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 돌맹이, 시 그리고
이 새벽 조용히 연필을 깎는다
사금사금
수십년은 살았을 박달나무 조각과
수만년을 벼터온 흑연 가루가
흰 종이 위에 떨어지는 소리
어떤 시인은 시에 납치되고 싶다고 고백한다
어느 가수는 그의 노래로 부드럽게 죽여달라고 노래한다
시같은 낱카로운 소설로 산 자의 육식과 죽은 자의 구원을 이야기한 소설가가 있다
그들의 말과 글을 수 없이 새되김질하면서
남들에게 들려줄 노래도 이야기도
시 한편도 없는
나는
외롭게 연필을 깎으며
맨땅에 머리 박은 돌맹이를 상상한다
돌 하나가 비와 눈에 갈리고
태양과 여름이 주는 뜨거운 팽창과
어둠과 겨울이 주는 뒤틀리는 수축을
수 없이 겪으며 마침내
한줌의 먼지로
변할 때까지
얼마나 나는 고독을
질겅 질겅 씹어대고
머리를 바닥에
탕탕 박아야
다른 사람의 마음을 납치하고
행복하게 죽일 시를 쓸 수 있을까
온 인류를 구원할 소설은 고사하고
언제 나는
손에 쥔 이 연필을 놓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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