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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정
- 중앙대 교육학과 졸업
- 2000년 도미
- 둘루스 거주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이웃집 여자

keyjohn2015.07.23 16:59조회 수 9596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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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 이사 온 다음 날, 바로 앞집에 사는 밀리는 300파운드는 넘어보이는 거구로 힘겹게 잔디를 자르다가 '이사

를 환영한다'고 아는 체를 했다.
흰피부에 그레이 눈동자를 한 인상을 보고 대뜸 아무 근거도 없이 '부모님들이 독일계니?'라며 호기심을 보였더니

'맞다'며 반색을 했다.
그렇게 친분이 쌓인 밀리는 출퇴근하며 마주칠 때마다 손을 흔들며 친절한 웃음을 넉넉히 보내주었다.
하루는 전기로 작동하는 잔디깍는 기계에 연결하는 연장코드를 아들이 망가뜨려 밀리에게 빌려 달랬더니 자기네 여

분으로 하나 더 있다며 선물로 주었다.
고마운 마음에 페이퍼 타올 한묶음을 선물하면서 우리는 제법 친한 이웃으로 발전하였다.
그해 가을 야드정리를 하다가 제법 많은 나뭇가지들이 쓰레기통을 채웠다.
쓰레기 통을 채우고도 남은 가지들은 다음 주에 버리려다가, 거의 빈체 우체통 옆에 서있는 밀리의

쓰레기통에 나머지 나뭇가지들을 버렸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다가 보니 우리집 쓰레기통이 나뭇가지로 넘치고 통 옆에는 나뭇가지들이 멀부러져 있기까지

했다. 물론 밀리네 쓰레기통은 달랑 비닐 봉지 하나만 담겨 있었다.
그 일 이후 밀리는 우리에게 '이웃집 여자'에서 '미져리'로 별명이 바뀌었다.
동명 영화속 주인공을 닮은 외모와 우리 맘에 들지 않는다는 생각이 만들어 낸 별명이었다.
그 일 이후 우리는 쉽게 나누던 손인사는 생략한 체 냉랭하고 간결한 눈인사 마져도 인색하게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하루는 HOA staff인 짐이 밀리가 타던 차를 처분했다고 말해줬다.
수입이 없는 데다가 당뇨와 혈압등 지병이 심해 재정적으로 어려운 것이 이유라고 덧붙였다.
'not my problem'이 아내와 나의 의견이었다.


며칠 전 스물한살 아들이 소식도 없이 1박 2일동안 연락이 끊겼다.
더 정확하게는 40시간 넘게 전화가 불통이 되어, 아내는 거의 울상이 되었다.
출근을 해서도 아내는 안절부절을 넘어서 사색이 되었고, 표현은 않했지만 나 역시 별의별 상상에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혹시 그새 집에 들어오지는 않았을까?'하는 생각 끝에 밀리에게 전화를 했다.
앞뒤 생략하고 우리 집앞에 하얀색 세단이 있는지 물었다.
하얀색 세단이 있다는 밀리의 답변을 아내에게 전하는 동안에 다시 전화가 들어왔다.
서둘러 아내와 통화를 끝내고 전화를 받으니 밀리였다.
하얀 세단이 다시 나갔다는 전화였다.

아들의 연락두절은 베터리 방전과 젊은 날의 열기가 빚어낸 산물이었다
그날 저녁 퇴근하고 밀리네 문을 두드렸다.
오늘 일 고마웠고, 내일 COSTCO가는데 혹시 필요한 것 없느냐고 물었더니 꾸깃한 3달러를 주며 fat free 우유를

사다 달라고 말했다.
묻지도 않고 쓰레기 통에 나뭇가지 버린 일에 대한 사과는 안했지만, 이심전심으로 통했는지 밀리는 다시 두꺼운

팔뚝 살이 출렁이도록 손을 아침저녁으로 흔든다.
처연하고 극단적인 짝사랑으로 빚어진 비극이긴해도 '미져리'속의 사랑은 요즈음 찾기 어려운 순정이었다고 생각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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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탤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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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 이웃과 소통부재로 자칫 소원해지기 쉬운데 

    더구나 이방인들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할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공감이가는 좋은 글 입니다


    임 시인님 

    댓글달기에  lock을 한 적이 없는데요 

    댓글 허용이 돼있습니다

    댓글이 안되시면 관리자님께 다시 요청해 보시길 바랍니다

    불편함드려 매우 송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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