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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희
- 비올라 연주자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수필: 에보니 밥

송정희2016.11.22 19:48조회 수 17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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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보니 밥


나의 고양이 에보니는 내 아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고양이

고양이나이로 여섯 살 반. 인간의 나이로는 중년이라고 녀석이 다니는 동물병원 의사가 알려줬다

둘째 딸 지은이가 얼마 전에 비싼 고양이 밥을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배달이 왔다

그냥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포장과 사이즈

에보니는 포장 뜯는 소리에도 제 것인줄 아는 양 쫓아와 내 무릎밑에서 대기한다

지은이 왈 "엄마, 섞어서 먹여 원래 먹던 것과"

늘 먹던 밥과 새로 배달온 밥을 반씩 섞어서 밥그릇에 담아주니 먹지는 않고, 한참을 킁킁대며 냄새를 맡는다

어머나, 반반미처럼 섞여있는 밥에서 늘 먹던 예전 것을 그릇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아닌가

손도 못쓰는 녀석이 뭉툭한 잎으로 용케도 골라낸다.

난 신기해서 옆에서 관람 중.

어제까지만해도 맛있게 먹던 밥을, 더 맛있는 것이 있으니까 그릇 밖으로 밀어낸다

슬슬 괘씸한 생각이 든다.

며칠을 똑같은 행동을 하며, 맛있는 것을 다 먹으면 예전 것이 남아있는데도 날 쳐다본다. 더 달라고.

난 결심한다. 반반은 안되는구나.

그래서 맛있는 밥을 요즘은 주고 있다. 그것 다 먹으면, 예전 밥을 주려고.

그러면 하루쯤 단식을 하겠지

지은이에게 더 이상 비싼 고급밥을 사오지 말라고 일렀다.

내 형편상 고양이에게 그렇게 비싼 것을 먹일 수는 없다.

차라리 부모없는 아이를 후원하는 편이 낫다는게 나의 오래된 신념이다.

우리나라 몇몇 정치인들은, 나의 에보니만도 못하다.

에보니는 어쨌든 주는 것만 먹고, 나의 음식도 탐내지 않는다.

그런데 그 못된 정치인들은 남의 밥그릇을 용케 뺏는다. 온갖 술수와 속임수로.

넘치는 제 그릇의 밥을, 가난하고 배고픈, 노인과 아이들에게 나누며 솔선수범 해야할 이들이 말로만 그리고 입으로만

세상을 가르친다.

이 겨울의 춥고 배고픈 이들은,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국회의원이 되든, 따뜻하고 주린 배를 채워주길 원할 뿐이다.

그렇게 가난한 이들은, 결코 두둑한 정치인, 경제인의 밥그릇을 탐하지 않는다.

그저 내 앞의 밥그릇이 채워지길 원할 뿐.

나의 에보니는 맛있는 것과 맛이 없는 것을 구별할 줄 안다.

우리의 훌륭하신 정치인들은 제발 제 것과 남의 것을 구별하실 수 있도록, 소림사로 가시든, 혜인사로 가시든 기본수양을 하셔야 할 것 같다. 그들은 적어도, 나의 에보니의 지능보다는 높으실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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