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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 직전 타이타닉호의 위대한 사랑이야기

관리자2024.06.16 22:14조회 수 1192추천 수 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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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 직전 타이타닉호의 위대한 사랑이야기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 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한 15,13-
​
캐나다 동북부 할리팍스라는 곳에 가면 벌써 112 년 전에 

타이타닉이 할리팍스 근해에서 침몰하면서 

죽은 사람들의 유해가 묻혀 있는 유명한 공동묘지가 바닷가에 있습니다.
​
오래전 그곳을 방문하면서 느낀 것이 많았는데 

최근에 알려진 새로운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있어 소개하려고 합니다.
​
1912년 타이타닉호가 빙산에 부닥쳐 침몰하는 과정은 영화로 재연되었지만 

영화만으로는 실제 상황을 다 알기는 어렵습니다.
​
당시 생존자인 부선장은 오랜 세월 침묵 끝에

 드디어 사고 당시의 이야기를 공개했습니다.
​
1912년 4월 14일은 '공포의 날' 이었습니다. 
사고로 1,514명이 사망했고 710명이 구조되었습니다.
​
사고 당시 38세였던 타이타닉 호의 이등 항해사 '찰스· 래이틀러'씨는

 구조된 승객을 책임지기 위해 선원 중 유일하게 구조된 승무원이었습니다.
​
아래는 '찰스·래이틀러'씨의 타이타닉호 참사의 자세한 사정을 담은 17페이지 분량의 회고록입니다.
​
선장이 침몰을 앞두고 여성과 아이를 먼저 구조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많은 여성 승객들이 가족과의 이별 대신 남아 있기를 선택했습니다.
​
저는 높은 소리로 ‘여성과 아이들은 이리 오세요!’라고 불렀지만, 

가족을 버리고 혼자 구명보트에 오르려는 여성과 아이는 몇 명 없었습니다.
​
'래이틀러'씨는 평생 그 밤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겁니다!“ 라고 말합니다.
​
첫 구명보트가  바다로 내려가고, 저는 갑판 위에 있던 한 여성에게 말했습니다.
​
“부인, 어서 구명보트에 오르세요!”
​
그녀는 뜻밖에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
“아니요, 저는 배에 남겠어요.”
​
이 말을 들은 여성의 남편이 
“그러지말고 어서 타세요! 여보!”라고 말하자,

 여성은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습니다.
​
“혼자 가지 않겠어요. 당신과 함께 이 배에 남을 거에요.”
​
그것이 제가 본 그 부부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
당시 세계 최고 부자였던 애스터 IV씨는 임신 5개월 된 아내를 구명보트에 태워 보내며 

갑판 위에 앉아, 한 손에는 강아지를 안고 다른 한 손에는 시가 한 대를 피우면서

 멀리 가는 보트를 향해 외쳤습니다.
​
"아이러브 유!“
​
승객들을 대피시키던 선원 한 명이 '애스터'씨에게 보트에 타라고 하자,

 '애스터'씨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
"사람이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
그리고 나서 마지막으로 남은 한 자리를 곁에 있던 

한 아일랜드 여성에게 양보했습니다.
​
그리고 며칠 후, 배의 파편들에 의해 찢겨진 '애스터'씨의 시신을

 생존자 수색 중이던 승무원이 발견했습니다.
​
그는 타이타닉 호 10대도 만들 수 있는 자산을 가진 부호였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거절했습니다.
​
자신의 목숨으로 양심을 지킨 위대한 사나이의 유일한 선택이었습니다.
​
성공한 은행가였던 '구겐하임'씨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에도

화려한 이브닝 드레스로 갈아 입으며 이처럼 말했습니다.
​
“죽더라도 체통을 지키고 신사처럼 죽겠습니다.”
​
'구겐하임'씨가 아내에게 전해준 쪽지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
“이 배에는 나의 이기심으로 구조받지 못하고 죽어간 여성은 없을 것이오. 

나는 금수만도 못한 삶을 살 바에야 신사 답게 죽을 것이오.”
​
미국 메이시(Macy’s) 백화점 창업자
'슈트라우스'씨는 세계 2번째 부자였습니다.
​
그가 어떤 말로 설득해도 

아내 '로잘리'씨를 구명보트에 태우지 못했습니다.
​
아내 '로잘리'씨는 
"나는 당신이 가는 곳에 항상 함께 갔어요. 

세상 어디든지 당신과 함께 갈 거예요”라며 

남편을 두고 배에 오르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
8번 구명보트의 책임 선원이 67세의 '슈트라우스'씨에게  
“누구도 어르신이 보트를 타는 것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며 

구명정 탑승을 권했습니다.
​
이 말을 들은 ‘슈트라우스'씨는 단호한 말투로 
“다른 남성들보다 먼저 보트에 타라는 제의는 거절하겠습니다.”라며

생사의 순간에도 초연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
그리고 그는 63세의 아내 '로잘리'씨의 팔을 잡고 

의연하게 갑판 위의 의자에 앉아 최후의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
현재 뉴욕 브롱크스에 '슈트라우스'부부를 기리는 기념비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
“‘바닷물로 침몰시킬 수 없었던 사랑’”
​
프랑스 상인 '와트열'씨는 두 아이를 보트에 탄 여인들에게 부탁하고 

배 위에 남아 아이들과 작별했습니다.
​
두 아들은 이렇게 구조되었고 세계 각지의 신문사들이

 어머니를 찾을 수 있도록 연달아 사진을 실어주어

 어머니와는 재회할 수 있었지만, 

배에 남겨진 아버지는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
남편과 미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난 '리더파스'씨는

 남편을 꼭 껴안고 혼자 살아남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
남편은 주먹으로 그녀를 기절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
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녀는 이미 바다 위에 떠 있는 구명보트 안이었습니다.
​
그녀는 평생 재가하지 않았으며 남편을 그리며 살았습니다.
​
그리스 로잔의 생존자모임에서 '스미스' 부인은 

자신에게 자리를 양보한 여성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
“당시 제 두 아이가 구명보트에 오르자,

 만석이 돼서 제 자리는 없었습니다. 

이때 한 여성 분이 일어나서 저를 구명보트로 끌어당기면서 말했습니다.

 '올라오세요. 아이들은 엄마가 필요합니다.'”
​
그 대단한 여성은 이름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
사람들은 그녀를 위해 “이름 없는 어머니”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
희생자 중에는 
억만장자 '아스테드',
저명 신문가 '헴스테드', 
육군 소령 '바트', 
저명 엔지니어 '루오부어' 등
사회의 저명 인사가 많았지만,

 

 이들 모두 곁에 있던 가난한 농촌 부녀들에게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
타이타닉 호의 주요 승무원 50여 명 중
구조를 책임졌던 이등 항해사 '래이틀러' 외 전부 자리를 양보하고 배와 함께 생을 마감했습니다.
​
새벽 2시, 각자 도망가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1번 연산사 '존·필립스'씨는 여전히 전산실에 앉아 마지막 순간까지 ‘SOS’를 입력하며 자신의 보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
선미가 물에 가라앉기 시작했을 때,
삶과 죽음의 마지막 순간, 사람들이 서로에게 외쳤습니다.
​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
그날, 우리 모두 위대한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줬습니다.
제가 당신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
그러나 예외도 있었습니다.
일본 철도원 차장인 '호소 노텍스트'씨는 여장을 한 채 

여성과 어린이들로 채워진 10번 구명보트에 올랐습니다.
​
그는 귀국 후 바로 퇴직을 당했습니다.
모든 일본 신문사와 여론은 그를 공개적으로 비난했으며 

그는 십여 년 뒤 후회와 수치로 가득 찬 삶을 마감했습니다.
​
1912년 타이타닉 호를 기리는 자리에서 

타이타닉 호를 건조한 선박회사 'White Star Line'는 

희생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남성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해상 규칙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들의 행동은 약자들에 대한 배려이자, 그들의 개인적인 선택이었습니다.”
​
‘Unsinkable’의 저자 '다니엘 알란 버틀러'는

약자를 살리기 위해 희생한 사람들을 기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
“그들은 태어나서부터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책임감이라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
삶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놓치고 혼자 남겨져

 돈과 유산으로 외롭게 살아가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
죽음 혹은 삶의 어떤 고난과 마주친다 해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죽음을 선택한 분들의 희생정신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
매일 만사에 허덕이는 우리 삶,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살아갈까요,
​
지금 내 삶을 지탱하고 이끌어가는 것은 무엇일까요?
​
내가 이 세상 마지막 순간까지 가슴에서 놓아서는 아니될 가치는 무엇일까요?
​
이 물음에 답하며,잊었던 내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오늘이었으면 좋겠습니다.***

      2024년 6월14일
          이순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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