼처럼 예수의 상처를 찌르고 바르고 자른 행동을 한 것이다.

반면, 예수는 부엌의 도마가 되어 의심에서 비롯된 도마의 행동을 부엌의 도마가 이 모든 것을 용서하고 받아들인다.

신의 아들이 도마가 되고 의심 많은 도마가 칼이 된 아이러니.

우리가 기독교 서사에 감동하는 것은 이런 모순적 조합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를 성인으로 추앙하고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그는 모든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다.

사흘 만에 다시 부할해서 과거의 아픈 상처를 드러내고는 의심의 칼로 찌르고 바르고 자른 제자의 행위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예수는 칼 들고 춤을 추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꺼이 도마가 되어 주었다.

그러고 보면 말구유간에서 태어나 30년을 목수 아들로서의 삶을 살었던  예수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바로 우리의 모습을 대변한다.

태생과 생애 모두 수수했다. 예수는 탄생과 사망 그리고 부활에 이르기까지 부엌의 도마와 같은 삶을 살았던 것이다.

 

 

나의 인생을 되돌아 본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평범한 서민으로 살아 오면서 누구 앞에서 빛이 나는  경험을 하거나  자랑할 만한 일을 해본 적 없는 삶을 살았다.

남 앞에서 카리스마 가득 칼을 휘둘러본 기억도 없다. 평생 도마 같은 삶을 살았다꾾임없이 처대는 칼날 밑에 놓여있었다.

그 칼날은 운명의 장난이든, 신이 내린 시험이든, 인간관계든, 지인의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든,

내 마음의 도마는 찔리고, 발리고, 잘리고 있었다. 마음의 도마가 칼날에 찍히고 긁히고 소리를 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꾼꾼히 버티어 온 것은 이 인생이 도마 같은 용도로 쓰일 것으로 체념하고

그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내 마음의 도마가 칼을 받아 주어야만 음식이 만들어지기 때문이었다. 그 음식으로 가족을 건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한 가족 생계를 책임지겠다는 각오 하나로 인생의 변덕이 또는 사회의 구조가 휘두르는 칼날을 맞으며 살아온 것이 아닌가.

물론 내가 성인처럼 산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시기와 질투, 욕심과 욕망, 불안과 절망 속에서

타인의 마음을 찌르고 바리고 자른 말을 하거나 행동을 했을 것이다.

그런 후회와 죄책감의 나에겐 또 다른 칼날이 되겠지만 말이다.

 

 

타인의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이리라.  

 

 

이처럼 도마가 칼날에 박혀 상처가 나고 두드리는 칼 자국에 비명을 지르더라도, 우리는 참고 나아간다.

부엌 한컨에 누워있는 도마처럼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어느 시인이 말했다.

상처는 무늬가 되고, 무늬는 꽃이 된다고.

 

고통을 통해 더욱 성숙되어 가는 법.

 

깊은 숨을 들어마시며 내 마음을 상하게 했던 칼날 같던 지인의 말 한 마디를 나의 도마 위에 올려놓는다.

도마의 상처에서 언제가 꽃이 피기를.

 

부엌에서 타닥타닥 도마 소리가 난다. 아내가 저녁을 준비하는 소리다. 저녁을 먹은 뒤 설것이는 내가 해야겠다.

 

 

 

    • 글자 크기
부부싸움의 본질 (by cosyyoon) 여름 날 어느 저녁 (by cosyyoon)

댓글 달기

댓글 1
  • 부엌에서 서로 부닫치며 저녁도 함께 요리하면 더 재미있을것 같군요.

     

    더 심도있게 살아 오셔서 감정의 기폭도 훨씬 크지 않았을까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2 첫 사랑의 꿈 cosyyoon 2025.08.14 95
111 벚나무 지다(에세이)1 cosyyoon 2025.08.12 34
110 당신의 모서리를 위하여1 cosyyoon 2025.08.11 32
109 입추의 일기 cosyyoon 2025.08.10 64
108 함흥냉면 cosyyoon 2025.08.09 72
107 벚나무 지다 cosyyoon 2025.08.07 48
106 새가슴으로1 cosyyoon 2025.08.06 37
105 길 모퉁이에 서서 cosyyoon 2025.08.05 33
104 새벽 안개와의 약속 cosyyoon 2025.08.04 86
103 여우비 cosyyoon 2025.08.02 89
102 불면(不眠)을 연습하다1 cosyyoon 2025.08.01 95
101 옥잠화가 건낸 하얀 손수건1 cosyyoon 2025.07.31 47
100 풍선의 기도1 cosyyoon 2025.07.29 54
99 부치지 못 한 새벽 편지1 cosyyoon 2025.07.27 65
98 사랑의 방정식1 cosyyoon 2025.07.26 78
97 사막을 걷다2 cosyyoon 2025.07.25 98
96 부부싸움의 본질1 cosyyoon 2025.07.25 61
칼 아래 도마처럼(에세이)1 cosyyoon 2025.07.24 42
94 여름 날 어느 저녁 cosyyoon 2025.07.23 39
93 사막을 걷다1 cosyyoon 2025.07.22 52
이전 1 2 3 4 5 6... 7다음
첨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