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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희
- 비올라 연주자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애팔레치안 츄레일 첫째날

송정희2016.11.08 20:04조회 수 77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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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팔레치안 츄레일 첫째날


2012년 여름 7월, 나는 산행을 결심한다.

일년 전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은, 날 삶의 한 구석으로 밀어부치며 나는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싶었었다. 그가 남기고 간 세상은 내게 너무 벅찼고, 나는 중심을 잃은 저울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매일 걸어도 제자리같은 삶.

그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산.

산악회 회장님을 찾아가, 상의하고 함께 등산장비를 구입 후, 나는 겁도 없이 혼자 출발을 감행했다. 이미 4,5월에 대부분이 출발을 해서 그들은, 10월 말쯤이면 메인 주에 도착한다. 6개월 여정의 길이다. 나같은 섹션 하이커들만 중간 중간에서 시작해서, 부분만 산행을 하는 시기. 특히 방학히 있는 휴가철을 이용한다.

친구가 아미카롤라 폭포, 츄레일이 시작되는 지점에 나를 내려주고 갔다. 9:30 오전 출발.

난생 처음 걸어보는 산길은, 첫날부터 고생이었다. 50파운드 배낭은 내 의지대로 등에 붙어있지 않고, 나는 술취한 사람처럼 비틀대며 걷기를 두시간 어깨와 옆구리, 배낭의 조여지는 부분의 살갗들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이리저리 가방끈을 옴기며 지도를 따라 목적지 도착. 오후 5시.

입구만 트이고, "ㄷ" 자로 막힌 오두막엔 변소, 물, 야영장 표시가 되어있었다. 변소는 간이용 작은 공간에 변기뚜껑만 있는 재래식. 물도 먹어도 될까 싶을정도의 작은 웅덩이. 우선 음식이 들어있는 매낭을 높은 와이어에 매달고, 옷을 갈아입고 웅덩이에서 얼굴 손발을 씻었다. 쓸린 어깨와 옆구리에 항생제를 바르고, 주위를 둘러보려고 일어서는데 무릎이 펴지질 않는다. 근육이 풀려서.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그렇게 난 첫날 여덞 시간 반 동안 7마일을 걸었다.

오두막 안쪽 벽엔 그 오두막이 세워진 배경과, 기증자의 이름,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지어졌는지 설명이 되어있었다. 첫날 내가 사용했던 오두막은 완성된 채로 헬기에 매달려서 실려와 그곳에 바닥만 공사 후 설치했다고 기록되었다. 


그나저나 난 혼자서 밤을 지낸다는 걸, 상상도 못했었다. 동행은 없더라도 오두막에선 누군가라도 만날 줄 알았다. 날은 저무는데 아무도 오지 않는 것이다. 두려움이 슬슬 엄습하며, 나의 모든 촉각은 작은 소리에도 곤두서기 시작했다. 결국 어둠이 내리고 오두막에는 나 혼자 있었다. 밤벌레와 짐승들의 소리가 적막함을 몰아내고, 산속의 밤은 화음과 불협화음이 만들어내는 어마어마한 콘서트 무대였다. 이것도 전혀 상상도 못했었다. 낯보다 더 시끌벅쩍한 산속의 밤. 

차라리 시끄러운게 나의 두려움을 조금 누그려뜨렸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지만, 나는 침낭 속에 숨어 잠이 오기를 기다렸다. 얼마 후 나는 잠이 들었고 지붕이 날아갈 듯한 굉음에 놀라 잠을 깼다. 키큰 나무들 사이로 세상이 하얗도록 번개가 치면 얼마 후 엄청난 소리의 천둥이 오두막을 흔든다. 그러기를 몇시간. 양철지붕은 엄청난 빗줄기로 전쟁영화에서나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을 만들어내고 밤벌레는 울음을 그쳤다. 무섭기는 해도 장관이었다.

앞쪽이 탁트인 골마루에 누워 쳐다보는 비오는 산 속의 하늘. 그리고 아주 작은 나는 그 거대한 자연의 가장 작은 부분이었다. 그렇게 새벽이 오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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