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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희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연극영화과 졸업
- CBS 제1기 성우, TBC 제1기 성우
- 1996년 수필공원 초회추천
- 대한민국 연극제 여우주연상, 동아일보 연극상 여우주연상, 백상예술상 여우주연상 수상
- 연극, TV, 영화 연기자 협회 회원,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복구와 예삐와 재롱이/김복희

왕자2018.01.04 22:35조회 수 60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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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구’와 ‘예삐’와 ‘재롱’ / 김복희

-무술년 개띠 해 생각나는 일 -

결혼 후 첫 선물로 시아버님이 진돗개를 사오시면서 내 이름을 따서

‘복구’라고 이름을 지셨다. 남편은 강아지를 너무 좋아해서 퇴근하면 바로 뒷동산으로 운동을 시키러간다. 지금은 그곳이 대형아파트촌이 되었지만 60년 전엔 노량진 시댁 뒤에 동산이 있었다. 1957년 남편이 미국유학 가서도 편지 끝엔 빼놓지 않고 ‘복구’소식을 물었었다.

나 혼자 아들을 키우는데 ‘복구’는 애기 냄새가 좋은지 애기를 보면 얼굴을 비벼 대니 상체기를 낼 것만 같아 매일 걱정을 하다가 애기를 다리고 친정으로 갔다. ‘복구’가 우리를 얼마나 찾을까 생각하면서도 형편이 함께 살 수는 없었다. 얼마 후 시아버님께서 ‘복구’를 친구 분에게 주셨다는 얘기를 듣고 ‘복구’가 보고 싶어 애기를 업고 종로 3가 지인 댁 큰 대문 앞으로 갔다. 대문 안에 묶여있던 ‘복구’는 내가 문 앞에 있는 것을 느끼고 껑충껑충 들뛰며 낑낑 거리는 것이다. 안에서 사람이 나와서 ‘복구’를 만나게 해 주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복구’는 나를 보자 너무 반가워 꼬리를 흔들며 내 얼굴을 계속 핥으며 애기에게도 애무를 한다. ‘복구’를 보니 미국 간 남편이 더 그리워 눈물이 났다. ‘복구’ 눈에도 눈물이 난다. 살이 좀 빠지고 배가 빨갛고 상처투성이다. 시맨트 바닥에서 살고 있으니 피부병이 생긴 것 같다. 불쌍하기만 하다. 시아버님이 직접 만들어주신 훌륭한 ‘복구’ 집은 보이지 않는다. 전차를 타고 돌아오면서 어떻게 하면 다시 데려올 수 있을까 궁리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지금 같으면 미국유학중인 남편에게 ‘복구’와의 이별을 알리지 않았을 텐데 그때는 어리고 철없어서 ‘복구’를 만나고 와서 슬픈 마음을 편지로 알렸다. 놀란 남편은 시아버님께 따로 편지를 보냈다. ‘복구’를 다시 찾아오시라며 귀국해서 ‘북구’를 키울 것이라 했다고 한다. 그 후 시아버님의 호출을 받고 시댁으로 가니 내가 손자를 데리고 친정으로 간 것부터 섭섭했다는 말씀과 ‘복구’를 남에게 주었다는 얘기를 왜 알린 것이냐며 힘들게 공부하는데 걱정 시켰다며 며느리를 나무라셨다. 친정에선 단 한 번도 부모님께 꾸중을 듣지 않고 컸는데 남편 없이 시아버님께 그런 말씀을 들으니 너무 서운해서 한참을 울었다. 그 후부터는 아버님께 많은 사랑을 받는 큰 며느리가 되었다. 1984년 아들이 미국으로 유학 떠나고 너무 쓸쓸해 하니 시동생이 두 달된 치와와 수놈을 선물 하였다 ‘재롱’을 보며 위안을 삼고 살다가 아들보고 싶어 미국으로 이민 가려던 때에 ‘재롱’이 와는 이별을 하게 된 것이다. 열 세 살짜리 ‘재롱’이는 남편이 낚시 간 날 잠깐 현관문이 열린 사이 나도 모르게 집을 나갔다. 몇 달 전부터 이빨이 빠지고 털이 하얗게 세고 귀도 어두워지고 밥도 잘 먹지 않더니 슬그머니 가출을 했다. 단골 수의사 말이 ‘재롱’이가 먼 곳에 가서 죽으려고 가출을 했다고 한다. 남편은 ‘재롱’이가 없어진 것을 안타까워하며 아파트 주위를 찾아다녔다. 이민수속을 시작하고 있었는데 ‘재롱’이 잃어버린 문제로 자주 싸워서 이민도 포기하고 이혼까지 갈 번했다. 13년간 ‘재롱’이와 살면서 하얀 멀티스 암놈 ‘예삐’를 같이 키운 적이 있다. 암놈은 처음이었다. 여러 종류의 강아지를 키웠으나 ‘예삐’는 정말로 너무 예뻤다. 까만 눈은 꼭 구슬 같았다. 새끼를 낳으면 강아지가 볼품없이 추해진다며 남편은 원하지 않았지만 몰래 수의사에게 교배를 부탁하여 배가 부르게 되었다. ‘예삐’같이 예쁜 강아지를 더 키우고 싶어서였다. 이왕에 새끼를 배었으니 어쩔 수 없이 낳아야만 했다. 출산하려는 날 병원엘 가야하는데 주말이라 병원이 문을 닫았다. 여행 중인 의사에게 전화를 하니 ‘예삐’가 건강해서 자연분만이 가능할거라 한다. 밤새 진통을 하는데 지켜보는 우리가 탈진이 될 지경이었다. 마루에 커텐 뒤로 들어가기에 그곳에서 새끼를 낳으려는 것 같아서 숨도 못 쉬고 기다렸다. ‘예삐’의 신음소리가 살아져서 가만히 커텐 뒤를 보니 아! ‘예삐’가 숨져 있는 것이다. 이럴수가 ... 충격이었다. 그 당시는 ‘예삐’의 죽음보다 남편이 화를 낼 것이 너무 무섭고 걱정이었다. 의사가 있는 다른 병원에라도 가자는 것을 자연분만 가능하다고 집에 있었던 것 때문에 결국 난산으로 죽게 된 것이다. 후회가 되어 눈물만 쏟고 있는데 울음소리에 놀라 뛰어나온 남편이 커텐을 재끼고 ‘예삐’의 죽음을 목격했다. 그날의 그 울음소리는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다.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흐느끼는 것이다. 나를 원망하는 분노의 울음 같다. 난 슬픔보다도 남편 때문에 도망가고 싶었다. 그 후 우리는 한 달 동안 말을 않고 지냈다. 우리 집에선 TV 소리도 음악소리도 나지 않았다. 탈렌트 중에는 강아지를 키우는 후배들이 있어서 강아지 얘기만 나오면 녹화 날에도 끝도 없이 자기네 강아지 자랑이다. ‘예삐’ 떠난 얘기를 하니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 그중 김희* 와 강부*는 사랑하는 강아지와 이별 경험이 있어 흐느껴 울기까지 했었다. 그땐 ‘재롱’이가 있어 차차 슬픔도 가시고 위로가 되었지만 ‘재롱’이가 떠난 후에 우리 집은 온통 회색 구름이 끼어있었다. 나 혼자 조용조용 이민 수속을 진행했다. 우리는 미국 와서는 다시는 강아지를 키우지 않기로 했다. 이곳 미국 아파트에서는 할머니들이 더러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 남편도 떠나고 외롭고 쓸쓸하여 강아지를 키우고 싶기도 하지만 남편이 ‘재롱’이 때문에 수고 하며 늘 부르던 노래가 떠오른다.

해바라기의 <사랑으로...>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강아지 키우는 일)” 난 자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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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포옹/김복희 나는 기쁘다/김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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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 애닲픈 것이 정을 주고 나누는 일 같네요.

    저는 평생 강아지를 키워본적은 없지만

    이해는 되요.


    노인 아파트를 매일 지나는데

    여름에 테라스에 나와

    살아있는 강아지 대신

    천으로 만든 강아지를 안고 쓰다듬던 할머니가 생각나네요.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할머니가 보이지 않아서

    돌아가셨나 하고 생각하고는 잊었는데

     선배님 글을 읽노라니 일면식도 없는 그 할머니가 생각나네요.


    인생은 아주 잠깐씩 웃고  깔깔거리는 ...

    그러다 다시 터벅거리며 걷는 외로운 여행같네요.

     추위에 식사 잘 하세요.

  • 왕자글쓴이
    2018.1.5 15:45 댓글추천 0비추천 0

    무술년 개띠라서 지난얘기를 썼더니

    종일 개 얼굴만 떠오르네요 ㅎㅎㅎ


    강아지를 키워보세요 얼마나 예쁘고 정이 드는데요 

    그러나 이별의 아픔 생각하면 다시 키울생각이 없지요 

    고양이는 때리면 도망간다는데 

    강아지는 얼마나 주인에게 충신인지 사람보다 더 기특해요

    그러나 다 지나고나면 망각을 하게 돼요 

    사람은 편리하게 만들어졌지요? 

    망각이 감사하기도 합니다. 

    금년도 사업번창하시고 대박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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