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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희
- 비올라 연주자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수필: 수영장의 풍경

송정희2016.11.30 16:24조회 수 1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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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수영장의 풍경


너무 따뜻한 수영장의 물은, 사실 수영하기에는 적합하지않다.

처음 입수 때는, 조금 추은 듯 해야 몇 바퀴 돌고 체온이 올라가면 그제서야 그 물의 온도가 운동하기 좋은데,

이 곳 수영장 물의 온도는, 노인들 걷기에 좋은 온도이다. 오른쪽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와, 물결을 엄청난 움직이는 화면으로 바꾸는 기적이 시작된다. 일렁이는 파도는, 갖가지 몽환적인 무늬로 수영장 바닥을 수놓는다. 

거대한 스크린처럼 수영장 바닥은 아름다운 황금빛 일렁임으로 춤춘다. 볼 때마다 늘 신기하다. 마치 큰 스크린으로 디즈니랜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난 그 영화의 인어가 된다. 다른 인어들도 몇명있다.

천천히 물 속을 움직이며 나는 갖가지로 변하는 햇살을따라 술래잡기를 해본다.

햇살이 날 따라오고 난 또 햇살을 쫓아가며.

잠시 그렇게 세상의 고단함을 잊고, 동화속의 인물이 되어보는 소중한 아침.

오늘은 추수감사절이라 아침 8시부터 정오까지 문을 여는 LA 피트니스.

운동을 하러 왔더니 동화놀이까지 덤으로 하는 상쾌한 아침이다.

지난 주에 생일이었던 아들녀석 생일잔치를 오늘 모두 모여서 할 예정이다.

근사한 곳으로 데리고 갈 예정이어서 나는 그냥 납치 당할 준비만하면 된다.

내 바로 옆 레인에서 미국 할아버지가 권투하시는 자세로 물속을 걷고 계신다.

다리를 쩌억 벌리시고 마치 권투선수처럼 포즈를 취하며, 양손을 교대로 훅을 날리신다. 내가 발차기를 하다, 그분 쩍 벌리는 쪽 발을 차버렸다. 그렇게 나의 인어 술래잡기를 잠깐 중단하고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웃는다.

나보다 더 빠른 인어가 맨 끝 레인에 있다. 나도 저 나이에는 저렇게 빨랐겠지.

해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물속의 빗줄기가 기울어진다. 아주 천천히.

그렇게 한시간을 황금빛 반짝이는 물결에서 장차 만나게 될 왕자님을 꿈꾸며 행복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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