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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정
- 중앙대 교육학과 졸업
- 2000년 도미
- 둘루스 거주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아! 나의 형

keyjohn2020.05.05 16:19조회 수 73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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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상이셨던 마흔 무렵 어머니의 외출에 나와 두살위 형은 다른 태도를 보였다.
형은 분단장하는 어머니의 곁에서 간섭과 짜증으로 오디푸스적 본능을 나타냈고,
어머니의 귀가에 동반하는 먹거리에 길들여진 나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군침부터 삼키는 철부지였다.
친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나는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단신이지만, 외탁한 형은 큰 이목구비에 장신이었다.
외모만큼이나 소심하고 작은 일에도 집착하는 나에 비해, 형은 그릇이 크고 대범한 쪽이었다.
하루는 어머니의 귀가에 찐빵이 들려왔다,
천천히 먹는 형에게 뺏길세라 허겁지겁 먹던 나는 한순간 빵이 목에 걸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건조하고 따끈한 빵이 덜 씹혀진 채 넘어가다 기도를 막은 것이다.
아무소리도 못하고 바둥거리는 나를 본 형은 어머니를 불렀고, 어머니는 이제까지 한번도 본적이 없는 얼굴로 내 등을 내리쳤다.
순간 샴페인 병 따는 소리와 함께 빵조각이 나왔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옆에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떨고 있던 형의 얼굴과 응급처치인지 홧풀이 였는지 몰라도 내 등을 냅다 갈기던 어머니의 매운 손맛이 생각난다.

어머니의 재혼으로 형과 나 사이에는  또래 형제들이 겪을 만한 잔잔한 추억들이 단절되었다.
나는 재혼하는 어머니의 혹이 되어 새아버지의 집으로 가게 되었고, 형은 외삼촌 집에 더부살이를 가게 되었다.
새아버지네는 전실 자녀들이 이미 여럿 있어 형은 재혼녀의 혹이 될 기회마져 없는 불운을 겪은 것이다.
무골호인이신 새아버지는 가끔 형을 초대해 어머니와 나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셨고, 형이 왔다가는 날은 나는 극도의 불안과 초조함에 손톱을 물어 뜯었다.
하물며 어머니와 헤어져사는 형의 심리적 결핍과 청소년기의 도생을 생각하면 하염없는 연민과 애환에 가슴에 서릿발이 선다.
 
부모와 형제의 정과 굴레에서 소외된 형의 곤고한 삶은 결혼 후에도 이어져 나와 어머니의 마음의 빚을 키웠다.
나와 동갑인 형수는 마흔무렵 위암수술을 세번이나 받게 되었다.
교직생활을 하던 나는 방학을 맞이해 형수의 병원에서 병수발을 했다.
기골이 장대한 형은 오래된 재난 영화속 주인공처럼 말라 있었다.
말기암에 접어든 형수는 모든 음식을 토해냈다.
평소 커피를 좋아하는 형수의 취향을 아는 나는 내가 마시는 커피를 수저에 담아 입에 흘려 넣어주면 1분도 되지 않아 토해 냈다.
기이한 것은 반수저도 안되게 입에 들어간 커피가 두수저 분량의 토사물이 되어 나오는 것이었다.
단장의 신음과 비명을 주야로 토해내던 형수는 마침내 세상을 등졌다.
깊이를 헤아릴 수 없게 휑한 눈을 한 형과 어미잃은 새처럼 후둘거리는 조카들을 두고 오는 길에 형의 불행과 아들의 불행에 까부라지는 어머니의 불행으로 나도 불행했다.

그리고 세월은 무심히 흘러 나는 태평양 건너에 있고 형과 어머니는 고국에서 지척에 살고 있다.
어머니의 애정을 받고 자란 나는 가끔씩 몇푼의 돈으로 어머니에 대한 의무를 행하는 염치없는 채무자가 되어 있고, 어머니의 보살핌에서 소외되었던 형은 지척에서 어머니의 그림자로 살고 있다.
어머니의 수월한 병상생활과 간신히 불행의 터널을 지난 형에게 한줄기 빛이 비추기를 바라는 마음이 다른 어느 마음보다 가슴에 깊이 자리하고 있다.

*글쓴이 노트
오월모임도 유산되고
그리운 이들의 얼굴도 아스라한 오후!
평생을 두고 안타까운 형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봤다.
달랑 30분 글쓰기로 면죄부를 받은 것 같은 나란 존재의 가벼움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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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시절의 행복 반 나르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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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 아! 처음듣는 

    옛날 흑백영화같은 이야기를 시인 본인에게서 듣는다

    이럴 수가... 가슴이 아려옵니다.

    요즘은 단순하게 가볍게 재밌게 바보처럼 맛있는것 찾아먹고 

    체중기에 오르락 내리락 무게를 재보며 그냥 깊은 생각 슬픈 생각은 안하고 살다가 

    어제 나를 극진히 보살피던 옆집 여인의 장례식에 가지말라고들 말려서 못가고 

    꾸역꾸역 목이메어 질금질금 눈물을 흘리며 하루를 보내고 

    오늘 이른아침 기정시인의 글이 있어 '아! 나의 형'을 읽다가 이럴수가 ...

    소설같은 얘기에 가슴이 아픕니다.

    내동갑인 시인의 어머니인생이 너무 불쌍합니다. 

    내가 살아났듯이 어머니께서도 기적같이 회복되시어 

    시인의 마음에 위로가 되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 keyjohn글쓴이
    2020.5.6 09:02 댓글추천 0비추천 0

    이웃을 떠나 보내시고 심란하시겠네요.

    식사는 잘하신다니 좋은 징조네요.


    어서 시절이 좋아져서

    소들녘 냉면 먹으러 함께 가시길 기다립니다.

    오늘도 편안하세요.

  • 가정의 달인 5월을 맞이 했지만 여전히 무기력함에

    지배 당하고 있을 때 임샘의 글을 읽으며 숙연 해집니다.

    우수와 연민이 가득한 근대 소설을 읽은 것 같아요. 수필이 아닌.....

    어려서 힘든 일들을 겪으면서  지금의 풍성한 공감능력이 

    그 시절 그 시간과 바꾼게 아닌지

    저만의 상상을 해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강화식님께
    keyjohn글쓴이
    2020.5.6 16:07 댓글추천 0비추천 0

    지나고 나니 일장춘몽인 것을

    당시에는 현실이어서 매순간 희노애락에 시달렸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희락'조차 만끽하지 못한 것은 불행한 형 생각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   *   *   *

    분에 심어진 신선초가 확실히 자릴잡고 물이 올라 

    생명력이 탁월한 식물임을 실감하는 초여름입니다.


    주야 기온차에 잘 적응하셔서

    고뿔조차 접근못하게 하시길.... 


  •  신선초가 부럽네요. 지금은

    어제까지 덥다가 오늘은 서늘해요. 모두들 감기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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