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유 게시판에는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비방이나 험담은 자제 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침 이슬 (영혼의 물방울) 아해 김태형

관리자2024.04.08 16:01조회 수 1댓글 0

    • 글자 크기

 

 

 

 

아침 이슬
       -영혼의 물방울-
                                                                       

 

 아해 김 태형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위는 정지용의 시, 향수에 나오는 우리 모두에게 낯익은 구절이다.

 나는 외국에 오래 살면서 어린 시절의 고향의 모습과 사랑하는 가족이 그리울 때면 

‘향수’를 꺼내 음미하곤 했다. 

1989년 성악가 박인수 교수와 통기타 가수 이동인이 듀엣으로 부른 후부터는

 가곡 ”향수”를 자주 들었다.

 하지만 노래 가사에서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의

 ‘함추름’ 이란 단어의 뜻이 알쏭달쏭해 애를 먹었고

 내가 외국에 오래 살아서 모국어를 벌써 잊어버렸나 하고

 내 머리를 쥐어박기도 했다. 

한영사전을 찾아보면 ‘함초롬히’는 곱고 가지런한 것이라고 풀이한다.

 하지만 ‘풀섶 이슬에’로 이어지니 

이슬처럼 맑고 깨끗함이 서려 있는 촉촉하고 청결한 풀잎들이 상상되고 

‘함추름‘은 ’함초롬‘의 고어가 아닐까 추측도 해 보았다.

아침 이슬은 새벽녘 아내가 가꾸는 정원의 꽃잎, 풀잎에서 자주 본다. 

맑고 깨끗하고 구슬처럼 그리고 진주처럼 아름답다.

 혹 안개라도 짙게 낀 날이면 

꽃잎 위로 굴러 내리는 이슬방울은 참으로 청아하고 신비롭다. 

아침 이슬 하면 많은 사람이 1970년대 운동권 젊은이들이 

울분에 젖어 목청껏 부르던 김민기의 ‘아침 이슬’을 생각하겠지만, 

나는 삶의 무상함을 아침 이슬에 비유해 시로 읊은

 많은 옛 시인, 철학자들이 먼저 떠오른다.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은데 

자네는 어찌하여 이렇게 오래 자신을 괴롭히는가(人生如朝露, 何久自若如此)”라는 

구절은 친구 이능이 흉노에 오랫동안 잡혀있던 전한의 사신 소무에게 말 한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장자(莊子)도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아 저녁이면 슬퍼진다(人生若露, 若夕悲)”라고

 인생의 덧없음을 글로 남겼다. 

아침 이슬(朝露)을 여러 한시(漢詩)에서는 草露, 露珠, 白露, 晨露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는데 

모두 아름답고 빛나는 영롱한 보석을 연상케 하는 단어들이다. 

우리나라 시인들도 이슬의 맑고 아름다운 모습을 노래한다

. 김억은 시, ‘이슬’에서 ”그대가 가는 모든 곳에 나는 이슬이 되어 흐르고 있다“고 했고, 

천상병의 대표 시 ’귀천’에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라는 정겨운 구절도 남겼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시인인 John Keats는 

그의 많은 시에서 자연을 예찬했고 

이슬을 ‘사랑의 물방울’이라고도 했다. 

사랑의 물방울!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많은 시인이 인생을 아침 이슬에 비유했지만,

 정약용은 덧없는 인생을 꽃에 비유한다. 

“꽃은 아름답지만 덧없다. 

삶 또한 아름답지만 덧없으므로

 매 순간을 소중히 살아라”하고 그는 유배지에서 

그 두 아들에게 신신당부한다. 

의상대사나 사명대사, 그리고 많은 스님의 禪詩도 

때론 이슬에 때론 구름에 비유해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한다.

나는 아침에 일찍 햇볕에 스러지는 이슬을 대할 때나

 시들어 버린 꽃잎을 보면 내 곁을 일찍 떠난 아이들을 생각한다.

 소아암 병동에서 아이들을 치료하면서 

많은 환아를 눈물로 떠나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아주 어린 시인도, 장래가 촉망되는 피아니스트도, 

그리고 뛰어난 승마선수도 있었다. 

한 아이는 커서 자기는 장례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퍼하는 가족을 성심껏 위로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또 한 아이는 그의 많은 소장품을 나에게 남기고 갔다. 

그의 유품 중에는 그가 늘 읽던 만화책으로 가득 채워진 두 개의 상자가 있었다. 

그리고 상자 안에는 “김태형 선생님, 이 만화책들을 

암 치료로 고생하는 아이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세요”라고

 부탁하는 쪽지가 들어있었다. 나는 이들 모두를 지금도 보고 싶다.

 그리고 이 재능 덩어리 어린 환아들과 천사 같은

 마음씨의 아이들을 그렇게 일찍 하늘나라로 

데려간 하나님을 원망도 한다. 

아침 이슬 중에도 햇볕에 서서히 스러지는 이슬은

 인생에서 장수(長壽)에 비유할 수 있고 

데굴데굴 꽃잎에서 굴러떨어지는 영롱한 이슬방울은 

어린 나이에 일찍 하늘로 떠난 아이들을 연상케 한다.

 그렇다면 아침 이슬은 영혼의 물방울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멀리 하늘나라로 가버린 아이들이 생각날 때면 

나에게는 의상대사의 오도송(悟道頌)이 어김없이 

떠올라 눈물을 흘리게 한다.

 “해마다 꽃은 같으나 사람은 같지 않네.

 내가 기억하는 얼굴은 어느 곳으로 떠났는지 모르는데, 

복숭아 꽃은 옛날처럼 봄바람에 웃고만 있구나.“

2024년 4월 3일 수요일

 

 

 

 

 

    • 글자 크기

댓글 달기

이전 1 2 3 4 5 6 7 8 9 10... 25다음
첨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