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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정
- 중앙대 교육학과 졸업
- 2000년 도미
- 둘루스 거주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나의 시네마 천국

2020.02.12 11:19

keyjohn 조회 수:45

   내가 처음 본 영화는 '그리움은 가슴마다'였다.
어머니는 윤정희와 김지미 얼굴로 가득한 극장 간판을 바라보았고, 나는 매점앞 옥수수 뻥튀기가 동날까 초조한 마음으로 어머니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어둠속에서 어머니는 간간히 뻥튀기 먹기에 바쁜 내 손을 찾아 꼭 쥐었다.
어느 순간 여기 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고 어머니의 어깨도 들썩이고 있었다.
6.25때 헤어진 딸이 가수로 성공해 어머니와 재회하는 장면이었다.
나는 뻥튀기 한줌을 어머니 손에 쥐어 주었으나, 어머니의 울음은 계속되었다.
먹거리에 미분되는 내 슬픔의 방정식이 어머니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후로도 어머니와 나의 극장행은 계속되었다.
서른두살 청상의 고독과 한을 달래주는  '영화보기'가  그녀의 아들을 또래집단에서 소외시켜 정서적 불구로 만들었으며, 잠재적 사회생활 이단아로 몰아냈다.
이러한 발달과정의 결함을 알게 되었지만 삶의 비가역성을 알기에  수시로 반사회적인 갈등과 지속적인 관계맺기에 실패하는 자신에게 좌절했다.
은막속 다양한 이야기는 소년을 청년기없는 성년으로 불완전변태시키기에 충분했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부작용을 감내하는 것은 온전히 일곱살 때부터 극장을 출입한 나의 몫이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보며 아프리카는 가난과 무지, 문명의 사지라는 편견을 깨고 '머스트 고' 리스트에 넣기도 했다.
더티 그레이 머리카락이 감싸고 있는 단정한 로버트 레드포드와 잔주름과 주근깨로 만들어지는 하염없는 미소의 매릴 스트립이 밀림에서 연출하는  '샴푸 신'은 모짜르트의 음악과 함께 잊혀지질 않는다.

   '브로크백 마운틴'은 양치기하는 두 카우보이들이 고립된 산속에서 갑작스레 맞이하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수려한 산세에 담아 낸 이야기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흉터처럼 남아있는 고등학교 친구 G에 대한 기억에 시달렸다.
체육대회 달리기에서 넘어져 무릎이 까진 나를 업고 양호실 천막까지 달려가 주었던 친구였다.
소풍땐 칠성사이다를 건네 주었고, 내가 아파 결석한 날엔 숙제리스트를 만들어 집까지 찾아와 주기도 했다.
경주 수학여행때의 일이다.
몇명을 빼고 많은 친구들이 선생님 몰래 소주를 마시고 취기로 나가 떨어졌다.
새벽에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화장실에 간 나는 내 바지 앞자락에 끈적한 촉감에 화들짝 놀랐다. 내 몽정이라면  속옷에 흔적이 남아야 하는데?
바지의 끈적함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었다.
G가 내 옆자리에서 자고 있었다.
그 일 이후 서먹서먹해 하는 나를 멀리서 바라보던 G는 졸업후에도 만날 수 없었다.
온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는 풍문을 들었던 날, 미안함도 그리움도 아닌 기분으로 혼란스러워 했던 자신을 기억한다.

  나의 추억은 언제나 영화와 함께 소환되는 경향이 있다.
'달콤한 인생'은 제목과 내용이 가장 극적인 대비로 보여 준 영화로 기억된다.
영화는 등장인물 아무에게도 달콤한 삶을 허락하지 않았으나, 세월이 지난 후 관객들에게만 달콤한 추억 한조각을 남겼다.
이병헌의 눈빛,신민아의 첼로, 그리고 황정민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단명하는 환희의 케익조각을 입에 물고 깔깔거리는 우리에게 던지는 잠언이다.
물론 달콤하지 않은 배경음악 유키 쿠라모토의 '로망스'는 여전히 나와 불편한 동거중이다. 삶의 씁쓸함으로 혀에 백태가 앉기 전에 가끔 핥아보는 '로망스'는 속삭인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는 사실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는 탓'이라고...

   연주여행 짐꾸리는 백건우에게
'어디 가?' 를 반복해서 묻는 윤정희는 알츠하이머로 파리교외 병상에서 늙어가고, 
노환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어머니는 
극장의 어둠속에서 잡던 아들의 손을 그리워하고 있으리라.
단명한 히스 레져의 우연한 죽음은 영화속 연인을 따라간 필연이라 우겨본다,
어쩌면 고교친구  G도 아릿한 시절의 기억을 
팬케익과 더할 수 없이 달콤한 캐네디언 메이플 시럽으로 버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나처럼!


*글쓴이 노트
한국영화가 아카데미상을 탔다는 소식을 듣고 나의 영화에 대한 추억들을 정리하고 싶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고 말한 이는 문인이 아니라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이다.
개인적인 것이 보편성을 얻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는 데는 나름의 공식이 있을텐데 .
그 공식을 알 수가 없으니 그저 사실의 힘을 신뢰하며 고백하는 수밖에...

너무나 많은 영화들이 머리속에 혼재해 있어 몇개를 랜덤으로 뽑았다.
'대부'나 '닥터 지바고'는 편애하는 작품들이어서 이글에서는 뺐다.
아끼는 사탕은 서랍 깊숙히 숨기던 소년시절 버릇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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