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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상서(八月上書) - 고은-

관리자2025.08.11 12:58조회 수 74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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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상서(八月上書) 

      고 은

 
아버지 세벌 김은 다 매셨는지요.

마을의 가죽나무 잎사귀 늘어지고 

어디에 그늘인들 바람 선선한 그늘이겠습니까.

논물은 그런대로 괜찮은 지요.
이제는 동네방네 물코싸움도 덜하겠지요.

제초약 뿌린다 해도
벼 속의 피 한 줄기는 질겨서
늙은 아버지는
바위 박이 논뱀이 피사리를 하시는지요.

밭두렁은 사나운 쇠비름 명주아풀
몇 섬지기 논에는 벼멸구 걱정이 떠나지 않겠지요.

농촌지도소 말치레 그대로 따라서는 도려 
큰일 나지요

곡식 부리야 다치기 쉽고
삼복 불볕에도 잔 이손 쉴 수가 있겠습니까.

더덕 같은 손발 백도라지 허리는 어떠하시며
등거리 등때기 허물 얼마나 벗겨지셨는지요.

볍씨 찰보리 종자 뿌려서 기르고
그것을 거두는 일밖에 없어도
우순풍조밖에 바랄 것 없어도
그 일이면 어느 나라 일보다 큰일 아닙니까.

흰 구름도 때로는 눈코 뜰 새 없습니다.
남의 것 내 것 할 것 없이
팔월 한 달의 들은 검푸르러서
산에라도 올라가면
그 드넓은 벙어리 들이 무서운 우리입니다.

산 것 하나도 숨지 않고
제 목숨 다 열어서 사는 제 철입니다.

여름은 으뜸으로 장합니다.

산딸기 고름이 터지고
새터고개 으악새 서슬에 살을 베입니다.

아버지 아버지라고 부르기 전에도 
이미 아버지
태어나기를 논밭에서 태어나서
이웃집 쌍둥이 서방과 함께 늙으셨지요.

모를 낼 때 거머리 피 빨리고
몇 십 년 동안 김을 매어
어화자 지화자 아버지의 긴 허리 
얼마나 굽으셨는지요.

심기보다 기르기 어렵고 
길러 놓아도 걱정뿐이언만.

마을 젊은이는 사내 녀석도 
쪼깐이들도 다 떠나고
늙스구레 해동갑 하루하루 빈 마을이언만

그래도 저녁나절 돌아오는 징소리 사이에
막내둥이 깽매기 소리가 요란하면
보릿대 연기로 자욱한 마을이
해 넘어간 쪽으로 아버지와 춤이 
덩실 하나였지요.


아버지 술 한 병 노랑태 한 죽 
사가지고 가렵니다.

아버지
산소에 가렵니다. 아버지

 

 

2025년 8월 10일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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