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시 만나고 있다
신경림
삐걱이는 강의실 뒷자리에서
이슬 깔린 차가운 돌 층계 위에서
우리들은 처음 만났다
경상도 전라도
그리고 충청도에서 온 친구들
비와 바람과 먼지 속에서
처음 우리는 손을 잡았다
아우성과 욕설과 주먹질 속에서
충무로 사가 그 목조 이층 하숙방
을지로 후미진 골목의 대포집
폐허의 명동
어두운 지하실 다방
강의실에 찌렁대던
노교수의 서양사 강의
토요일 오후 도서관의 정적
책장을 넘기면 은은한
전차 소리
그해 겨울 나는 문경을 지났다
약방에 들러 전화를 건다
달려 나온 친구
분필가루 허연 커다란 손
P는 강원도 어느 산읍에서
생선가게를 한단다 K는
충청도 산골에서 정미소를 하고
이제 우리는 모두 헤어져
공장에서 광산에서 또는 먼 나라에서
한밤중에 일어나 손을 펴 본다
우리의 피 속을 흐르는 것을
본다 솟구쳐 오는 아우성 소리
어둠 속에 엉겨드는 그것들을 본다
제주도 강원도 경기도에서
비와 바람과 먼지 속에서
향수와 아쉬움과 보람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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