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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정
- 중앙대 교육학과 졸업
- 2000년 도미
- 둘루스 거주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연선, 텔로미어를 위하여

keyjohn2020.01.13 19:57조회 수 301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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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콧망울에 수줍게 걸린 안경너머로 더 반짝이는 눈망울'이 내 의식에 처음 들어 온 그녀의 모습이다.

CA의 오렌지처럼 달콤하고, 태평양 기슭의 해풍처럼 나른한 감성을 기대했던 그녀의 작품 '텔로미어'는 일상적이기를 거부했다.

소년무렵 AM라디오로 길들여진 측두엽을 현악기가 훑고 지나자, 관악기가 3D로 여음을 만들며 지나가는 Stereo의 소리만큼 충격적이었다.


  그녀는 아프다.

'빨간 시를 쓰기 위해 고통을 박차고'('텔로미어 -생명 연장선'중에서) 

그녀의 피는 더 이상 붉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혈관속 붉기가 시로 옮겨가는 삼투작용은 신의 몫일 테니까 우리는 잠깐 외면하기로 하자.


우리는 '불편한 진실'이 담긴 메일을 수신하면 타인의 이름으로 재발송하곤 한다. 현재의 평화를 위해 과거를 부정하고 미래를 방치하는 것이 위기에 대처하는 대다수의 현주소다.

필연처럼 마주하는 '불편한 진실'들을 자신의 탓으로 끌어안는 그녀의 습성이 혹여 '자가면역 질환'으로 치환된 것은 아닐까하는 무책임한 처방전을 써본다.


  그녀는 너무 아프다.

'뼈의 퇴행만큼 기억의 상실도 있으면 좋으련만

상처가 낡을 수록 더 또렷하다'('기억의 샤머니즘'중에서)


  아픔의 세월이 길수록 그녀의 기쁨 혹은 희망을 위한 증언은 슬픔의 다른 얼굴처럼 보인다.

'뽀오얀

살피듬이

반달을 닮았구나'('만두'중에서)

보름을 향해 무한의 바다를 항해하는 반달의 고독이 만두라는 의상을 입고 무언극의 주인공으로 화한 순간이다.


'묻어 둔 삶을 꺼내서 색을 입히자'('제2의 인생 주파수 찾기'중에서)

어머니로 아내로 살아온 인생에서 주체적 삶의 주인공이 되기위한 채색작업의 의지가 가련하다. 


  32년 성상을 보낸 골든스테이트에서 그녀는 (고)고원 교수와 문우들과 행복한 족적을 뒤로하고 뷰포드에 둥지를 틀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 화분에 옮겨진 화초처럼 몸살을 앓는 중이다, 

'싱그러움으로 살쪄 있지만 허허 벌판 속 허수아비'('애틀랜타의 허전함'중에서)


  가슴에 허수아비를 세우고 사는 그녀를 찾아가는 일은 '그녀의 아픔에 풀꽃같은 존재가 되고'자하는 바램의 행로였다.

레니어 호수에 반사된 햇살이 소나무 숲에 닿아 더욱 초록이 무성한 겨울 저녁.

회색벽돌 그녀 성에서의 만찬은 흐뭇하고 애뜻했다.

논리가 배제된 문우들의 대화속 웃음은 흐뭇했고, 은빛왕관 성주의 부엌안 분주함은 애뜻했다.

격조있는 에스프레소색 마루위 또 다른 성처럼 놓인 아일랜드와 준비된 만찬은 무채색 전시품이었다.

인공과 화학이 배제된 만찬은 흡사 수도원의 식탁처럼 경건하기 까지 했고,

혀의 응석을 허락하지 않은 만찬은 우리와 그녀의 건강을 구가하는 주문을 닮아 있었다. 


  그녀는 상처투성이지만 잉여의 행복속에 살고 있다.

반석처럼 의연한 성주와 그의 고귀한 품위와 전통을 유구속에 이어갈 두 아들이 성의 기사이므로 ...


  그녀의 아팠던 세월을 보상받는 새로운 세월이 태동하는 맹신을 만들어 본다.

그래서 밤늦게 불이 밝혀진 제약회사 연구동의 연구원들에게 기도와 격려를 보낸다. 아울러 그녀가 믿는 신에게도
중보 기도의 간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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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가스 유람 혹은 유감 cloud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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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차분하게 가라 앉는가 싶더니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하고 아픔을 아름답게 그려내는

    그리고 & ... 마치 짧은 시간의 조우가 아님을 증명한 것 같이 

    이렇게 긴 전율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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