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강말희
- 충남 아산 출생
- 1986년 도미
- 제3회 애틀랜타문학상 대상 수상

낙엽비

2019.12.08 12:47

강이슬 조회 수:36

낙엽비 

                 -강말희-

 

시각의 신호로 계절이 분열한다

갈바람이 입혀 준 다홍빛 외투 벗어

초겨울 아침 찬햇살에 걸쳐주고

빛바래어 사각사각한 형체로 포복한다

 

바람이 작정한 대로 진로를 내맡기고

먹구름 징후 없이 비처럼 흩 날리며

직선 햇살속으로 낙엽이 돌진한다

부서진 날개로 곧장 추락하며

거추장하던 화려함도 낙하한다

 

길 위에 나선 이들을 스쳐  이동하며

가을 끝자락에 매달린 암호는 외면한 채

차디찬 아스팔트 위를 이리저리 접선하다

비로소 제 자리인 듯 숲속에 집결하여

저항도 없는 잠복을 한다

 

수북했던 잎사귀들 임무는 교체되어

앙상히 높은 가지만 보초로 남고

동장군이 포진한 맨살 밑둥치 주변

허옇게 서릿발 박힌 화석이 된다

 

산하에 백설이 지난날의 영화를 포위하고

육안의 활동이 모두 항복한 듯 하나

언 땅밑에 숨겨진 작은 씨앗과 접선하여

마침내

온기서릴 대지에 새 생명을 도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