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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 - 동요

관리자2024.03.16 21:31조회 수 0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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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동요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수많은 사람이 부르고  '쎄쎄쎄' 놀이에도 많이 활용 되지만

의외로 제목을 '푸른 하늘 은하수'로 알고있습니다. 

 

​노래의 제목은 가사에 나오지 않는 '반달'입니다. 

 

마치 바다 같은 넓은 밤하늘을 떠다니는 배 모양으로 생겨

돛대도 삿대(배질할 때 쓰는 긴 막대)도

보이지 않는 '반달' 을 노래한것입니다. 

 

올해는 한국의 첫 근대 동요로 인정받는

'반달'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24년 어느 날 경성(지금의 서울),에서

한 청년이 우울한 표정으로 집을 나서면서,

깊은 한숨을 쉬며 하늘을 처다 봅니다. 

 

아직 낮인데 하얀 조각달이 하늘에

비스듬히 걸려 있는 모습이 그의 눈에 띄었고,

이 때문에 더욱 슬퍼졌다고 합니다. 

 

이 청년은 아동문학가이자 동요 작곡가로 이름을 남긴

스물한 살의 윤극영 (1903 ~1988)입니다.   

 

그는 부친의 권유로 경성법학 전문학교에 들어간 촉망받던 젊은이였으나

도무지 법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일본 유학을 떠나

우에노 음악 학교 등에서 성악과 바이올린을 배웠습니다. 

 

1923년 관동대지진 직후 무장한 일본인이

조선인을 참혹히 살해한 관동대학살이 일어난 이때

윤극영도 일본 군인에게 붙잡혀 갑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지푸라기 위에 누워 있었고

말 머리가 보이는 마구간에 갇혀있었던 것입니다.

 

겨우 살아나 고국에 돌아온 그는 부산항에 도착했을 때 

관동대학살 소식을 들은 부산 사람들이 구름처럼 항구에 몰려와,

귀국하는 동포들을 위로하는 뜻밖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어요?" 

 

그들이 입에 넣어주는 떡 한 조각을 그는 눈물을 삼키면서 씹었다고 합니다. 

 

​서울로 돌아온 그는 1924년 10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어머니가 흐느끼면서 가슴을 치며 전해줍니다.

 

윤극영이 다섯 살 때 시집간 큰누나가,

일제로부터 재산을 몰수당하고 고생만 하다 아직

젊은나이에 숨을거두었다는 것입니다.

 

​나라 잃고 타국에서 핍박당한 아픔에 혈육의 죽음까지 겹쳐

복받치는 설움으로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에 흰 조각달이 눈에 띄었습니다. 

 

'큰누님은 저 쪽배를 닮은 반달을 타고

은하수를 건너 가겠구나,돌아오지 못할길을!' 

 

그의 머릿속에는 순간 어떤 가사와 곡조가 떠오르고...

우리의 동요 '반달'은 이렇게

태어나게됩니다. 

 

한국 동요는 1924년 바로 이때부터 시작됩니다. 

 

'​반달'이란?  나라를 잃고 정처 없이 헤매야 했던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나라로

구름 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

2절 가사를 쓰면서 도대채 생각이 이어지지않아 많이 헤멨다고합니다.

 

​그때 떠오른 것이 부산항에서 떡을 먹여 주던

동포들의 얼굴 모습이었습니다. 

 

'그래. 아무리 슬프고 암울해도 희망은 있어!' 

 

생각하며, 다음 가사가 이어졌다는 후일담입니다.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이는 건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이후 수많은 동포들은 그 노래에 한(恨)과 설움,

그리고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미래의 희망을 담아 부르며 큰 위로를 받게됩니다. 

 

아주 멀리서 등대의 빛처럼 샛별을 찾아

반드시 광복을 이루겠다는 염원이었습니다. 

 

​윤극영은 어린이 운동가 방정환이 결성한 색동회 창립 멤버입니다. 

 

조선 가사를 붙인 찬송 가곡, 일본 동요 말고는

어린이가 부를 노래가 없던 시절에 그는 본격적으로 창작동요를 시작했습니다. 

 

'반달'을 만든 1924년 어린이 합창단 '따리아회'를 조직하고

동요를 통한 어린이 문화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1926년 잠시 만주에 가서 음악 교사로 일했고,

이후 만주와 경성·일본을 오가며 활동했습니다. 

 

일제 말 그의 행적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광복 후 중국에서 손수레를 끌다 남한으로 탈출합니다. 

 

1970년대 결성한 색동회를 중심으로 무궁화 보급 운동에 적극나섭니다. 

 

그가 지은 수많은 동요는 어린아이나 어른들 모두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노래였습니다.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새해를 맞는 기쁨을 노래하고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나

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갈까나'

(고기잡이)라며 세상에 슬픈 동요만 있는 것이 아님을 일깨웠습니다. 

 

고드름(유지영 작사), 따오기 (한정동 작사), 기찻길 옆,

어린이날 노래, 나란히 나란히(이상 윤석중 작사) 

 

그가 작곡한 주옥 같은 동요들 입니다. 

 

​'반달 할아버지'로 불렸던 윤극영은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에

동요 600여곡을 남기고 별세합니다. 

 

서울시는 그가 살았던 강북구 수유동 집을 2013년 매입해

'서울시 미래 유산'으로 지정 하여 기념관으로 보존합니다. 

 

​중국은 '반달'을 1950년대 조선족 가수가 번역해 불렸는데,

나중에는 '소백선 (小白船·하얀 쪽배)'이란

제목으로 음악 교과서에 실렸다고 합니다. 

 

이러다 보니 일부 중국인은

'중국의 전통 동요'라고 우긴다고 합니다. 

          (받은 좋은 글 중에서) 

 

 

2024년 3월 16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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