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와 피뢰침
서울에는 높은 건물보다 교회 십자가가 더 많다
십자가의 꼭대기엔 송곳같은 피뢰침이 있다.
시퍼런 피뢰침은 교회 지붕보다 교회 십자가보다 높다
검은 구름이 물려와 천둥번개가 쳐도
서울엔 변개에 맞아 죽는 사람이 없다
번개 맞아 죽어도 싼 죄를
지은 사람이 살지 않는 것일까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호주산 스테이크를 자르는
신사숙녀들이기에
십자가의 가호 아래
아니 피뢰침의 가호 아래
번개 맞아 죽지 않는 것일까
광야에는 피뢰침이 없다
평야에는 피뢰침이 없다
농촌에는 피뢰침이 없다
비닐하우스엔 피뢰침이 없다
항상 죽을 듯이 농사를 짓고 살아가고 있는 자는
생산성이 없는 몸뚱이로 정부미을 축내며
살아가는 것 자체가 죄를 짓는 것 같기에
항상 죄를 짓는 마음이기에
타는 가뭄에 비가 쏟아져도
천둥이 치는 날이면 밭에도 논에도 나가지 못한다
가진 것이 없는 자
땅을 파 먹고 사는 짓이 죄가 되는 세상에
나랏님 곳간을 축낸다는 죄 값을 치르기 위해선
언젠가
십자가 같은 허리를 구부리며
농사를 짓다가
저녁을 짓다가
아니면 찬물에 밥 말아 먹다가
벼락을 맞아 만자(卍字)처럼
죽을 것만 같은 예감이다
어쩔 것이냐 저 송아지 염소 누렁이
그리고 씨암닭을
피뢰침 하나 없는 시골에서
나의 서슬퍼런 피뢰침은 어디에 있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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