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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찬가(老後讚歌)

관리자2024.01.29 11:35조회 수 2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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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후찬가(老後讚歌)

 

--유선진(여,수필가)씨의 "노년은 젊음보다 아름답다." 

老後讚歌를 읊어 봅니다. --

 

우리 집의 아침은

늦게 밝는다.

 

​일흔여덟 살의 영감과

일흔 줄의 마눌이 사는 집,

 

​출근길이 바쁜 직장인도,

학교에 늦을 학생도 없으니

 

​동창(東窓)의 햇살이

눈이 부실 때까지

마음 놓고 잠에 취한다.

 

​노년에 들면

초저녁 잠이 많아

 

​저절로

아침형 인간이 된다는 데

 

​우리 내외의 수면 형태는

여전히 젊은이 같아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난다.

마누라는 쿨쿨 자지만 영감은 쉽게 잠들지 못한다.

 

​그러나

얼마든지

게을러도 괜찮은 나이

 

​늦은 아침을

맞이할 때마다

나는 내게 찾아 온

노후를 예찬한다.

 

​식사 준비도 간단하다.

 

잡곡밥에 된장국,

그리고

김치와 시골에서 가져온 푸성귀, 생선 한 토막이 전부다.

 

​마눌은 영감에게

초라한(?) 밥상을 내밀며

자랑이나 하듯 말을 한다.

 

조식(粗食)이

건강식인 것 아시지요?

 

조악한 음식이라야

노후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핑계를 대며...

 

​나에게는 조촐한 식단이 입맛에 맞는  일상의 식사로

속으론 고마워 하면서도 아직 내색해 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 중얼거린다.

 

​늙었다는 것은

정말 편한 것이구나.

 

​식후의 커피처럼

황홀한 것이 또 있을까.

 

​우리 집의

소파가 놓여 있는 동쪽은

전면이 유리창인데

찻잔을 들고 건너다 보면

 

​동쪽의 공원 야산 수목이

마치 내 집 마당처럼 눈에 들어온다.

 

​나는 가꾸는 수고 없이

그 안에 가득한

꽃과 나무를 즐긴다.

 

​소유하지 않으면서도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

 

분주한 젊은이에겐

어림없는 일이다.

 

​한유(閑遊)의 복은

노후의 특권이다.

 

​느긋하게 신문을 본다.

 

주식시장에

며칠 사이 수십조 원에 이르는

자금이 날라갔다는 기사를 읽는다.

 

​이익이 있는 곳이면

벌떼처럼 모이는 군상들,

 

TV를 본다.

​권력을 잡기 위한

사투의 현장, 거기에 온갖 거짓과 뻔뻔함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어느 남가일몽(南柯一夢)의 꿈인듯 허망하다. 

다만 젊은 후손들의 심사를 오염시켜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분 못하는 세상될가 두렵다.

 

​일상에서

초연해 지는 것이

‘늙음’의 은총인가.

 

​만용이 사라지고

과욕이 씻기어 나가고..

 

​인생에서 어느 시기를

제일 좋은 때라고 말할 수 있을까,

 

​뛰어 놀고 공부만 하면 되는

어린 시절일까,

 

​드높은 이상(理想)에 도전해 보는

열정의 청춘 시절일까,

 

​아니면 가정을

튼실히 이루고

사회의 중견이 되는

장년 시절인가.

 

​도전하고 성취하고

인정받는 이런 시절은

가히 황금기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좋은 시절에

나는 결코 행복하지도 황금을 맛보지도 못했다.

 

경쟁 대열에서 뒤떨어 지지 않을려  애쓰던 그 시절, 

삶의 본질은 할 일없는  자들의 주술로 여기고

앞만 보고 달렸기에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 하고 살았는가 보다.

 

​그러면서

세월의 영욕속에 밀리고 밀려 추락의 끝이라고 생각한

‘노후’라는 땅에 이르렀다.

 

​그러나 내가 도착한

‘노년’은 축복의 땅이었다.

 

​잃을 것이 없는

빈손 때문이 아니라

 

​얻으려는 욕망이 걷힌

빈 마음으로 풍요의 고장이었고,

 

​비로서

최선(最善)과  정도(正道)가 보이는 밝은 눈의 영토였다.

 

​책임에서도

의무에서도

자유로운 나이

 

세상에 있으되

​세상에 묶이지 않는

평화와 고요가

가득한 곳이었다. 

 

영감 할멈 둘이 사니 우선 아늑하고 편안하다.

청소도 일주일에 한두 번 먼지 닦는 일만 거들어 주면 된다. 

그러고는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 꼼지락 운동과 뒷동산 산보로

늙은 육신 보전하며  모자라는 삶의 공부도 보충한다. 

 

심심하면 여행, 바둑도 하고 고향시골을 별장삼아 찾아보는 여유도 챙겨본다.

술,담배 즐기지만 아직 살아있음을 고마워 하면서.

 

​얼마 있으면

결혼 52주년이 되는 해이다.

 

​늙어 무력해진 영감과

나보다 훨씬 젊은 마누라의 주름진 얼굴을 바라보며 

 

​젊은 시절

한번도 나누어 보지 않은

​정다운 눈빛으로

서로의 늙어가는 모습을 바라 보았다.

 

​그리고

두 손을 잡고

 

어린 나이에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고생한 마누라를 응시하며 

 

우리 내외에게

살아 있을 때 즐거운 노후를 허락하신

 

​우리들 생명의 주인과 우리를 살게해 준 여러 인연들께

진실로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우리나이

오늘 지금을 즐겁게 사는 게 천당이고 극락으로 여기고 산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도 살아있음을 고마워 하면서...

 

 

 

 

2024년 1월 29일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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