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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희
- 비올라 연주자
- 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밀리 할머니의 죽음

송정희2017.05.28 20:14조회 수 1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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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 할머니의 죽음 (수필)

 

95세 백인 할머니. 3년전쯤 고운 할머니가 교회에 나오셨다.

둘루스 도서관옆 노인아파트에 사시던 밀리할머니. 둘재 아들 스팁브가 딸처럼 보살폈지만 밀리할머니의 요구를 다 들어드리기는 역부족인 아들이었다. 나보다 조금 나이가 적은 교인인 쉐리가 할머니를 집에서 교회로 또 예배가 끝나면 집에 모셔다 드린다고 했다.

쉐리의 집보다 내집이 밀리할머니의 집에서 더 가까워 내가 하겠다고 자청을 했다.

그후로 일년정도를 주일마다 모셔오고 또 모셔다 드리고. 막내 희정이와 함께 즐겁게 그 일을 했었다.

왼쪽귀는 전혀 안들리시고 오른쪽 귀에 보청기를 끼셔서 의사소통이 그리 쉽지 않은 밀리할머니.

간혹 건강상태가 나쁘시면 토요일 밤쯤 내게 전화를 하셨다.

내일 데리러 오지 말라고. 본인 말씀만 하시고 내 목소리는 못들으신다.

할머니의 작은 방 205. 작은 일인용 침대와 책장, 장식장, 그리고 욕실과 화장실.

사진속의 밀리할머니는 재키 케네디처럼 예쁘셨다.

머리도 많아 빠지셔서 가발을 쓰시는 관계로 불쑥 방문자가 오는것을 꺼리셨다.

부유한 삶을 사셨다는게 느껴질 정도의 물건들.

나는 내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진심으로 정성껏 모시려고 노력했고 밀리 할머니는 그걸 느끼셨던것 같다.

그렇게 계절이 세번 바뀔 무렵 예배시간에 밀리할머니가 여러차례 화장실을 가셨다. 워낙 성격이 깔끔하셔서 화장실문앞까지만 부축을 받고 화장실 안엔 혼자 들어가신다.

알고보니 기저귀를 하고 오셨어도 설사처럼 참을 사이없이 변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당황하신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가길 원하셨고 그 후로는 교회를 못 나오셨다.

나와 희정인 거의 매주 할머니를 방문했고 할머닌 거의 바깥출입을 안하시며 침대에만 계신다고 했다.

점차 방문횟수가 줄어들고 해가 지나고 할머니는 점점 야위어 가시고 우리를 몰라보기 시작하셨다. 컨디션이 좋으시면 알아 보시지만 대부분 몰라 보시고 아들 두분만 알아보셨다.

한달전 아들 스티브가 교회 쉐리에게 연락을 보내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있다고. 일하다가 연락을 받고 얼마나 놀랬는지.

다음날 바로 할머니를 방문하니 백인 간병인이 여자분이 할머니 곁에 있었다.

해골에 가죽만 붙어있는 형상이라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

왈칵 눈물이 나왔지만 밀리 할머니 특유의 미소로 나를 쳐다 보셨다. 얼음장같은 손을 드시길래 얼른 잡아 드렸더니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할머니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느껴졌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고 물으니까 고개를 가로 저으신다. 귓속말같은 소리로 와줘서 고맙다고.

그후로 거의 매일 찾아뵈었다. 그렇게 한달을 보고 싶은 사람 다 만나고 돌아가신 밀리할머니.

누구나에게 닥칠 일인데 늘 남의일 같은것은 무슨 자신감일까.

장례식전날 보여드리는 것만 공개하고 장례식은 가족끼리 한다고 연락이 왔다.

일하는 날이라 가 뵙지는 못했지만 생전에 찾아뵌것으로 대신 나를 위로해본다.

밀리 할머니,

가신곳에서는 모든 소리 다 잘 들으시고 대소변 걱정없이 가장 젊고 예쁠때 모습으로 계세요.

제차에 타주시고 제손을 잡고 걸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게 주신 책 그리고 연주용 검은구두 잘 신을께요.

만나게 되어서 행복했었습니다. 우리 희정이 예뻐해주셔서 또 감사드립니다.

평안하세요, 하늘에서 만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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