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밀 밀국수를 말며
-프시케-
가지런히 묵여진
메밀국수 다발을 비집고
문득
오래된 소설 속
소금처럼 흐드러진
메밀꽃밭 보이네
허생원과 처녀의
단 한 번의 인연 얼듯 스치고
달빛 아래 무르익는
물방앗간 도는 소리
가스라진 털을 가진
허생원의 나귀의
눈곱 껴 젖은 선한 눈이
새까만 메밀 장국 속에서 껌벅이고
메밀꽃 한번 본적 없는 내 눈은
언젠가 아스라이 읽은
그 소설로 찾아가
고추냉이처럼 두리번거리네
문득 허생원과 동이의
가느다란 옛이야기
메밀국수처럼
거무스름하게 뽑아질 무렵
톡 쏘는 듯한
두 사람의 비밀의 은밀함이
칼칼한 육수에
무 갈아 넣은 맛으로 내게 전해오고
왠지 끌렸던 부자지간의
끈끈한 정이
대나무 발 위에 똬리 틀어
나란히 두 덩이로 앉아있네
온갖 복잡한 사연으로 끓여진
저 장국 안에
두 부자의 눈빛이 잠겨
흔들리고 있네
푸른 집 정원에 흐르는
축음기 음과
버터 바른 토스트와 우유를
음미하는
작가의 한가한 아침과는
대조를 이루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봉평 아직 피지 않은
메밀밭 근처
물방앗간 앞에
내 마음 고이 접어 나빌레라
***
메밀국수를 만들며 떠오르는 대로 끄적여 본글
언젠가 남동생의 친구가 썼다는
"국수 삶는 저녁"이라는 시가
오늘 내게 말을 건다
**
국수 삶는 저녁
- 박 시우-
소나기 내린다
아내에게 전화 건다
수화기에서 빗소리 들린다
비가 오면 아내는 가늘어진다
빗줄기는 혼자 서 있지 못한다
누군가 곁에 있어야 걸을 수 있다
가늘어진 아내가 국수를 삶는다
빗줄기가 펄펄 끓는다
꼭 막힌 도로가 냄비 안에서 익어간다
빗물받이 홈통에서 육수가 흘러나온다
가로수 아파리들이 고명으로 뿌려진다
젓가락을 대자 불어 터진 도로가 끊어진다
지친 아내가 유리창에 습자지처럼 붙는다
빗줄기가 아내의 몸을 베낀다
혓바닥이 아내를 집어삼킨다
** 몇 년 전에 동생은
친구가 시집을 냈다며
내게 건네준 시집에
이런 시가 있었다..
왜.. 메밀국수를 삶으며
이 시가 생각났는지 모른다
어젯밤 비가 억수로 내렸었다..
빗줄기가 창을 때리는 소리가
유리창에 습자지처럼 붙어 있는
동생 친구 시인의 아내의 몸을
베끼는 빗줄기가
너무 세차서인가 보다...
2024년 1월 11일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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