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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안
- 애틀랜타 문학회 회장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는가?

아이얼굴2015.04.16 00:56조회 수 157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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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이민을 고민해 왔었지만, 선뜻 나설 수 없었는데, 아내가  미국RN자격을 얻으면서 그 동안 꿈 꿔왔던 이민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그즈음, 한국의 일간지에서 미국에 RN이 많이 부족하다는 기사가 크게 났고산업인력 관리공단에서 미국RN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일정기간 교육후 미국병원에 취업이민을 시켜준다는 소식을 듣고 아틀란타의 한AGENT를 소개 받아 미국에 들어가기로 했다.

 아내와 두아이를 먼저 보내고, 새로 시작하는 이민의 삶에 무리가 없으려면 우선은 내가 직장 생활을 더 하면서 아내가 미국에서 정착할때 까지 한국에서 돈을 벌어 보내주면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뒤따라 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20067월, 기러기 생활의 시작이 되었다.

아내와 상의할 때까지만 해도 2-3년은 견딜수 있을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혼자 지내면서 힘들때는 집 앞의 수락산에 올라가 눈앞에 펼쳐진 세상을 바라보며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랬었다.

 

           기러기 아빠 

                                              

                                        조동안



외로움이 있습니다.  없다면 거짓말이죠.
빈자리로 자꾸 눈을 돌려 봅니다.
지금이라도 등 뒤에서 나를 부를 것 같은데,
방 문을 열고 들어 와 날 안아줄 것 같은데,
아무런 기척도 없이 마음이 비어지고 있음에


그리움이 있습니다.  없다면 거짓말이죠.
함께 다녔던 흔적을 밟아 봅니다.
시장도 다녀 보고, 대형 마트도 돌아 보고
맛보기 찾아 다니며, 서로의 입에 넣어 주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던 그 때를 생각하고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없다면 거짓말이죠.
혼자이었기를 소망하던 때를 떠 올려 봅니다.
옆에 있어서 귀찮고, 불편하고, 힘들어 했었는데,
함께 함이 사랑이고, 행복이었음을
진작 깨닫지 못했던 나를 되돌아보고는

---------------------------------------

지난 여름, 생각 없이 흐르던 눈물로 아무 말도 못하고 당신과 아이들을 말도 생각도 통하지 않는,
먼 곳으로 떠나 보내던 날, 내 가슴에 파 묻혀 떨어지지 않으려는 당신의 가냘픈 팔의 힘을 느끼고는
당신을 향한 사랑이 부족함에 그저 미안할 따름 입니다.

 

보고 싶었던 아내와 아이들과 전화와 화상통화로 연락하며 서로의 힘든 시간들을 견디며 지냈다.

우리가 헤어져 산지 10개월정도 되었을 때,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싶어 회사에 1개월의 휴가를 얻었고,

2007 5월에 미국을 방문했다.

 한달이라는 휴가기간동안 함께 지내면서 서로에게 힘과 위로가 되도록 노력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이가 나 없이 얼마나 힘 든 삶을 살았었는지를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아내는 얼마전부터 편두통이 생겨서 병원에 가서 치료도 받았지만 치료받는 순간 뿐이고 집에 오면 다시 편두통으로 힘들었다고 했다.  

 함께 있는 동안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았지만, 호전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바로 그 때가 아내의 당뇨병의 초기였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 내 잘못 된 결정으로 아내를 힘들게 했다는 생각에 지금까지도 그 일만 생각하면 미안해 어쩔줄 모르겠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와지고, 아내의 편두통은 여전했고, 다시 셋이서만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 아내에게 큰 스트레스가 되어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반 억지를 부리기도 했다.  

아내와 함께 기도를 하며 앞으로 계획을 상의했다.  기러기의 생활이 먹고 사는데 무리없이 지낼 수 있게 할지 몰라도, 사랑하는 가족들 모두에게 큰 상처가 될 것 같아, 살면서 어려움이 있더라도 가족 모두가 함께 있으면서 헤쳐 나가는 편이 더 좋을 것으로 생각하고, 한국에 돌아가 직장을 정리한 후 다시 돌아 오는 것으로 결정했다.   돌아 오자 마자 23년을 다녔던 직장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930일까지만 근무하기로 했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4개월정도의 시간이 있었는데,  그 기간동안 업무 인수 인계와 미국에 들어올 준비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미국으로 들어갈 날이 가까와지면서 마음이 불안해졌고, 이렇게 미국에 들어가면 당장 생활비 문제가 생길텐데,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작정 미국으로 가는 것이 무모하고 성급한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닌지 후회스럽기도 했다. 하루 하루 고민하며 지내다 미국에 들어가기 10여일 남았던 토요일, 성경책 한 권만 가지고 수락산에 올라갔다.

넓은 바위에 앉아 보이지 않는 막막한 미래를 어떻게 헤치며 나가야할지 주님께 기도했다.

그 때 시편42편 말씀이 내게 다가왔고, 그 말씀을 통하여 마음에 평안함이 오면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

 

 그 해 102일 미국으로 향하였고, 10개월간의 기러기아빠 시간을 정리하고 이민의 삶을 시작했다.    

 미국에 들어올 때 재산정리를 하지 않아서 수입이 하나도 없이 있는 돈으로 생활하려니 생활비가 많이 부족했고, 우리 가족의 생활비가 월평균 us$2,700정도가 필요 했으며, 직장을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에  3일 금식 기도를 하면서 우리들의 한달 생활비를 벌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1025, 아내는 조그만 개인병원에, 나는 모 방송국에 111일부터 근무하기로 했다.

아내나 나나 쉽게 취직할 수 있는 자리와 여건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취직 자리를 마련하여 주셨으며, 각각이 us$1,500씩 한달에 us$3,000이 되어 십일조를 하고 나면 정확하게 us$2,700이 되어 어쩌면 그렇게도 딱 맞추어 주셨나 하고 감격했다.

 너무도 기뻐서 가족들과 함께 대형마트에서 아내가 입을 간호사 근무복도 샀다.

 직장도 결정되어 편한 마음으로 1주일동안 계속해 오던 말씀묵상을 하면서 하루의 일과와 우리 가족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고 틈틈이 한국에 연락해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우리 가정을 알리고 자랑하며 지냈다.

 하지만, 함께 공부하고 있던 아내의 친구가 그 간호사 자리를 부러워하였고, 그 친구가 아내의 자리에 들어가 일을 하게 되었고, 아내는 그 자리를 포기해야만 했다.

 111일 새벽 어느때와 마찬가지로 생명의삶책을 가지고 그 날 Q.T를 하는데, 그 날의 말씀이  바로 시편 42편 말씀이었으며, 그 말씀은 내가 미국에 오기 며칠전에 너무 두려운 가운데 수락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위로를 받았던 바로 그 말씀이었다.

도대체 하나님께서 내게 왜 이 말씀을 하셨을까?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

귓 속에서 맴돌고 있는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많은 기대를 하고 아침에 출근을 하였는데, 처음 맞는 사람들의 느낌이 차갑다는 생각을 하던 중 처음에 나를 채용하겠다고 불렀던 부사장이 와서는 사정이 있어서 지금은 힘들고 내년1월부터 일을 하면 어떻겠느냐를 의견을 물어왔다.

순간,  내게 일자리를 줄 의지가 없음을 느꼈고, 정중하게 사양을 하고 뒤돌아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중 새벽Q.T때의 말씀이 생각났고, 왜 그 말씀이 다시 내게 다가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내는 우리 가족에게 방송국이나 병원이 아니기에 우리에게 실망하지 말라고 미리 알려 주신 것 같다고 하지만, 솔직이 실망도 되었다.

 미국에 온 지 1달도 안되어 취직을 했다고 모두에게 소문을 다 내놓고는 모든 것이 없는 것이 되어 버리니 가슴만 답답해졌다. 그러면서 신경도 예민해 지기 시작했다.

아비로서 남편으로서의 부양 가족을 제대로 책임을 지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으로 나에게 화가 나면서 가족들에게도 화를 내기 시작한 것 같았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하나님께 매달리기 시작했다.

이 곳의 상황들을 조사하면서, 일자리 찾기 시작했다.

 신문의 구인 광고를 보면서 여기저기 전화도 하고, 이력서도 보냈다.  그러면서 나에게 관심이 있다는 두 곳을 찾았다.   한곳은 자동차 딜러였고, 한 곳은 도매상 창고 관리직이었다.

우선, 자동차 딜러 회사로 찾아 가서 면접을 보았다. 내가 일본계 회사에서 23년을 근무하며 배워왔던 일본어에 관심이 있어서 신분 상의 문제가 있지만 자신의 회사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다음 날 부터 근무를 시작하자는 제의를 받고 나왔다.

다음에 도매상 창고 관리직을 찾는 H Whole Sale Store로 가서 면접을 보았다. 가게의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 서는 순간 마음이 참 편안해지는 야릇한 느낌이 들었다.

마침 사장님은 안 계시고, 사모님이 계시니 사모님께 면접을 받으라고 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중에 이 곳의 사장님은 목사님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두 곳을 정해 놓고 어디를 갈까 고민을 했다. 아내와 상의를 해서 도매상에서 일하기로 결정했다.

 다음 날 출근 했고, 모든 직원과 인사를 나눈 뒤 회사의 분위기에 깜짝 놀랐다.

 아침8시 반까지 출근하여 아침 QT와 성경 말씀을 1장씩 교독매일 1시간 동안 예배를 드린 후에 하루의 업무를 시작한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내게 예비하셨던 일자리가 여기였구나 하고  생각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

시편425 말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깨닫고는 이제야 말을 할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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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벼락 단양역과 舍人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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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용기가 대단해요

    그리고 신실한 신앙심 부러워요

    여의도 순복음에서 읊펐던 방언이 왜 부끄러운 추억인지 ....

    뿌리를 잘 내리는 댁의 가정에 축복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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