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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숙
-Eden Flower 경영
-시서문학 2011년 겨울 14호 신인문학상
-현 시조문학 작가
-시인, 수필가

초라한 삶을 사시다가 생을 마감하신 할머니..

정희숙2017.11.16 19:33조회 수 30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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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鄭 喜淑                     
 

 

 

파도 없는 잔잔한 바다 밑에는 쓸모없는것들로 비롯하여

사람들이 놓처버린  아까운 물건들도  손에 닿지않는 곳에

깊히 가라앉아 있다

 

이땅엔 수많은 인간들로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 또한 한사람도 없다

일란성 쌍둥이를 빼놓고는 살아가는 모습 또한 천태만상이다

 

지난세월 날을 뒤로 하고 흐르고 있는이시간에도 기뻐서 웃는사람 .

행복에 젖어 마음이 구름위에 두둥실 뜨있는듯한 사람들.

꿈을 이루기 위하여 목표를 위해 지칠줄 모른체 열심히 달려 가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이다 .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엔 무엇이 어떻게 체워저 있는지는 아무도 알수없다 마치

걷으로 보기엔 잔잔한 바다 위 처럼.약간의 표정엔 나타날 진 몰라도...

 

오늘은  이 먼 외국에 서 이방인으로 서글픈 나그네 인생을 사시다가 초라한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신 한 할머니의 얘기를 나누고자 이글을 올려본다

 

문 할머니  아주 깔끔하시고 단정하신 모습이 그래도 젊으셨을 땐 귀부인 소릴

들으며 살으셨다고 자랑하시는 말씀에 믿을수 있을 만큼 모습에서 나타났다 ^^

 

아들 둘 딸한명.딸은 시카고에 서 결혼하여 살아가고 있고 큰아들은 유태인 부인과 결혼했다가

딸하나를 두고 이혼을하고 혼자 미국 어디엔가 살아가고 있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

 

내가 이 할머니를 만났을땐 아주 오래되고 초라하기 짝이 없는 정부 아파트 에서 혼자 외롭게 살고 계셨다

당뇨로 인하여 앞을 못보시는 처지 시라  시장도 봐다 드려야 하고 교회도 모셔다 드려야 할 형편이셨다

하루종일  공기가 잘통하지 않는 방. 에어컨이 낡을대로 낡아서 쏫아저 나오 는 공기에 역겨워

 

토할것만 같은 그런 분위게에서 일요일.  수요일. 금요 기도회. 그렇게 일주일 동안 누군가가 태워다 교회에

모셔다 드리는 낙으로 매일 매일 사시는 분이셨다

앞을 보지 못하셔서 낮인지 밤인지 분간을 못하시는 할머님 가끔은 밤을 낮으로 착각 하시고 막무가내로 기다리 시다가

 

정작 교회에 가실 시간 되었을땐 주무시고 계실대도 가끔 있었다

앞도 보지 못하시면서 손수 쌀을 씻으셔서 밥도 해드시고 찌개도 손수 끓여 드시곤 하셨다

가끔은 너무 안타갑고 불쌍해서 청소와 밥을 지으 드리고  돌아서 올땐 울지 않을수 없었다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생각에서 울고 낯선땅이 점점 더  우리가 머물기엔 너무나 낮선곳같아서 울었다 .

 

끓여놓으신 찌개 냄비를 열어 보면. 미처 벗기지 못한 양파 껍질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얼마나 가슴이

아프고 저려 오는지 .가깝게 막내 아들이 살고 있었지만 자주 들여다 보는것 같지가 않았다

그. 빌딩매니저  말을 빌리자면  아들이 가끔 와서. 식료품을 사다가 집안에 들여놓고는 휑하니 달아나듯이

가버린다는 것이었다. 어떤날 내가 갔을때 전날 사다 던저 넣어 놓고간 야체들이 봉지안에 그대로 늘어저

 

있을때도 있었다 내가 그걸 보고 투덜 거리기라도 하면 할머닌 아들이 급한일이 있다면서 시간이없어서

그냥 넣어만 놓고 갔다고 아들을 두둔하곤 하셨다 .

엄마가 자식에 대한 사랑은 어디 까지인가. 과연 나라면 할머님 처럼 자식 원망 않고 이런 상황에서 두둔 할수 있을

엄마일까. 한순간 가슴에서 부터 올라오눈 서글픈 눈물을. 난 억제 하며 하나 하나 씻어서 플라 스틱 각각 다른 모양의

 

통에 넣어놓고 설명을 해드리곤 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엔 눈물이 앞을 가려 때론 길가에 세워놓고난  

실컷 울곤했다 인간 살아가는 삶이 왜이렇게 힘들고 서글픈지 붙어 있는 목숨 부지 하기 위해 이처럼

애처롭게 매일 매일 흐르는 세월에 기대어 힘겨운 끈을 잡고 쫒아 가야만 하는  삶이 때론 잡았던 끈을 놓아

버리고 싶으리라 ㅎㅎ

 

망할자식. 할머니 아들 정부에서 장애자 에게 주어지는 돈  할머니 손에 만저 지기도 전에 수표를 바꾸어 용돈이래야

교회가서 매주 얼마씩 내는돈 외엔 할머니가 쓰시는 돈은 없으셨다.며느린 집안에 들어가지 않는단다 빌딩매니저가

나에게 귀뜸을 해주곤했다 .어느날은 청소나 병원에 모시고 가기위하여 방문했을때 냉장고는 텅텅 비어 있고

 

쌀이 없어 맨 국수를 김치랑 드신날도 있으셨다. 원래는 일주일에 한번씩 아들이 시장을 봐다가 냉장고에 넣어 드리기로

약속이 되어있지만 그것이 제대로 행해지지 않고 있었다 그럴땐 난 화가 나서 할머니 아들게 전화를 걸어서

나무라곤 햇었다 그러기를 십여년이 지났고 할머니는 당뇨로 인하여 점점 몸이 쇠약해저만 갔다

 

아무래도 안될것 같아 할머니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야 겠기에 할머니께 여쭤봤다 .할머님 절대로 아들에게 전화를 걸지말라고 하시는것이었다.

 아들이 들어와 같이 살자고 하는 데 당신이 편치않아 들어가지 않는 것이라면서 막무가내로 말리는 것을

전화를 걸어서 대충 할머니 컨디션을 설명했드니 시카고에 있는 누이 한태로 보네드릴 말만 계속 되풀이 하는 것이었다

 

할머니 아들은 미안했던지 본인의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한다기에함께 도와준 몇사람과 같이 아들의집을

방문했다 정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

아~니 이럴수가 아~마 한국에서 유명하다는 연예인들도 이렇게 궁전같은집에 살기도 힘든데 또다른 충격에

밥맛이 뚝떨어젔다

 

그리고 얼마후  폭우가 심하게 쏱아지던날밤  그다음날 할머니께서 전화를 받질않으셔서 집으로 찾아갔다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아 늘 창문을 열어놓고 주무시는 할머니 께서 심하게 쏫아지는

빗소리에 아 마 창문을 닫기 위해 내려 오시다가 높은 침대위에서 떨어지셔서 몇시간인줄 모르겠지만

 

오랫동안 움직이시지도 못하시고 고통을 호소하며 우시고 계시는게 아닌가

얼른 병원으로 옮겨 드려 친찰 결과 골다 공증이 있으신 할머니께서 척추가 부러지셨다는 결과 가 나왔다

우리가  돌봐 드릴수있는 시간도 한계가 있는데 우리도 가정이있고 작은 사업도 하고 있는지라 ..

 

 

생각 끝에 한동안은 돌아가면서 몇분이 돌봐 드리기로 하고 봐드렸다

그러기를 몇달이나 지났을까

할머니 아들이 모시고 갔다 아들 집으로 모시고 간줄 알았는데 그칙칙하고 냄새나는

정부 아파트에 할머니를 내려놓고 휭하니 가버린듯했다

 

전화도 안되고 내가 직접 아파트에 도착해 문을 여는 순간 소스라 치게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제대로 치료도 되지않는 허리로 할머님 은 배가 곺아 식사를 챙겨 드시기 위하여 내려 오시다가 또 침대에서

떨어지신것이었다

 

며칠을 굶으셨는지 일어서지 못하시는 육체로 엉금엉금 기시다가 포기를 하신듯 중간에 앉으셔서

계속 헛소리만 하시는 것이었다 냉장고 앞에는 쏫아진 김치 국물과  이것저것 이 나뒹굴고 있었다

챙겨서 드시지도 못하실 처지지만  냉장고 안엔 아무것도 없이 텅텅 비어있었다

 

화도 나고 속이 상해서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한바탕 한다음 할머님을 모시고 병원으로 달렸다

검사 결과 부러지신 허리도 아물지 않았지만 이젠 허벅지 뼈까지 두군데나 금이가서 이젠 절대로

퇴원해서 집으로 가실 처지는 1% 도 없다는 의사의 진단이 나왔다

 

할수없이  연세드신 분들이 가시는 그곳으로 옮기기로 하고  그다음날  늘싱홈으로 할머니가 계신곳을 찾아갔다

앞을 못보시는 할머님은 옆에계신 환자분들 신음소리 에 못견뎌 하시면서 의사한태 말해서 자기좀

집으로 가게 해달라고 애원을 하셨다 그게 이루어 지질 않으니까 일체 식음을 전폐 하시고 죽음을 택하시는듯햇다

 

우리가 입에맛는 음식을 해다 드리면서 대화를 나누자 얼마나 기쁘하시면서 헛소리 하시던 것도 배에 음식물이 들어가자

힘이 나시는 지 정신이 돌아오시는듯 그렇게 기뻐하셨다 자주 찾아갈수 없으서 그럭저럭 시간은 흘렀고

식사를 마다하고 거절하자 그기에서도 자주 찾아오지 않는 아들보단  따님이 계신곳으로 보내기로 결정을 짓고

 

시카고로 옮기시던날 난 바쁜스케줄이 있으서 가보질 못했지만 공황에서 몇사람을 붙들고 얼마나 우시던지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는 얘길 듣고 나역시 말로 표현할수 없는 아픔과 고통이 한동안 가슴에서 떠나질않았다

그리고 조금더 잘해 드리지 못했던 기억이 나를 아프게 했다 시간에 쫒기며 살아가는 나인데 때론 하루종일 쾌종 시계소리

 

를 들으며  나오기만 기다리셨던 할머님에게  짜증이 나서 목적지 까지 도착할때 까지 한마디 말도 하지않을 때도

있었다

사람들은 왜 지나가고 나서 후회들을 할까.

그리고 얼마후 들려오는 소식은 시카고에 가셔서도 역시 가족이 함께 하지 않는 늘싱홈  영어 한마디 알아듣지도 못하시고

할줄모르는 할머님은 차라리 이렇게 사는것 보다 하늘나라로 가는 것을 더 원하셨으리라

매일 매일 눈만 뜨 시면 간호사들 붙들고 우리가 있는곳으로 보내달라고 애원하셨다는 얘기만 들려 왔다 그것이

 

이루어 지지 않자 할머니는 말문을 닫아 버리셨고  식사도 거부하신체로 감은눈을 뜨지도 않으신체

한마디 말도 못하시고 홀로 외롭게 세상을 떠나셨다는 얘길 들었다  .

나쁜자식 한인이 운영하는 한국 식품마다 다니면서 우리 어머니 성품이 괴팍하셔서

아무도 접근을 못하신다고.   특히 며느리는 가까히 오지도 못하게 하신다고. 떠들고 다녔던 그자식.

 

지금도 어쩌다가 나와 식당에서 때론. 식품점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죄지은 사람마냥 빨리 도망치듯이

달아나곤 한다  자기도 아들하나. 딸하나 있드구만 .자기도 언젠가는 자기 어머니가 계셨던 자리에 서야 될.날이

있을텐데 . 왜 사람들은 자기에게 닥처올 시간들은 생각을 하지않고 사는가 ^*^

 

어렸을때 생각이난다 집안에 어른이 계시다는것 그 분위기 자체가 좋았을때가 있었는데.

거동을 제대로 하시지 못하시는 할아버지 or 할머니 눈만뜨면 사랑방에 온가족이 달려가

이야기 꽃을 피우던 그시절이 그립기만하다

 

몇년전 한국에 나갔을때 공원에 동생과 산책을  중에 잠간 놓여진 들마루에 앉아

할머니들이 모여서 재미있게 얘기 나누는 소리에 귀를 귀울이게 되었다

진지한  서로의 대화속에  할머님 들이 자녀에게 살고 계시던 집을 넘겨 주었드니 이젠 완전히 자기들이 주인이 되고

 

할머닌 전세방으로 내몰렷다는 하소연 하시는 소릴 듣고 30년 동안 미국에 살면서 많이 변했다는 한국. 얘기로는

들었지만 이렇게 변해 버렸는가 .난 한순간 긴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중에 할머니 한분이 아들인지 딸인지 자꾸 집을 내어 달라는 데 어떻해 해야 할지 모르시겠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할머니 몇분이서 절대로 넘겨주지 말라는 대화였다 넘겨주는 날에는 셋방 신세된다는 안타까운 친구의 충고 하시는 대화 내용이셨다

 왜 세상이 이렇게 변했는가 인정많기로 자랑할만한 우리 한국이 이렇게 변했단 말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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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아버지 처마밑 작은가족.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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