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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善美와 아레테(Arete)

관리자2024.07.16 14:57조회 수 23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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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眞善美와 아레테(Arete)

                               아해 김태형

 

진선미는 참됨, 선함, 아름다움을

아울러 이르는 특히 미인

경연대회 때 자주 듣는 말이다.

하지만 난 예전부터 이 ‘진선미’의

3가지 덕성, 즉 眞, 善, 美를 함께

포용하는 어휘가 없나 궁금해했다.

또한, 미인대회에서조차 ‘美’가

眞과 善에 왜 밀려나야 하는지

의아해했다. 

 

미술관에서 숨이 막히도록

아름다운 작품을 만났을 땐

‘참 멋지다’라고 감탄사가 나온다.

또 책에서 큰 감동을 주는

주인공을 접하면 가슴이

쿵덕거리는 때도 있다.

이런 경우 ‘멋져‘, ’훌륭해‘ 또는

‘완벽해’라고 찬탄하는

말만으로는 어딘가 미흡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어에도 supreme, prime,

great, best, ultimate,

paramount, superlative,

그리고 요즘 자주 듣는

mesmerize 등의

단어들이 있지만, 이 어느 것도

진선미 합(合)의 의미를 담지는

못한다. 플라톤은 아름다움이

착함이고 착함이 아름다움이라며

이 둘은 근원을 같이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진선미’의 한 축인

나머지 진(진리)의 덕목은

아름다움과 착함과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고전 문학 작품 속에

나오는 아레테(Arete)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기원한

이 단어는 탁월함과 높은

미덕의 뜻을 가지면서 어떤

존재 최고의 상태를 의미한다.

거의 진선미의 의미를 갖출 때

사용하는 것 같다, 아레테는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처음으로

언급되었고 원래 戰士들의 용기,

헌신, 명예와 관련된 미덕을

뜻했으며 희랍 철학자들과

예술가들에 의해 최상의

예술품에도 확장되어 사용한

듯하다.

호메로스는 장님이었으니 그의

아레테는 미적 감각보다는

진리와 선에 더 치우치는

탁월함을 말하지 않았을까?

고대 희랍은 밀로의 비너스 등

아름다운 예술품을 많이 남겼다.

조각가 미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은 운동선수의 순간을

포착한 스포츠의 이상을

미학적으로 표현하였고, 희랍

미술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조각상, ‘스피어 베어러’는

인체의 자연스런 움직임과

인체의 균형미를, 또한 ‘라오쿤

군상’은 인간의 고통을 생생히

그려낸 희랍의 대표적인

걸작들로 모두 아레테에

해당한다. 이러한 고대 희랍의

작품들은 르네상스 시대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등 수많은 천상의 예술품으로

이어져 우리의 눈과 정신을

고양시킨다. 

 

아레테로 대표되는 또는

진선미의 합으로 대표되는

예술 작품이 동양에는, 특히

한국에는 없다면 참으로

수치스러울 것 같다.

서양의 탁월한 예술품들은

헬레니즘과 기독교 정신에

영향을 받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불교 예술에서

아레테를 찾아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우선 삼국시대의

금동반가사유상이 떠오른다.

반가사유상을 보고 있으면

지혜와 자비가 넘치는 얼굴에

온몸에 번지는 행복한 미소가

나를 압도한다.

이 금동 반가 사유상이야말로

미적 탁월함에 자비심을 구현한

한국 문화의 대표적인 아레테가

아닐까.

카를 야스퍼스는 일본에 있는

목제 반가사유상을 보고

“인간 실존의 가장 깊은 곳에

도달한 절대자의 모습을

보았다.”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그의 날카로운 평가에 박수를

보낸다. 신라 시대에 지어진

김대성의 석굴암도 미적 완벽함

위에 불교의 깨달음을 구현한

아레테임이 틀림없다.

‘아레테’ 의 개념을 충족시킨

신라의 에밀레종은 또 어떤가?

완벽한 종의 조성으로 3.75

미터의 높이와 18.9 kg 중량의

거대한 종에서 깊고 길게

흘러나오는 울림! 에밀레의

종소리를 통해 많은 신라인이

불교의 가르침을 깨달았을

듯하다. 

 

고려 시대에도 아레테의 작품들은

쉽게 눈에 띈다. 만인이 인정하는

고려청자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팔만대장경 그리고 세계 최초로

발명한 금속활자가 있다.

창의적인 인쇄 기술로 탄생한

금속활자! 백성에게 지식의

함양을 촉진한 윤리적 덕목이

빛난다. 조선 시대에는 또

어떤가?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이

있지 않은가. 백성들의 어려움을

간파하여 언어학적 이해와

창의적 사고력으로 만들어낸

세계에 하나뿐인 과학적인

글자! 훈민정음은 한국 문화의

대표적인 아레테로 오늘날

세계인들도 쉽게 배우고 쓸 수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혜택을

받는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는

아레테도 없었을까?

나는 이중섭 윤동주, 그리고

유관순 등의 인물을 그려본다.

이중섭의 작품을 들여다보자.

황소에서 보여준 생동하는

생명력이 압권이다.

그의 독창적인 감각과 예술적

탁월함이란! 또한, 윤동주는

어떠한가. 유려한 시적 감각으로

올곧은 청년의 순결한 각성을

담은 도덕적 감성, 아레테가

틀림없다. 그리고 유관순 열사!

젊은 나이에 독립운동을 이끄는

용기와 leadership, 조국을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는

희생정신은 실로 윤리적

탁월함의 표상이 아닌가. 

 

대한민국 설립 이후에도 수많은

아레테를 찾을 수 있어 고마운

마음이다. 자랑스러운 한강의

기적을 빼놓을 수 없다.

6.25의 폐허 속에서 근면, 노력,

자기희생의 정신으로 정부와

민간이 하나 되어 이룩한 놀라운

경제적 성장과 빠른 시간 안에

금자탑을 쌓은 자동차, 조선업,

반도체, 화학 등의 제반 산업!

그리고 세계를 선도하는 한류

(K-wave)로 K-Pop, K-drama,

K-Movie 등에서 보여준

한국인만의 뛰어난 예술적 감각!

한류로 인해 전 세계가 문화적

충격을 받고 있지 않은가?

최첨단 IT 산업과 digital 혁신

또한 세계가 주목하는 우리의

아레테로 추가하고 싶다.

 

나는 이 글을 쓰며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아레테가 있음에

새삼 놀랐다.

우리나라가 오래전부터 아레테의

온상이 될 수 있었던 원인은 우리

민족의 긴 역사에서 철학과

예술이 홍익인간이라는 윤리적

정신의 아레테에 뿌리를 두었기

때문인 걸로 생각한다.

8세기경에 고대 그리스에서

시인으로 활동하던 호메로스보다

훨씬 전에 한반도에 ‘남을 이롭게

하라’는 기치를 들고 나라를 세운

시조 단군왕검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세운 수려한 금수강산을

일편단심으로 길이 보전해

주기를 바라는 꿋꿋한 기상의

우리의 애국가도 나는 아레테의

반열에 올려놓고 싶다.

제국주의 시대 총칼로 세운 피의

역사를 찬양하는 서방 국가의

국가 (또는 애국가)들은 전부

아레테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2024년 7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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