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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長壽)와 요절(夭折)

관리자2024.01.24 16:26조회 수 7추천 수 1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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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長壽)와 요절(夭折)

 

                             아해 김태형

 

우리 곁을 일찍 떠난 시인, 윤동주, 허난설헌,

이상, 김소월 등을 떠 올리면 그 요절이 애달프다.

우리의 국부 이승만 대통령도, 일제 강점기 풍운아 김옥균도,

사육신 시체를 수습한 의리의 사나이 김시습도 모두 10세 전에 주옥같은 시를 남겼다.

그리고 천재 이율곡이 8살에 쓴 시 ’화석정(花石亭)‘에선

상상을 초월하는 시상이 나를 전율케 했다.

내용은 만추에 숲속을 거닐며 깊은 회상에 젖은 노 시인의 글이 분명한데

어린이가 썼다니 믿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을 임진 강가 화석정 시비에서 옮겨본다.

 

숲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어 드니

시인의 시상이 끝이 없구나

멀리 보이는 물은 하늘에 잇닿아 푸르고

서리맞은 단풍은 햇볕을 향해 붉구나

 

산 위에는 둥근 달이 떠오르고

강은 만 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었네

변방의 기러기는 어디로 날아가는고?

울고 가는 소리 저녁 구름 속으로 사라지네   

 

영국 시인 존 킷츠 (John Keats)의 말처럼 ‘아름다움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짧은 순간에 머무르는 것’이고 소설가이자 시인 이효석은

장미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한 시간 동안만 머무르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도 장미의 향기는 칠흑 같은 새벽 3경에 가장 진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시인의 생애에도 이런 장미의 절정의 순간이 찾아오는 걸까?

누구에게는 젊은 나이에 찾아와 윤동주, 이상 등에게 아름다운 시를 빚어내게 했고,

더러는 노년에까지 머물러, 박이문, 이어령, 김남조 등에게도 불타는 시혼을 불러냈는데

나는 좀처럼 오지 않는 재능을 앙망하며 지금에 머문다. 

 

애초 문인으로서의 시인은 아니지만, 소아암 환아들이 남겨준 편지를 읽으며

그들의 반짝이는 시혼과 안타까운 운명에 더 애달파한다

. 환아 중 몇은 시집도 남겼다.

천사를 닮은 소아암 환아들은 하늘나라 갈 때까지

하나님과 꾸준히 대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고 싶어요

살아야만 해요

 

아빠랑 더 장난치고 싶어서

엄마랑 더 사랑하고 싶어서

오빠랑 더 같이 자라고 싶어서

더 살고 싶어요

 

내가 받은 사랑

되돌리기 위해서

나누어 주기 위해서

간직하기 위해서

꼭! 살아야만 해요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어야 하기에

선생님과 애정을 쌓아가야 하기에

후배들과 약속을 지켜야 하기에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위는 짧은 생애를 살다간 현영이가 투병 중에 하나님께 드리는 시, <살려주세요> 이고,

아래는 그가 슬픔을 내려놓고 마음의 평정을 찾으며 쓴 시, <비바람>이다.

 

<비바람>

 

까만 우산 위로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집니다

내 슬픔이….

 

노란 장화 속에

한 바람 두 바람

불어옵니다

내 기쁨이….

 

까만 우산도

노란 장화도

나의 선물 되어

하늘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또 13살에 세상을 떠난 혜린은 시인 중의 시인으로 보였다.

항암 치료를 받으며 너무 힘들어서, 너무 외로워서,

깜깜한 밤에 아빠 구두를 신어보며 시를 썼다.

아빠의 사랑을 지상에서 더는 품을 수 없어

안타까워하는 혜린이의 모습이 선명히 그려진다.

 

<아빠 구두>

 

캄캄한 밤

신발장에

아빠 구두가

숨을 고분고분 내쉰다

 

내가

머리를 긁적이며

구두를 꺼낸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얼마나 외로웠으면

나의 발이 아빠 구두 품속으로 담긴다

아빠 구두가 빼꼼히 웃음을 띤다

 

혜린의 시구(詩句)들은 참으로 참신하다.

몇몇 詩에서 ‘바람은 나의 친구’ 이고,

’자연의 숨소리’를 듣고 있다고 했고,

또 ’이슬은 깨달음이며 시간’이라고 정의하면서

’이 둥근 세상에 생명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쉬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뿐‘ 이라고 아쉬어도 했다.

짧은 생을 살았지만 진한 장미의 향을 남기고 떠났다.

   

어린 나이에 하늘로 떠난 환아들을 생각하면

“늙는다는 것은 매혹적이다.

우리는 늙으면 늙을수록 더 늙기를 원하게 된다” 라던

미국 시인, 사상가 에머슨의 조크와 “인생이란 아무리 긴듯해도

언제나 짧은 법”이라던 노벨상 수상자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말은

과연 누구에게나 그럴까 하는 의아심이 들게 한다.

내게 5년의 삶이 더 주어진다면 나도 시를 쓰다 가고 싶다.”라는

100세를 가볍게 넘긴 김형석 교수의 말씀은

善의 가치를 평생 추구하는 그의 기도로 들린다.

’아름다운 예술로 여생을 수놓고 싶은‘ 그분에게

5년~10년 이상의 생명이 허락되기를 빈다. 

  

 

기원전 그리스의 비극 시인 소포클레스는

인생을 논하며 “최선은 애초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고

차선은 젊었을 때 일찍 죽는 것이다.”라고 했다.

우리는 우리의 태어남을 선택할 수는 없으나

일단 태어난 이상 누구나 오래 살고 싶어하지 않나?

문학에 늦게 뛰어든 나에게 장미의 시간은 영영 오지 않는다 해도

죽는 날까지 시를 쓰며 살아가고 싶다.

현영이가 그랬던 것처럼, 혜린이가 그랬던 것처럼.

 

 

 

 

2024년 1월 24일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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