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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숙
-Eden Flower 경영
-시서문학 2011년 겨울 14호 신인문학상
-현 시조문학 작가
-시인, 수필가

아메리칸 드림의 삶의 현장에서.(the boss.)

정희숙2017.09.13 16:15조회 수 51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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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정희숙
 
The Boss
정희숙
온 대지 위를 삶아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뜨겁던 태양열도 8월의 문턱에 들어서니 그렇게 울어대던 매미들의 합창소리도 서서히 줄어들고 가을 냄새를 실은 잔잔한 바람이 나의 콧등을 스치고 지나가는 “애틀랜타” 실로 오래간만에 느껴보는 계절의 변화에 마음속 깊숙한 곳에 나의 행복감은 포만으로부터 엄습해온다.
오랜 세월 소금기 섞인 비릿한 열대지방의 바람에 익숙해져 있다가 이곳 “애틀랜타”에서의 시간들은 고국에 대한 향수를 그나마 잊게 해준다.
시도 때도 없이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이기지 못한 코코넛열매들이 땅바닥에 뚝뚝 떨어져 뒹굴던 “마이애미”와는 달리 서산에 해가지면 고향에서 듣던 풀벌레 소리가 밤의 멜로디처럼 들려오고 앞뜰에 나가면 반짝반짝 반딧불들이 어둠속을 날아다니며 놀고 있는 “애틀랜타”의 8월 달은 마치 고국에 온 기분이랄까?
어둠이 걷히는 새벽녘이 되면 고향의 뒷산에서만 볼 수 있었던 곧게 뻗은 소나무들 그리고 칡넝쿨들이 그들을 휘감아 마치 벌거벗은 나무들에게 옷을 입혀 놓은 것처럼 싱그러웠고 아름다운 푸른 숲속에서는 그 신선한 자연의 향기 속에서 아침잠을 깨워주는 이름 모를 산새소리들의 짹짹거린 청량감 그 소리로 인해서 마냥 행복하기만하다.
오랜 세월동안 한국인들이 많지 않은 곳에서 살아온 나는 “애틀랜타”에서 내딛은 첫발은 기도하는 소녀의 소망처럼 마냥 또 다른 인생의 꿈으로 마냥 부풀어 오르기만 했었다.
마켓을 가도 운전 중에 옆을 봐도 반가운 얼굴 우리네 한국사람 들을 볼 수가 있었고 진한 반도핏줄 동족이라선지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했었다.
마켓 안에 들어서니 고국에서만 맡을 수 있는 우리 코에 익숙한 음식냄새가 풍겨져 나왔었고 몇 십년 줄곧 살아왔었어도 적응되지 않았던 음식문화 때문에 너무나 힘들었던 그동안의 시간 이였기에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부풀고 들뜬 마음에 호들갑만 떨었던 나를 남들이 봤을 땐 조금은 천치같이 바보스럽고 나이 먹어 주책이 없는 여자로 비춰졌으리란 생각이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뒤늦게 깨닫는다.
미국 땅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벗어 날수 없는 한국인의 습관과 고정관념 이러한 것들이 외국사람 흉내 내며 살아가야 하는 나에게 무척이나 힘이 들고 가끔은 나를 좌절감에 젖어 고통으로 몰아넣을 때가 있었다. 사람은 많이 배웠건 간 소위 가방끈이 짧은 사람이건 간에 광야 같이 험한 이 세상 헤쳐내며 떠나는 날까지 새로운 환경을 접할 때마다 새롭게 배울게 있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해준다.
보는 사람 지나가는 사람들이 마치 나와 지간의 형제만 같았고 가까이 다가와 인사 말이라도 걸어줄 경우엔 다정한 이웃집 사람들 같이만 느껴지기도 했다.
지난해 “마이애미”를 떠나올 때 잠시 쉬며 이곳을 파악하면서 좀 더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에 경험삼아서 잠시 취직자리를 선택 했었다. 처음 첫 출근하던 날 다정한 이웃과 같이 친한 형제 같을 것이란 나의 생각은 의외로 착각이었다.
각박한 이민 생활에 지처서 일까? 너무나 딱딱하고 차가운 그네들의 시선들 마치 이방인을 대하는 듯한 느낌에 난 그만 기가죽고 말았다 오랜 이민생활 속에서 언어장애인으로 살아 나오면서 은연중에 쌓여진 열등의식과 먹고 살아야 하기에 동분서주하며 일에 지쳐만 있는 육체 이를 보상받지 못할 피해의식 등등 이러한 것들로 인해 언젠가 부터는 조그마한 소리에도 쉽게 상처가 남아서속이 좁아져 있는 인간으로 변해버린 나 자신에게 놀라고 자학에 들어선지 서글픔마저 들었었다.
사람들은 부자이건 간 가난한 사람이건 간에 저 혼자 독불장군으로는 살아갈 수는 없는 세상이다.
한 회사의 사장이면 그 사장 밑에서 회사를 위하여 일을 해주는 이사회가 있고 제일 밑바닥에서 한두 주간 일한 댓가로 주급을 기다리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 마다들 각기 다른 인격자들이 모여서 한 회사를 공동체로 이끌어 나가게 되는 직장인의 태도와 그 법도를 종사자로서 지켜주는 게 상식이기도 하지만, 이곳 저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좋은 상관(Boss)을 만나게 되어 직장생활 하는 것이 즐겁고 분위기가 좋은 곳이 있는가하면 반면에 목에 붕대(기부스)를 감은 듯한 상관(boss)이 나타나기만 하면 긴장감과 불안감을 갖게 하는 아부성의 상급자들도 있다.
사람들은 물질을 많이 가진 자 학식이 높은 자이면 저들마다 성공한 사람이라고들 생각한다. 항상 상사의 사무실 안에선 누구의 인격을 깎아 내리는 큰소리가 질시로 들리고 어느 한 사람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서 조금 남아있던 자존심마저 땅 바닥에 내 팽개쳐버려야 하는 오도 가도 못한 처지에 이르고 딸린 식솔들 자신을 바라보는 연민의 얼굴 불쌍히 그리며 정말 난처해진 입장에 서게 된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헛된 말은 아니란 생각이 뇌리에 스친다. 직장일에 제 아무리 죽도록 성실하게 충성해도 상관의 눈에는 잘하는 면보다 조금이라도 부족한 면을 지적들 하는 습성들이 들어차 있는게 한국인 사장(boss) 보편적인 오너들의 마음이다.
사장(boss)의 마음속에 썩 들어찬 직원이 별로 없고 직원들 일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에 차서 만족한 사장(boss)은 그리 많지 않다라 본다. 아이러니 하지만 이런 경우 한국인 보스와 미국인 보스의 차이점은 조금 다르다.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미국사회에서체험으로 겪으며 살아온 경험담을 얘기하고 싶은 생각에서 쓴 것이기에 전혀 일방적인 표방 나의 소견으로 보진 않는다.
다만 직장생활 환경적인 근무 문제가 어디에서나 각기 다른 문제점은 있을 순 있겠지만 먼저 한국 사장(boss)들은 남보다 우월한 권위의식이 철저히 강하다 그러한 체계의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감히 그 상사의 옆에도 다가 설수 없는 존재인 반면에 전부다 그런것은 아니겠지만 거개의 미국인의 보스들은 제일 밑에 있는 직원들에게 다가가 배려와 격려를 할줄 아는 아량이 있다는 걸 나는 직장 생활에서 느끼고 경험을 한바가 있다.
따뜻한 말 한 마디로 격려 할 줄 아는 “보스”밑에서 좋은 직원들이 있을 것 이라는 생각을 정말 해본다. 그렇게 해야만이 모든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을 하게 되고 한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서 일을 해 능률도 오르게 되고 발전하는 회사가 될 것이라고 나 나름에 견해를 피력해본다.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물질이 필요하고 가족도 부양해야만 하기에 그 소득원을 얻기 위해서는 언제 어디서나 직장생활은 반드시 해야만 한다. 많은 사람들이 힘든 이민생활에서 상사들 앞에서 인격이 짓밟히고 그나마 조금남아 있던 자존심마저 땅 바닥에 내 팽개쳐야 하지만 어쩔수 없이 책임져야 할 가족들이 있기에 입술을 깨문 쓰디쓴 인내로 참으면서 일을 하고 있다. 언젠가 부터 도래된 상처의 마음은 깊은 상처로 인해 화병을 안고 살아가고들 있는 것이다. 다들 힘들고 어려워하는 이민생활에 조금만이라도 배려하는 마음들이 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말 한마디 천냥 빚을 갚는다는 우리네의 속담이 있다. 정말 따뜻한 말 한마디가 이민생활에서는 고단한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풀어준다. 좋은 보스 밑에는 좋은 직원들이 있고 좋은 회사가 존재하고 사회에서 앞서가는 미래지향의 발전된 공동체가 될 것이다. 각기 다른 사업장에는 보스 밑에서 일을 하는 수많은 종업원들이 있다 그들로 인하여 사세가 나날이 발전해 세워져가고 일거리가 늘어가기에 어찌하거나 여기서 힘든 노동으로 인하여 돈을 벌수 있지만 직원들이 혹사당하거나 돈 버는 기계는 절대 아니다. 비록 직장이 필요하여 남의 밑에서 일은 하고 있지만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고 한 여자에 존경받는 남편이기도 하며 귀여운 자녀들의 부모이자 한 사람의 사회인이다. 나름 휴먼니스트인 그가 집을 나서기 전 조금 남아있던 귀한 자존심 까진 집에다 내려놓고 가진 않았을 것으로 본다.
아메리칸 드림의 꿈을 안고 열심히 살고자 이곳까지 와서 힘든 이민생활에 마음과 육체의 병이 들어 하루 하루를 적응 못하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동양계 이민자들이 모인 이곳 “애틀랜타”에서도 몇 건의 가족관계 경제불화로 불행을 자초한 총기난사 사건이 있었기에 이는 바로 얼마 전 생활고에 시달리던 부인이 사랑하는 남편을 부부싸움 다툼 끝에 권총으로 즉석에서 쏴 죽였던 비참한 현장사건을 말 한다.
연고 관계 및 물질로도 장례를 치러 줄만한 근친 가족들이 없어서 이를 보다 못한 “애틀랜타“교민 한인회에서 결국 장례를 치러 주었고 바로 이때 누군가 마지막 가는 그를 위하여 애도의 화환을 주문해와 나는 장식한 꽃을 배달 하기위해 장례식장에 갔었다 곱게 누워있던 그분의 모습을 보았기에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저려왔다. 얼마나 이민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힘겨워만 했었을까?
그분에겐 장성한 자녀들이 있는데 하나같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단 이야기에 이글을 올려야만 했던 내 마음도 너무나 아프다.
그래도 이곳은 “마이애미”와는 달리 한마음 한뜻으로 똘똘 뭉쳐진 “애틀랜타 한인회”의 교민회장님을 비롯하여 한인 이사회가 설립되어 있어 크고 작은 일들을 처리해 나가는 공동체 그 인간적인 동포애 모습에서 그나마 감동적이고 존경스럽다.

이곳 처음 이사왔을때 썼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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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타의 유월.... 부모란 자리 .... (by 정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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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아 아름다운 곳에서 오셨군요.

    크루즈 타기위해 잠깐 들른 마이애미.

    잠깐 짬이나 들렀던 쿠반 밀집지역이 으스스했던 기억도 나네요.


    유교와 권위 탓으로

    우리민족들은 보스와 코워커들이 민주적이지 못해

    비효율을 양산하기도 하는 점 공감백배입니다.


    희숙님의 섬세한 안테나가 한인사회 여기저기를

    속속들이 잘 보셧네요.


    오늘 귀여운 손주들 사진이랑

    단톡방에 오신 것,

    모두 즐거웠어요.



  • 정희숙님!

    오늘 지금 새벽 1시 50분 손님이 9월 8일 부터 시애틀에서 와서

    오늘에야 글을 읽었습니다.

    글을 아주 잘 쓰시네요.

    진작 부터 함께 했으면 얼마나 많은 글들을 감상 할 수 있었을 텐데

    많이 많이 올려 주세요. 함께여서 행복 합니다. 

  • 정희숙글쓴이
    2017.9.17 11:51 댓글추천 0비추천 0

    반갑습니다 ~마이애미 

    여행지로는 가끔씩 가볼 마음이 있지만 실제 생활하시기엔 그리 만만한곳이 아니지요~

    처음 갔을때만 해도 그리 삭막하지 않았던것 같은데 

    살아남기 위하여 싸우는 삶의 전쟁터 같지요

    흑인 타운 가까운 곳에서 옆구리에 총을  들이되었던 사건 등등. 

    생각만 해도 살벌한 쟌쟁터만 같은곳이였지요 식당을 두개 운영하면서 겪었던 사기사건 

    앞으로 쓰고 싶은 글들이 머리속에 너무 많이 남아있지요~

    감사합니다 두분 

    즐거운 주말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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