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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사임당과 허 난설헌

이한기2024.02.24 11:22조회 수 29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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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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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사임당申 師任堂과 

허 난설헌許 蘭雪軒

 

 조선의 양대兩大 여류 문필가를

들어보라면

신 사임당과 허 난설헌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공교롭게도 걸출한 두 여성은

고향이 같다. 

 

 강원 강릉으로 모두

토호집안이다.

두 집이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신 사임당이

60년 먼저 태어나고 

허 난설헌은

사임당 사후死後에 

태어났다.

두 여걸의 닮은 점은 많지만,

한평생 살아온 인생은

하늘과 땅으로 갈라졌다.

 

 경포호 뒤쪽에 자리 잡은

큰 기와집은 당대의

문필가요, 경상도

관찰사였던 초당 허엽의

보금자리였다. 

초당두부도 허엽의

호에서 유래했다.

신사임당도 허 난설헌도

어릴 때부터 천재성을

드러내, 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혼기가 찼을 때, 두 천재의

아버지 판단이 그들의

일생을 극과 극으로

갈라놓았다.

신 사임당의 아버지는

아예 가문도 학식도 한참

모자라는 데릴사위를 데려와,

딸이 마음껏 자신의 재능을

친정집에서 눈치 보지 않고

펼치게 했지만,

허 난설헌의 아버지는 

문필에 능한 자기 딸을

5대代가

문과에 급제한 안동 김씨네

명문가문에 시집 보내기로 했다.

문필가 집안에 문필가 며느리가

들어오면 귀여움을 받으리라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완전히 오판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허 난설헌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됐다.

시대의 조류도 한몫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

전반기까지 내려오던 

혼례풍습인,

'남귀여가男歸女家’는

남자가 여자 집에

의탁한다는 뜻으로,

데릴사위로 신랑이 신부집에 

들어가 사는 것이다.

신사임당이 그랬다.

그랬던 풍습이, 조선 후반기로

넘어오며 ‘친영례親迎禮'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신부를

데리고 와 본가에서 혼례를

올리는 방식)로 바뀌었으니, 

혼례를 치른 신부는

당장 시집으로 들어가

살아야 했다.

 

 혼례풍습이 달라진

조선 전반기와 후반기

바로 그 시점이 60년 앞서

태어난 신 사임당

그 후에 태어난 허 난설헌의

인생을 갈라 놓은 것이다.

허 난설헌은 운이 나쁘게도

친영례의 첫 세대가 됐다.

열다섯 어린 새신부

허 난설헌이 김성립에게 

시집가 남자도 하기 어려운

한시漢詩를 지어

일필휘지로 써내려가니,

문필가 집안에서

예뻐하리라는 것은

친정아버지 허엽만의 

생각이었다.

시집 식구들의 눈초리는

서릿발처럼 싸늘했다.

 

 계속 과거에 떨어지는

못난 신랑 김성립은

주눅이 들어 집을 겉돌기

시작했고, 과거科擧 준비를

하는 선비들의 합숙소인

접接에서 눈을 붙인다 해놓고

사실은 기방으로 출입이 잦았다.

 

 시어머니는 제 아들이

마누라 기에 눌려 

과거에 낙방한다고

입을 놀렸다.

허 난설헌의 고난과 슬픔을

달래줄 수 있는 것은

시작詩作 밖에 없었다.

시댁 식구들이 잠든 깊은 밤,

피를 토하는 소쩍새 울음을

삼키며 호롱불 아래서

붓을 휘둘렀다.

 

 허엽은 본처와 사별하고

재취再娶를 맞아

2남1녀를 뒀다.

오빠가 명나라 사신이었던

허봉, 가운데가 허 난설헌,

남동생이 <홍길동전>을

한글로 쓴 허균이다. 

 

 삼남매는 후처의 자식으로

과거에도 합격하고

등용되어 나라의 녹도

먹었지만, 서자에 대한

유교사회의 차별에 분노했다. 

 

 허균은 양반을 능멸하는

소설 <홍길동전>을 써서

양반들의 횡포에 짓눌려

살던 무지렁이들의 가슴을

뻥 뚫어줬다. 

훗날 간신奸臣 이이첨

李爾瞻은 도성都城안에

떠돌아다니던 흉서凶書를

근거로 허균許筠을

역적逆賊으로 몰아

능지처참陵遲處斬을 

당하게 하였다.

 

 1580년, 경상도관찰사를

마치고 귀경하던 아버지

허엽이, 상주에서 쓰러져

객사했다.

얼마 후 허 난설헌의 어린 딸이

죽고, 이듬해 아들도 죽었다.

경기 광릉 땅에 두 남매를 묻었다.

아버지를 여의고 자식까지

모두 잃고 구곡간장九曲肝腸이

끊어지는 슬픔을 느끼다가,

배 속에 잉태한 자식도 떠나

보냈다.

 

 몇 해 후, 허 난설헌이 부모처럼

기대던 오빠 허봉이 관직에서

물러나 방황하며 술로 세월을

보내다 강원도에서 객사했다.

 

아름다운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

붉게 떨어지니

서릿달이 차갑구나.

 

 허 난설헌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을까?

이 시를 짓고 이듬해 천재는

요절했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일곱!

그는 죽기 전에 한평생

세가지한恨을 피력했다.

 

 *조선 땅에서 태어난 것*

*여자로 태어난 것

 *남편을 잘못 만난 것*

 

 그녀는 자기가 지은 시작詩作을

모두 불태우라고 유언했다.

동생 허균은 친정집에 

숨겨져 있던 유작遺作과

불태워진 시詩를 기억으로

더듬어 살려내

허 난설헌시집을 발간했다.

 

 명나라 사신이 조선에 왔다가,

허균으로부터 누이의 시집을

보고 북경으로 돌아가  

<조선시 선집>을 발간하자 

허난설헌의 시는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당시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우리나라로 역수입돼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사임당師任堂 :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어머니인 

신씨申氏(1504~1551)의

당호堂號.(주周나라 문왕

文王의 어머니였던 태임

太任을스승으로 삼는다)

 

*난설헌蘭雪軒 : 허균許筠의

여동생인  許楚姬/許玉惠

  (1563~1589)의 아호雅號.

자字는 경번景樊.

사후死後 남편 김성립이

이조참판吏曹參判으로

추증追贈되어 난설헌도

정부인貞夫人으로 추증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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